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현실, 현실 같은 소설 - 꽃 같은 시절

 활동이야기/골프장대응       2011. 11. 21. 16:28  l   Posted by 비회원

도가니. 아직 이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 영화도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아플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안의 내용을 속속들이 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두려운 이유는 그 슬픔, 아픔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 현실을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소설이 있습니다. 공선옥님의 「꽃 같은 시절」입니다. 세상을 막 떠난 '무수굴떠기'의 시각이 중심이 되어 소설은 펼쳐집니다. 조용하던 시골에 돌공장, 채석장이 들어옵니다. 평화롭게, 조용하게 살다 죽기를 원했던 마을 주민들에게 공장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먼지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돌공장은 제대로 된 허가 절차를 밟아 세워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합법적으로 항의를 진행합니다. 평화롭고, 고요한 마을을 지켜내기 위해.

"내 글은 다 끝났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애초에 불법으로 출발한 공장은 여전히 불법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고, 주민들의 합법투쟁은 그러나 지금 실패로 끝났다. 우리는 디모를 요렇게 허요라고 말하며 자신도 쑥스러웠던지 배싯 웃던 그 미소를 세상은 그 순한 사람들이 원래의 성정대로 순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순한 사람들이 삶의 터전은 돈벌이의 욕망 앞에 사납게 찢긴다. 원래 그렇게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조용히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은 간단히 무시된다. 지금 세상이 난리인 것은 작은 항거들 때문이 아니라, 그 작은 항거들이 조용히 무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잘난 공익을 위하여! 너무도 조용히! 너무도 간단히!" -공선옥님의 후기 중에서-


강원도 홍천에 구만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400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며 평화롭게 살던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 골프장 공사업자가 들어옵니다. 서울에서 홍천까지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개발업자들의 손길이 이 마을까지 뻗친 것이지요. 멸종위기종인 산작약, 하늘다람쥐, 담비, 둑중개 등 야생동식물을 누락시키고, 입목축적조사를 조작하는 등 불법을 자행하였음에도 골프장은 건설 허가를 받습니다. 이에 맞서 불법적 요소를 지적하며 싸워온 지역주민들에게 편파적인 입목축적 재조사를 막기 위해 물을 뿌렸다는 이유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되는 등 다양한 죄목으로 27명의 마을주민이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골프장 사업자 측에서는 돈을 뿌려 친척들 사이를 이간질 시켜놓기도 했습니다.  

한평생 땅에 의지해 온 어르신들이, 이제는 따사한 봄햇살, 붉게 물드는 가을 단풍을 만끽했던 나날보다 만끽할 나날이 훨씬 줄어든 어르신들이 수 년 동안, 제대로 자연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골프장 문제로 속 앓아오고 추운 날씨에 시청에서 군청에서 도청에서 노숙을 하기도 합니다. 평생 국가를 상대로 큰 소리 한번 내기 어려웠을 분들이 내는 소리들. 그 소리를 왜 권력을 가지 자들은 듣지 못할까요? 왜 그 소리는 울림이 되어 우리 모두에게 퍼져가지 못할까라는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경제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수많은 불법은 불법이 아닌 세상, 그 불법에 삶터를 빼앗기고, 생존권마저 빼앗기는 사람들의 외침은 불법이 되는 세상. 소리 안 내는 이들의 소리가 이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길. 지금 이 순간 마지막 남은 행복, 한줄기 빛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 빛, 그 행복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다행히 강원도 골프장 싸움은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입니다. 최문순강원도지사가 골프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지사 직속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이 협의체의 논의가 합리적으로 진행되어 더 이상 지역의 어르신들이 거리에서 집회를 하는 일이 없기를, 항의를 하면서 도청에서, 시(군)청에서 노숙하는 일이 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적막한 속에서 소리 없는 것들의 온갖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없다고 해서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 것들의 소리다. 그래서 가슴 한쪽이 먹먹해왔다. 꼭 우리들 같아서. 우리도 소리를 안 내고 살 뿐이지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은 땅 파먹고 사는 아낙들은 소리가 아예없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무슨 소리라도 낼라치면 무식한 아낙네가 뭣을 아느냐는 투였다. 그래도 우리는 울지 않았다. 우리 울음 알아주는 데도 아닌 데서 울면 우리만 설워지니 울지 않았다. 어쩌다 울 때도 놀 때나 울지, 일할 때는 힘이 들어 울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울면, 닝꽁닝꽁닝꽁, 지꾸지꾸지지잉, 띠룽띠룽디루룽, 하는 것들이 우리 울음에 묻힐까봐 울지 않았다.
가만히 귀기울여야 들리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철수의 귀에는 오직 돌공장 소리만 들릴 거였다. 이 세상에는 돌공장 소리 말고도 지렁이 울음소리도 있다는 것을, 철수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며 영희는 감자밭에 몸을 엎드리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꽃 같은 시절 중에서-
글 윤기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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