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인문학 6강] 생명과 물질의 경계

 녹색아카데미/녹색인문학       2012. 6. 4. 07:30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생명이란 무엇인가 

‘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듯, ‘생명’이 무엇인지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번 강의는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6강에서는 장회익 선생님을 모시고, 생명의 경계와 인간이란 생명체의 의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생명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에 생명의 경계를 정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내 몸의 경계를 생각해보자면, 내 옷과 내 몸은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 옷은 생명이 아니고, 내 몸은 생명이다. 그런데 입을 벌린 상태에서 생기는 공간은 내 몸의 외부라고 하고, 입을 다문 상태에서 생기는 입 안의 공간은 내 몸의 내부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일관성 있게 두 공간이 모두 외부라고 한다면, 목구멍을 지나서 대장 그 밑까지 모두 외부일 텐데, 이쯤 되면 그것이 과연 ‘나’인지 ‘나’가 아닌지 헷갈리게 된다. 또는 외부의 음식물은 밖이지만 흡수된 음식물은 밖인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라는 존재도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연결부분이 있고 외부에서 항상 자원을 얻어 생명을 유지한다. 고립된 나, 생명은 없는 것이다.

장회익님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며, '물질,생명,인간'의 저자이시다.

막상 생명에 대한 브리태니커 정의를 보자면 여러 정의를 소개하지만 아무것도 충분하게 생명을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생명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정의내리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지구생명체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구 생명 이외에 생명체가 있을까. 우리은하 안에 태양규모의 별이 일 천억 개가 넘고 그 별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은 더 많다. 행성이 있다고 해서 생명이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외계의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많은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생명체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어떤 것을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구상의 생명체와 외계 행성의 생명체가 비슷하게 생겼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명이란 것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생명체의 경계는 어디까지인 것일까. 그 키워드로서 장 선생님은 ‘질서 있음’을 언급하셨다. 모든 것이 뒤얽혀 혼돈인 상태는 생명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과 저것을 분별해낼 수 있는 상태가 질서의 상태이고, 생명을 나타내는 지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질서의 정도와 양을 과학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이다. 엔트로피는 질서가 적을수록 양이 많아진다. 다시 말해서 질서 있음은 곧 엔트로피가 적다는 뜻이다.

물이나 대기 역시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1차 질서라고하고, 독자형태의 질서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들은 외부의 힘이 가하지 않는한 그 질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더 특이한 점은 초기의 이런 단순한 형태의 질서에서 복합형태의 질서가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자체 촉매적 기능을 하며, 스스로와 닮은 혹은 스스로와 동일한 것들을 계속해서 생산해낸다. 외부의 물질들과 교환하면서 자신들의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외부의 것에 의존한다. 고립된 상태에서는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하는 것이 물리학의 법칙이기 때문에 질서가 계속 높아지기 위해서는 외부에 대한 의존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명은 이러한 질서 가운데, 복합 형태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어떠한 1차질서가 초기의 지구 내부에 생겨나고, 태양 에너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면서 지구가 점점 생명체들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어린 아이가 성장하는 것과 같이 질서들이 증가하고, 녹색 식물은 태양 에너지를 받아 새로운 에너지원을 공급해준다. 게다가 보통의 상태라면, 다른 물질들과 결합해 존재할 수 없는 자유 산소들을 계속해서 공급한다. 이 자유 산소가 없었더라면, 인간과 같은 산소에 의지하는 생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녹색 식물 역시 우리가 내뿜은 이산화탄소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모두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지구생명체의 운명이다.

 

온생명, 보생명, 낱생명

태양과 지구, 지구의 녹색 식물과 그 녹색 식물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그렇기에 하나의 큰 질서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별적인 하나 둘은 큰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이들의 균형이 깨진다면 결국 모든 것이 깨지는 것과 같다. 1차질서, 즉 독자질서의 것들도 생명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단지 생명 아닌 것으로 간주하기 일쑤이다. 전체의 생명 활동은 보이지 않고, 개별 생명체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 거대한 구조가 하나의 생명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장 선생님은 이 질서 정연한 생명을 ‘온생명’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그동안 생명이라고 불렀던 것은 낱생명이고, 낱생명은 아니지만 온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바로 보생명이다. 장 선생님은 환경이라는 말보다, 보생명이라는 말이 더 좋다고 하신다. 환경은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배경으로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보생명은 낱생명과 동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명의 파트너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낱생명으로서의 인간은 절대절명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한 순간에 이 온생명의 균형을 깨뜨릴 수도 있고, 혹은 잘 유지할 수 있는 수호자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생명의 향후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선 녹색에 눈뜨는 것이 굉장히 소중하다. 온생명의 존재를 파악하고 삶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 고민해야한다. 우리는 단지 몇 십 년을 살고 있는 하나의 독립된 생명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 동안 있었던 모든 기억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전체와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그 연결됨을 자각하면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끔 진화해왔다. 이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지만,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인간은 소비의 신화에서 벗어나, 온생명의 생명을 이어가야 한다.

이번 시간은 장회익 선생님과 함께 거대한 생명, 온생명을 알아가고, 그 속에서 나의 위치를 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경이로운 생명의 순환을 위하여, 암세포가 아닌 지성의 위치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길 바란다.

 

글 : 김지혜(춤추는시민팀 자원활동가)

인문학은 내가 누구인지에서 시작해 나와 세계의 관계를 찾아가는 학문입니다. 녹색인문학은, 인간의 윤리와 문명사회의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는 현재를 성찰하기 위해 지구생태계의 원리와 인류가 일궈온 사회문화를 녹색의 시선으로 이해하는 강좌입니다.

녹색으로 세상을 읽는 것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는 일입니다. 사람을 만들어온 지구생태계의 원리와 사람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와 철학으로 차린 녹색인문학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요? 그 감동의 현장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