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은 상처, 백운산 기름 유출

 활동이야기/군환경       2002. 5. 10. 00:00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의왕 왕곡천을 따라 상류에 오르면 백운산 계곡이 나타난다 . 다시 계곡을 따라 오르면 기름을 흡수하는 흡착포가 정상부근까지 200여 m로 길게 깔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지난 98년 미8군 메디슨 기지에서 기름유출이 있었던 곳이다. 벌써 5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백운산 계곡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img:20020510_gf0201.jpg,align=left,width=188,height=250,vspace=5,hspace=10,border=1]기지의 노후된 기름저장탱크에 틈이 생기면서 발생한 이 사고로 1만 갤런의 기름이 백운산 일대와 왕림천까지 흘러 들어갔다. 사고는 3월경에 일어났지만 미군은 이를 알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정화작업을 벌이다 인근 주민의 신고로 한달 여 뒤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뒤늦게 지자체와 환경부가 정화작업에 나섰지만 많은 양의 기름은 이미 토양층에 스며든 이후였다.

기름은 맑았던 백운산 계곡을 바로 오염시켰고 눈에 보이는 기름을 제거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연암층을 통해 토양층에 스며든 기름은 자연정화 외에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정화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토양을 통해 계속 기름이 쏟아 올라 인근 하천을 오염시킨다.

"백운산 바로 앞에 살았지만 당시에는 사고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미군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책임이 크겠지만 나 역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성합니다. [img:20020510_gf0202.jpg,align=right,width=188,height=250,vspace=5,hspace=10,border=1]집 앞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거세게 항의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산이라 사고 사실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잘 보이지 않는 산천 곳곳에 이런 사고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더욱 미군기지 사고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집앞에 백운산이 있다는 순례단원 구대수 씨의 말이다.

백운산 기름유출 사고는 도심과 마을 주변의 사고에 집중하던 기지 환경오염문제에서 더 나아가 산과 하천에서 일어나는 미군기지의 오염사고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 사고이다. 그만큼 미군기지는 전국 산천 깊은 곳에도 위치하고 있어 광범위한 감시활동과 지속적인 모니터가 필요하다.

눈으로 보기에 계곡물은 이제 어느 정도 맑아졌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흡착포를 사용될 정도로 오염은 해결되지 않았고, 그 밑으로 짙검색의 기름이 계속 스며든다는 무거운 생각에 오늘의 도보를 멈추고 파주로 향했다.【녹색순례 특별취재팀 - 사이버 녹색연합】


내 땅에 내가 간다.

녹색순례 단원 조민숙의 녹색순례 3일

[img:20020510_gf0204.jpg,align=left,width=250,height=188,vspace=5,hspace=10,border=1]남산 팔각정을 휘감던 물안개는 녹색순례가 '천리길'의 노랫소리를 죄다 삼키는가 싶더니 '내땅에 내가 간다'라는 마지막 구절만은 뜨거운 감자처럼 삶아 삼키는 듯 해, 목구멍에서 연신 뜨건 김이 피어올랐다. 입을 벙끗 열 때마다 그 절절한 기운이 어서 걷자고 발바닥을 간지럼 태우는 듯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2002년 미군 기지 녹색순례에서 나는 군산, 매향리, 평택을 지나 파주까지 오는 동안 마을 한가운데에 탄약고를 안고 56년을 참고 살아온 하제마을의 순진한 농부가 되고 철갑옷을 뜯어내 듯 날카로운 굉음을 안은 폭격에 숨진 매향리의 구비섬도 되고, 미군기지에서 내다 버린 폐기물 더미 속에 피어난 노란 민들레가 되어 길 위에 섰다.

첫째 날, 군산시 옥서면 해안가의 WOLF PACK 기지 주변은 비를 흠뻑 맞아 갯벌처럼 질척이며 순례팀의 발목을 잡았다. 희뿌연 하늘 저편에서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물체가 비바람을 거슬러 나타났다 사라졌고 뒤이어 마을 사람들의 삶터를 제 맘대로 휘젓는 전투기 소음만이 바람을 헤집고 사방으로 윙윙댔다. 발 아래로 하제와 신하제 마을 사이에 자리잡은 탄약고가 흉물스럽게 휘청이고 있었다.

둘째 날, 미국 폭격장 소음 피해 소송 승리 후에도 매향리의 푸른 하늘엔 폭격기들이 삐딱선을 타며 삼분의 일이 이미 사라진 농섬을 향해 폭격연습을 하고 있었다. 지난 4월에 매향리를 찾은 이들이 남긴 매화나무가 철책 아래서 푸른 싹을 틔우고 있었고 꼭 미군이 아니더라도 이 땅의 소음피해를 줄이기 위해 힘 쓸 것이라는 전만규 위원장의 평화를 담은 굳은 의지의 말이 청명한 하늘을 한 층 푸르게 닦아내는 듯 했다. 비 그친 매향리 미군기지엔 여전히 사격중이라면 접근금지를 알리는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폭격기들이 쉴새 없이 하늘을 날고 있었지만 그 안엔 끼룩대는 바닷새도 있었고, 물 댄 논에 모를 심기 위한 농부들의 바쁜 움직임이 살아있는 소리를 뿜어내고 있었다.

순례 삼일 째 되는 날 평택의 K55 기지 주변을 걸었다.

구장리 마을을 두른 미군기지는 2년 전에 막아 놓은 철책을 안고 더 널찍하게 평야를 잠식한 채 또 하나의 철책을 두르고 있었고 2005년에는 진위천까지 그 영역을 넓힌다고 한다.

기지안에 골프장을 만든다고 뿌려낸 제초제로 푹 젖은 수풀은 누구 하나 지나간 흔적없이 우거졌다가 순례단의 길을 뚫고 나갈 때마다 자신의 몸을 눕히며 길을 내 주었다. 민들레, 엉겅퀴, 애기똥풀 밭을 지나던 누군가가 방금 주었다며 골프공 십여개를 풀어낸다.

"골프공을 반환하니 미군기지를 반환하라" 즉석에서 만들어진 구호소리와 함께 철책 너머로 되돌아가는 골프공들, 그 뒤로 페트리어트 미사일, 레이더 기지 등 최강력 공군장비가 싸늘하게 놓여 있다.

이렇게 삼일을 걸어서야 소음과 소리를 구분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첫날에는 들을 수 없던 소리들이 부드러운 바람선을 타고 마음을 울리는 것을 느낀다. "그때는 몰라서 당했제, 인자야 알아서 항의를 하제"하시는 수라 마을의 어르신의 서글픈 나눔과 우리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미군기지가 이전하는 것도 반대한다는 정의로운 목소리들은 미군에 의해 다친 마을과 자신을 지켜내고, 정부가 내동이치고 묻어둔 역사의 뒤안길에서 용감하게 앞으로 나와 아픈 상처를 내보이며 잃어버린 땅심을 찾기 위해 외친다. 몇 백 데시빌이 넘는 소음보다도 더 크게 내 귀를 쩌렁쩌렁 울려대는 이 소리야말로 이 땅에 바로 설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소리이다. 움직임이다. 이런 올곧은 움직임들이 하제 마을, 매향리, 평택 그리고 우리 땅 곳곳에 자리 잡은 97개가 넘는 미군기지로 묶인 빼앗긴 땅에 그 지역 본래의 소리를 찾아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