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2-

 활동이야기/군환경       2011. 7. 26. 23:14  l   Posted by 비회원
7월25일 월요일
PM 2:00 전주한미군 고엽제 피해자 증언대회 "스티브하우스 필 스튜어트 에게 듣는다"

스티브하우스와 필 스투어트가 회의장에 들어서자 카메라 플래쉬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많은 취재진들이 모였다. 어제의 많은 기자들을 봐서 그런지 오늘은 스티브하우스와 필 스튜어트는 담담해 보였다.

입국할떄와 마찬가지로 많은 취재진들이 모였다. 이런 관심이 캠프캐럴과 다른 미군기지들에게도 계속될 수 있을까?


스티브 하우스는 미 육군에 1975년 12월부터 1979년 12월까지 근무했으며, 캠프 캐롤에서는 1978년 2월부터 1979년 2월까지 802공병대대 델타(D) 중대에서 일을 했다. 전문 보직은 ‘건설 중장비 기사’였고, 캠프 캐롤에서의 직속 상관은 마크 햄린 병장, 중대장은 스테판 매시 대위였다.

그는 자신이 캠프캐럴에서 겪은 일들을 담담히 이야기 했다. 국회의원들이 고엽제가 묻은 장소를 묻자 자신이 직접 가져온 1978년도의 캠프캐럴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특히 자신의 삶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며 한국의 고엽제 피해자들도 진실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말을 할떄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자신의 고엽제 피해를 인정해 주지 않아 힘들었던 30여년의 세월이 그를 눈물짓게 한것 같았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스티브 하우스.


이어서 필 스튜어트의 증언이 이어졌다. 필 스튜어트는 전직 미 육군 대위로서 미 8군 제2보병사단 제2공병대대(전투지원)였고 1968~69년 주한 미군에 복무했다. 1968년 10월 한국에 들어왔으며 파주시 파평면 마산리에 위치한 캠프 피터슨과 캠프 이든앨런에서 근무 하였다.  

그는 정기적으로 임진강변의 세 다리의 남∙북단 교두보와 선착장 주변에 이 고엽제를 살포했으며 캠프 이든 알렌 주변과 캠프 경계 담장을 따라 나 있는 도로변 배수로에서도 정기적으로 자주 고엽제 살포 작업을 했다고 증언하였다.
 

300명의 고엽제 피해자들의 진술서를 갖고 있다고 증언하는 필 스튜어트.


특히 그는 한국에서 1960년대에서 1970년대 근무한 300명의 군인들의 고엽제 피해관련 진술서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이 자료는 미국회에 재출되는 용도로 사용하기로 하고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당사자들과 상의후 밝힐수 있으면 기꺼이 밝히 겠다고 하였다. 스티브하우스와 필 스튜어트는 한국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하였다. 증언대회는 3시간여 동안 진행되었으며 스티브 하우스씨와 필 스튜어트씨의 인터뷰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기 떄문이다. 내일 필 스튜어트가 근무했던 캠프 피터슨과 이든알렌을 방문할 예정이다. 

진실은언제쯤?
고엽제가 캠프캐럴에 묻혔다고 보도된지 2달이 지난 현재까지 한미공동조사단의 조사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캠프캐럴 전체를 조사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조사가 오래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양, 지하수 입자 하나하나 꼼꼼히 조사 하는 것일까?

미군이 반환한 기지들을 캠프캐럴 조사하듯이 이렇게 꼼꼼히 정화했다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수 있는 공원으로 하루빨리 이용할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는 우리정부가 하나씩 정화하느라 비용도 우리의 세금으로 사용되고 있고 반환된 기지는 아직까지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글 : 김혜진(평화행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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