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강좌] 8강 - 곳곳에 터뜨려 주어라, 풀무의 꽃망울아.

 녹색아카데미/활동·현장       2008. 8. 13. 15:46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얼마 전 교육감 선거가 있었다. 활발한 선거 홍보 탓에 난생 처음 교육감 선거에 주목하게 됐지만, 결국 난 투표를 하지 못했다. 얼마 후 나가게 된 모임에서 한 교사 분을 통해 특정지역의 몰표로 당선자가 탄생됐고 투표율이 15%로 굉장히 저조했다는 말을 들었다. 결과조차 몰랐던 난 티비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무심함의 이유로 둘러댔지만, 인터넷을 통해 알 수도 있었을 거란 사람들의 말은 결국 나를 할 말 없게 만들었다.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현 교육 실태에 대해서도, 진부한 비판만 되풀이할 수 있는 정도밖에 안 된다. 잘 모르고 또한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교육제도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대학생 신분이라 예전만큼 대화의 화제도 못되고, 수면 위에 떠오르면 흥분하고 비판을 해대지만 그 때 뿐이다.

얼마 전까지 내게 영어 과외를 받던 중학생이 있었는데, 항상 “몰라요”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아이였다. 항상 몸에 힘이 없었고 수업 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어느 날 이 학생이 “몰라요”라는 말을 뒤로한 채 오랜만에 나와 길게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바로 교육정책에 관한 얘기였는데 얌전하던 녀석이 흥분을 하며 나름대로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대충의 요지는 이러했다. 방과 후 친구들과 놀며 고민도 나누며 같이 있고 싶은데 다들 학원가기 바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말없던 애가 흥분하며 얘기를 한 것에도 충분히 놀랐지만, 갑자기 그 학생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정말 현 교육제도라는 것이 잘못되긴 잘못된 거였다.

[imgcenter|20080813-002.jpg|580|▲ 교실 떠난 지 십년은 됐을 법한 참가자들의 두 눈에서 어색한 설렘이 묻어난다.|0|5]
서울에서 멀리 떠나와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학교의 친구들이니만큼 참 궁금했다. 총 4명(남2,여2)의 학생이 앞에 서서 우리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고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결론적인 느낌은 ‘참 단단하고 맑고 건강하구나. 그렇지만 이 아이들도 혼란스러워 하는구나.’였다. 부끄러워하며 답변에 응했지만, 다들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학교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특히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웃는 모습이 참 천진했던 여학생은 유달리 말을 참 잘했다. 학교에 오게 된 웃지 못 할 사연과 처음 들어와 겪은 ‘관계’ 극복 과정에 대해 얘기해 주었는데 얘기도 재밌었지만 참 우뚝 서 있는 푸른 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일반 고등학생과 비교해서 놀랄 만큼 성숙한 생각들은 건강한 고민에서 잉태된 것이었고 건강한 극복 과정을 통해 흘러나온 것이었다. 청량한 솔바람 같은 그 친구의 모습이 진심으로 부럽고 예쁘게 느껴져 넋을 잃고 얘기를 들었다.

[imgcenter|20080813-001.jpg|580|▲ 풀무학교로 진학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소개해주는 미소가 예쁜 친구^^|0|5]
[imgcenter|20080813-003.jpg|580|▲ 참가자들이 풀무학교 학생들의 안내를 받으며 공부터이면서 삶터인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0|5]
일만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라는 일소공도의 유영모선생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풀무학교 학생들은 노동과 공부를 함께 한다. 자신이 먹을 것을 기르고 자신이 사는 집을 고친다. 내가 기른 식물이 식탁에 오르고 내가 고친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잔다. 일이 생활과 연관이 되는 것이다. 학교 안에 있는 비닐하우스, 밭, 논과 소 외양간, 닭장을 자기 집 방 하나하나처럼 능숙히 소개해 주는 모습은 이 친구들이 여기서 보내는 시간과 경험을 보여주는 거였다. 근심 푸는 곳(생태화장실)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학교 선생님들의 오랜 고민에도 고안하지 못한 것을 학생들이 뚝딱뚝딱 만들어 낸 것이라 한다. 예쁜 꽃그림이 그려져 있는 외양도 예뻤고 톱밥이 놓여있는 깔끔한 내부도 인상적이었다. 삽이 ‘똥’푸는 당번을 가리키는 깜찍한 당번표도 웃음을 자아냈다.

[imgcenter|20080813-005.jpg|580|▲ 생태 화장실에 대한 고민을 학생 자치 동아리 ‘일도(일하는 도깨비)’에서 담아내어 탄생한 아름다운 공간. |0|5]

[imgleft|20080813-006.jpg|200|▲ 흘긋 보이는 흰 머리카락이 무색하게도 학생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열정!|10|5]첫째 날 오후에 만난 홍순명 선생님께서 요즘 학교는 일제시대에 들어온 학교제도라는 말씀을 하셨다. 하여, 풀무학교는 대안학교가 아닌 우리의 전통학교를 닮은 곳이라는 뜻이었다. 대안학교란 90년대 이후에 대안교육 붐이 불며 등장한 학교를 가리킨다. 대안학교의 대명사 격으로 알고 있던 풀무학교는 사실 대안 학교가 아닌 우리나라 역사와 전통의 뜻을 있는 ‘유일한’ 학교였던 것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제도교육과 대안교육의 이분법이 아닌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다. 나누다 보면 제도 교육은 계속 그 성 안에서 대안 교육은 그 주위에서 맴돌게 된다. 서로를 아우를 수 있는 본질을 찾고 그 방향으로 제도와 대안교육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풀무학교가 있는 홍성은 유기농의 메카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심에 계신 주형로 선생님도 만나 뵐 수 있었는데, 유기농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과 생산자에 대한 보호를 한사코 강조하셨다. 풀무학교 학생 생활협동조합으로 시작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풀무생협과 느티나무 헌책방에도 들렀다. 정갈하고 깔끔한 건물 안에 놓인 소규모의 식품과 책들은 그 정감어린 풍경에 더 손길을 가게 했다. 무인 납부 시스템도 물론 여기에 일조했다.

[imgcenter|20080813-007.jpg|580|▲ 홍성이 환경농업의 산실이 될 수 있었던 큰 버팀목 주형로 선생님의 카리스마와 유머 넘치는 강의^^|0|5]
[imgright|20080813-008.jpg|200|▲ 느티나무 헌책방. 풀무생협과 마찬가지로 무인으로 운영한다.|10|5]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동네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근대적인 학교 제도보다도 마을에서 다양한 세대의 이웃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교육적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그렇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지혜를 배우고 어른들께 예절을 배운다. 이웃 오빠와 언니에게서 지식과 놀이를 함께 배운다. 어우러져 살면서 자연스럽게 아이가 무럭이 커 나간다. 풀무학교는 학교 자체만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외딴 시골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속에서, 지역과 함께 하는 배움터다.

풀무학교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흙을 만지면서 커가는 흙 같은 아이들. 힘없던 그 중학생 아이의 얼굴이 겹쳐 떠오르면서 교육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하,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구나. 힘없이, 빛을 잃은 친구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학교가 전국에 빼곡하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나면 우리의 미래는 캄캄히 참으로 어둡다. 이 위태한 이 현실에서 풀무학교의 존재는 그래서 그만큼 소중하다. 우리의 전통과 참뜻을 오롯이 유지해가고 있는 배움터인 탓이다. 그만큼 제도 교육과의 거리가 멀고도 멀다. 우리 교육을 살리고 우리 아이를 살리려면 다른 수 없다. 가르침에 대한 뜻이 바뀌고 방식이 변해야 한다. 헤쳐감의 표징인 부지런히 일하며 찾아감의 표징인 부지런히 공부함. 이 말을 잘 새기고 그 뜻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imgcenter|20080813-004.jpg|580|▲ “네 눈은 검고도 맑구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도. 네 등은 붉은 흙 같구나. 씨앗을 뿌려볼까. 해는 뜨고 지고, 달도 뜨고 지고......”|0|5]
밝았습니다. 맑았습니다. 고요합니다. 이 예쁜 인사말이 풀무 안에서만 필 수 있는 꽃망울 같아 한편으론 슬프다. 풀무의 뜻을 담은 꽃망울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터져야 한다. 그런 날이 오길 진심으로 고대해 본다.

■ 글 : 최승아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