미군이 남긴 환경재앙

 활동이야기/군환경       2004. 7. 26. 14:52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녹색연합에서는 지난 7월 1일부터 11일까지 필리핀의 미군기지 현장 방문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필리핀은 스페인, 미국,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국가이다. 지난 92년까지 미군의 아시아 최대의 공군기지(Clark)과 해군기지(Subic)가 철수한 후, 수질, 토양 오염으로 인한 환경,보건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내리쬐는 햇볕때문에 당장 그늘에 숨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은 날씨.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시끄럽게 내달리는 트라이시클. 필리핀이라는 낯선 곳에서 새롭게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우리의 손에 들린 카메라를 향해서 밝은 웃음과 손짓을 보내주는 필리핀 사람들의 낙천적 성격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미군기지로 인한 환경오염 피해자들을 방문했는데, 우리의 예상과 달리 밝은 모습들이었다. 우리를 기다리던 20명 정도되는 엄마와 아이들은 필리핀에서 한창 인기있다는 한국 드라마 얘기를 듣고 싶어하고, 자신들의 사는 얘기를 덤덤하게 들려주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털어놓는 얘기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이야기들이었다.

최대 미 공군기지가 만든 비극
클락에는 91년까지 아시아 최대 미 공군기지가 있었다. 필리핀 상원에서 기지 사용 연장안을 거부하고(미군은 한국에서 기지사용연한에 제한을 받지 않고 있다. 현재 SOFA 상으로는 미군이 원하면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 , 마침 피나투보 화산이 터지면서 미군은 클락을 떠나게 된다. 미군은 화산을 피해 필리핀을 떠나면 되었지만, 주민들이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에서 마련한 과거 미군 기지 내부의 CABCOM이라는 피난처이면서 비극의 현장된 곳이다.

[img:micle.jpg,align=left,width=197,height=300,vspace=5,hspace=10,border=1]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식․생활 용수로 사용했지만, 당시에는 그것 이 어떤 재앙을 몰고 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7살의 얌전한 얼굴의 마이클은 뇌의 뼈 한 조각이 코 옆으로 내려온 안면기형 상태로, 코가 부어있어 보인다. 마이클의 엄마는 캄콤(CABCOM)이라는 피난처에 3년동안 살았고, 그곳에서 마이클을 낳았다. 캄콤에서 살던 당시 기름이 떠있고 악취가 나던 우물물을 식수, 생활용수로 사용했는데, 마이클의 형 미겔은 뇌에 물이 차고, 성장이 멈추어 있다.  

남들과 다른 외형 때문에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학교를 못 다니고 있다. 혼자서 지내는 그 아이는 12만 페소(한화 약250만원)가 있으면 수술을 할 수 있지만, 엄마가 떠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형편에 꿈꾸기 어려운 일이다.

마이클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몇 년을 살았지만, 부모가 캄콤에 살았기 때문에 아픈 아이들도 있다. 깔라의 부모님은 2년동안 캄콤에서 살았는데, 깔라는 지금 뇌성마비로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거의 누워서 지내고 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제이슨의 경우, 제이슨의 엄마가 과거 미군기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던 전화기 공장에서 2년 동안 일을 했다.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불순물이 많이 섞인 식수, 기지 내부의 석면 등이 제이슨에게 병을 안겨준 것 같다고 한다.

피해는 캄콤이라는 피난처에 살았던 빈민들뿐 아니라 미군주둔 당시 기지 노동자들에게서도 발견된다. 24년동안 탄약 나르는 일을 했던 메리노는 당시에 자신의 일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미군이 주의를 준 적도 없다고 한다. 현재 신장 이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그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 두 아이를 바라만 봐야 하는 게 가슴이 아프다.

클락(Clark) 지역 주민들의 조직인 SAUP(희생자들의 가족을 위한 공동행동)에는 1,500명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모여있다. SAUP의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2001년 이후에만 147명이 환경재앙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었다. 현재까지 백혈병, 간질, 뇌성마비 등으로 291명의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1996년에 한 캐나다 의사가 진행한 역학조사에서 클락 기지 주변의 13개 마을 761명 여성들의 상당수가 신장병과 신장기능 이상을 나타내었는데, 폐기물과 오염된 공기에 노출된 것과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또 미국의 Weston International 이라는 회사의 조사에서도 수은, 질소, 살충제로 인해 13개의 지역이 오염이 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img:DSCN0043.JPG,align=,width=549,height=373,vspace=0,hspace=0,border=1]


몇 개의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밝혀진 것은, 미군 주둔 당시 사용하던 화학물질로 인해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었다는 것인데도, 미국은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이 사실을 외면하다 2000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기지 안의 독극물 오염을 인정하였지만, 필리핀의 환경보호를 위한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위한 환경과 건강에 관한 상호협약에 클락과 수빅의 기지 오염문제는 제외되었다.

우리에겐 준비할 시간이 있다.
필리핀 사람들이 우리에게 충고해준 한 마디였다. 당시에는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인해 기지 폐쇄가 급작스럽게 진행되었다. 필리핀 스스로 환경오염조사와 복원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시간이 있다.
한국은 앞으로 수 년 내에 용산기지 이전, 미2사단 재배치, LPP(연합토지관리계획)등으로 34개의 미군기지가 반환될 예정이다. 환경오염조사와 복원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미국과 협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의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글 : 자연생태국 고지선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