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나무들과 바다표범, 토끼, 그리고 도롱뇽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3. 10. 20. 18:27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이 인간의 탐욕을 참다못해 '법정에선 나무들'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자연을 대할 때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채취하고 가공해 생산과 이윤을 창출 할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나무가 우리들에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가구와 종이를 만들었으며, 강을 막아 댐을 얻어 전기를 얻었고 갯벌을 간척해 새로운 땅을 얻었다.
그러나 나무들이 사라진 숲에서 새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고, 갯벌은 죽은 물고기와 조개들의 무덤이 되었다. 서식지 파괴와 도로건설로 치여죽은 산양과 너구리, 수달은 우리에게 이제 제발 그만 하라고 절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img:996968.jpg,align=left,width=200,height=250,vspace=5,hspace=10,border=1]말 못하는 천성산을 대신해 38일간의 단식, 40여 일간의 삼천배를 올렸던 지율스님의 단식이 다시 17일째로 들어서고 있다. 천성산의 문제는 더 이상 고속철도 관통이라는 환경문제
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진행중인 천성산 고속철도 구간의 환경영향 평가서에는 30종 이상 되는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동식물이 단 한 종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고속철도 관통반대 천성산비상대책위원회는 10월 15일(수) 오전9시 부산지방법원에서 천성산 환경영향평가에 기록되지 않은 30종의 대표로 꼬리치레 도롱뇽을 대리로 '도롱뇽의 친구들'의 이름으로 <공사착공금지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 못하는 ‘자연의 권리’를 대신해 법정에 선 것은 ‘도롱뇽’만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법정에선 ‘나무들’이 있었고, 독일에서는 ‘바다표범’이 일본에선 ‘토끼’가 있었다. 이들의 안타까운 하소연을 들어보았다.


미네랄 킹 계곡 대 머튼 - “나무들도 법정에 설 수 있다”
미국 산림청은 월트 디즈니사가 모텔, 레스토랑을 포함하여 약 3,400만 달러에 달하는 위락시설을 건설할 수 있도록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미네랄 킹 계곡에 대한 개발을 허가해 주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씨에라 클럽은 이 계획이 지역의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금지명령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시에라 클럽 법률보호기금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적격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이 논쟁은 “나무도 당사자적격을 가져야 하는가”와  씨애라 클럽이 과연 그런 나무들의 권리를 대신해서 주장할 수 있는가 라는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연방최고법원의 대법관들은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윌리아 O. 더글라스 대법관은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목소리에 지지를 보내며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만일 우리가 환경에 관한 문제에 대해... 불도저 등으로 인해 파괴되고 손상되며 침해를 당한 자연물의 이름으로 연방법원에 소송이 제기되는 것을 허용하는 연방법률을 만든다면 당사자적격이라는 중요한 문제는 단순화되고 명확해질 것이다. ....자연의 생태적 균형을 보호하고자 하는 현시대의 대중적인 관심은 자연물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당사자적 자격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따라서 이 소송은 미네랄 킹 대 머튼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시에라 클럽은 디즈니사가 미네럴 킹 계곡에 스키 리조트를 건설하려던 계획을 백지화시킬 수 있었다. 이후에도 미국에서는 희귀종인 하와이 새 팔리아 사건을 시작으로 북부 점박이 올빼미, 붉은 다람쥐, 플로리다 사슴, 바다오리를 원고로 한 소송이 이어졌다. 윌리암 O. 더글라스 대법관은 인간이 아닌 자연이 스스로를 변호할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실제로 나무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엑손모빌이나 듀폰과 같은 회사도 사람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엑손모빌이나 듀폰과 같은 회사들은 인간 대리인의 이름으로 전 세계의 자연을 아주 효과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참깨점박이 바다표범-“유해화학물질 바다에 버리지 마세요”
1988년 약 1만5,000마리의 죽은 참깨점박이바다표범이 북해와 발트해 주변 해변으로 떠밀려왔다. 이 사건의 주원인 물질은 독일 정부의 허가를 받고 북해에 버려진 티타늄과 다른 중금속이었다. 그러나 바다에 접해 있는 모든 국가들은 해양오염에 일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은 똑같이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으니 모두가 공범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바다표범을 대변해 이런 환경파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생태계의 모든 요소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

독일의 환경변호사 모임은 바다표범을 원고로 하고 자신들은 바다표범의 후견인으로 바다표범을 대리해 변호하는 형태로 소송을 제기했다. 독일 행정법원은 바다표범은 법률상의 사람이 아니며 어떤 특별입법도 그들에게 당사자적격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바다표범의 당사자적격을 부정하였다. 비록 법원에서 이 사건은 기각되었지만 소송 과정을 통해 최소한 두 가지 소득이 있었다. 첫째, 소송의 제기에 대한 언론매체들의 보도는 상당했고, 우호적이었다. 둘째 정부가 폐기물 해양투기 허가를 갱신해 줄 대, 이전에는 허가를 했던 당국자들이 여론의 압력으로 허가갱신을 승인할 수 없었다. 또한 독일정부는 북해에 중금속을 투기하는 것을 억제하거나 금지한다는 입장을 굳혔다.


토끼 아마미의 ‘삶터를 지키기 위한 투쟁’
일본에서는 1994년 골프장의 건설로 희귀종 토끼 아마미의 유일하게 남은 서식지가 위협받자, 토끼를 원고로 한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에 법원은 법률상 사람만이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음을 언급하면서 변호인들에게 위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이 모두 법률상 사람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이름과 주소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였다. 변호인들은 이를 제출할 수 없었고 결국 생물종의 이름으로 제기된 부분은 기각되었다. 1995년에는 희귀종 철새인 큰기러기의 이름으로 소송이 제기되어, 행정부에게 큰기러기가 좋아하는 습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는 물갈퀴가 달린 기러기의 발로 날인되었는데, 이 역시 기각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자연의 권리’ 소송에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홋카이도의 다이세쓰산 국립공원 인근의 주민과 환경단체가 터널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다이쎄쓰산에 서식하는 '우는 토끼'를 원고로 소송을 제기해 30년만인 99년 3월 승소했다. 국립공원 내 특별보호지역에 터널이 뚫릴 경우 주변 지역 온도가 상승, '우는 토끼'의 서식에 지장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우는 토끼'는 몸길이 11-19cm로 백두산 등 한반도 북부와 홋카이도?사할린?시베리아 등지의 고지대에 서식하며 특유의 소리를 낸다.
  
녹색연합은 98년 3월, 낙동강 재두루미의 떼죽음과 관련해, 재두루미를 원고로 하고 천연기념물 보호에 소홀한 문화재청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원고 부적격으로 곧바로 기각됐다. 또 2000년 5월에도 녹색연합이 새만금 간척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어린이들을 원고로 내세웠던 미래세대 소송이 있었으나 공사가 시작되던 10여 년 전에 행정심판을 먼저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해 6월 초 서울고법의 2심 재판에서 기각된 적이 있다. 한국의 미래세대 소송이 시작도 해보기 전에 좌절을 맛보았다면, 1993년 필리핀에서는 미성년자인 원고들이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위하여 벌목허가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하였고 또 승소하였다.

‘자연의 권리’ 소송은 결국 말 못하는 생명의 이름을 빌어 소송을 시작하지만 결국은 자연을 착취하려는 이들과 그들로부터 자연을 지키기 위한 인간들의 싸움이다. 이번 도롱뇽 소송이 이 땅에서 '자연환경이 법적인 고려 대상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기를 바란다. 자연의 아픔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래서 기꺼이 도롱뇽의 친구가 되어 대신 법정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자연의 권리’는 지켜질 것이다. [img:DSCN0253.JPG,align=,width=550,height=412,vspace=5,hspace=10,border=1]
자, ‘도롱뇽의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어서 모이세요. 곧 녹색연합에서는 도롱뇽 소송단, 후원단을 모집할 계획입니다. 아마도 천성산의 ‘도롱뇽’들이 무지 고마워 할 겁니다.

* 이글은 크리스토퍼 D. 스톤이 쓰고 허범님이 옮긴 ‘법정에 선 나무들’과 씨에라 클럽의 홈페이지(Sierra Club v. Morton)를 참고로 발췌했습니다.

* 참고자료
Earth Jistice- Because the earth needs a good lawyer http://www.earthjustice.org
일본환경법률가 연맹 http://www.jca.apc.org/JELF

지율스님 단식 소식 홈페이지 가기


정리: 정책협력실 이유진 leeyj@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