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슈미르 분쟁을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핵전쟁 발발 직전의 상황은 그동안 가상으로만 논의되던 핵전쟁이 현실세계에서 얼마나 쉽게 세계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월드컵의 축제분위기 속에서 아직 그 위기를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 국민은 최근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발언으로 인해 우리 역시 잠재적인 핵무기 경쟁체제로부터 한반도 역시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지난 5월 31일 일본 관방장관의 핵무기개발 가능성을 제기한 발언은 단순히 철없는 극우 정치인의 우발적인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그동안 일본의 군사동향이나 핵에너지 개발프로그램 등을 검토해볼 때 너무나 구체적인 증거들을 갖고 있다. 비록 고이즈미 총리의 즉각적인 비핵3원칙 고수 발언이 있었으나, 이 발언이 얼마나 일본 군국주의 부활 및 핵무장추세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는 한반도 주변에서 핵무기 개발경쟁과 전쟁을 막기 위한 국제연대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활동에는 각국 정부간의 공식적 외교활동이 안고 있는 기만과 무책임함을 넘어서서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간의 국제연대와 보다 근본적인 탈핵의 대안들을 촉구하는 활동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월 3일 일본의 평화단체로부터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연대를 요청하는 성명은 우리에게 맹목적인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세계평화를 위한 민중의 의지는 하나로 묶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여기 소개하는 성명을 작성한 오바 사토미 <플루토늄 액션 히로시마> 대표는 지난 10여년간 한국의 평화 및 환경단체들과 수많은 교류와 연대활동을 해온 일본의 대표적인 평화운동가중 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지난 1993년부터 일본, 한국, 대만 등 아시아의 10개국의 평화․환경단체들이 연대하여 결성한 <핵무기도, 핵발전소도 없는 반핵아시아를 위한 포럼>의 활동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 문의 : 녹색연합 대안사회국 석광훈 부장 nonuke@greenkorea.org)

< 일본의 평화시민단체로부터의 국제연대 규탄성명 >

일본 총리의 발언으로는 일본의 비밀 무기프로그램을 청산할 수 없다!

핵의 그림자가 남아시아를 뒤덮고 있다. 매일 매시, 인도지역에서 늘어나는 핵전쟁의 광기에 대한 우울한 우려들이 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이 같은 순간에, 우리의 최고지도자는 일본이 비핵3원칙을 재고하자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발언은, 일본정부가 비핵3원칙을 존중하고 비핵무기 국가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원폭피해자들과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사실 일본의 보수정치인들이 일본의 비핵원칙과 일본헌법 9조를 포기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고이즈미 총리의 즉각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것으로 일본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을 가지려 한다는 의혹을 떨쳐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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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일본의 환경운동가들이 일본정부의 플루토늄 수송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료출처 : Green Peace Japan)

일본은 세계 최초의 핵공격 희생자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이면에서는 대규모 핵재처리시설과 몬쥬 고속증식로의 재가동 등 플루토늄 연료주기 프로그램의 완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민감한 핵기술들이 불법적으로 미국의 핵연구실에서 일본으로 이전되었으며, 이 기술들은 고속증식로의 사용후 핵연료로부터 대형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지난 5월, 일본의 대형 핵폐기물처리 복합단지인 로카쇼무라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로카쇼무라의 히사시 하시모토시장이 경찰의 뇌물수수 혐의 관련조사를 받은 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은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핵산업계 주변에서 뇌물수수가 자행되는 것은 그리 드문 예가 아니며, 로카쇼무라 시장은 이러한 시스템에 걸려든 희생자들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일본은 또한 비핵확산 전문가들이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사용될 것으로 혐의를 두고 있는 H2 로켓을 개발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정부는 미국과 함께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의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핵군축과 철폐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신의제동맹(New Agenda Colation)의 참여제안을 거부하였다. (*주 참조)

이같은 여건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 관방장관의 비핵3원칙 재고발언에 대해 부인한 것은 일본이 핵무기 국가로 변화하는 것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국제 반핵운동의 대열에 참여하여, 일본정부로 하여금 위험한 플루토늄 개발계획을 포기하고, 몬쥬 고속증식로의 재가동을 중단하고, 로카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의 가동계획을 중단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일본으로 하여금 비핵3원칙을 쉽게 포기하도록 강제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계획에도 반대하지 않으며 안된다. 일본의 비핵3원칙은 이미 일본의 미군주둔정책을 통해 사실상 그 의미가 희석되고 있다.

우리 플루토늄 액션 히로시마는 지난 6월 3일 고이즈미 총리에게 공개서한을 제출했으며, 일본의 비핵3원칙 재고에 대한 공개적인 부인뿐만 아니라 일본으로 하여금 핵무기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도록 구체적인 정책수단의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로카쇼무라 핵재처리시설의 가동과 몬쥬 고속증식로의 재가동을 저지하기 위해 즉각적인 국제연대를 요청한다.

2002년 6월 3일


오바 사토미
(플루토늄 액션 히로시마 대표/Global Council of Abolition 2000 멤버)


* 주 : New Agenda Coalition은 지난 1998년 스웨덴, 남아공, 멕시코 등 핵무기의 빠르고, 최종적이며, 전체적인 철폐를 요구하는 8개국으로 구성된 협의기구로서 현재 핵보유 5개국가와 핵무기개발이 가능한 3개국들에게 구체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의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의제는 UN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