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로 오염된 땅, 파주

 활동이야기/군환경       2002. 5. 11. 00:00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차로 달리는 길과 내 다리로 한 발 한 발 밟아가는 길은 다르다. 그것은 풍경과 현실의 차이다. 그래서 녹색연합 미군기지 순례단에게 하루하루는 군사시설로 가득한 살풍경을 우리의 몸으로 관통하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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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전국의 미군기지를 찾아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순례단

파주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캠프 하우즈(미2사단 공병여단 44공병대대)와 캠프 에드워드(82 전투 지원중대), 캠프 스탠톤(수색대대)을 간다. 캠프 하우즈는 2000년 8월 28일, 연료탱크 송유관 파손으로 경유 2천 리터가 유출돼 인근 하천을 오염시킨 곳이다. 사건 이후 3년이 다되도록 기름 범벅이 된 하천과 땅은 복구되지 않았다. 미군측의 대답은 간단하다. "예산이 없다."

복구비로 150억 원이 들 정도로 오염은 깊이, 넓게 상처를 남겨 놓았다. 캠프 하우즈 뒷문으로 이어진 실개천에는 아직까지 기름이 떠돌고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하소연할 곳 없는 이 곳 주민들의 마음처럼 실개천을 감싸고 있는 땅은 기름에 절어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렸다.

근처 농경지를 막대기로 휘저었더니 기름 냄새가 어지럽게 번졌다. 순박한 주민들은 이 땅에 소를 먹일 풀이라도 길러보겠다고 풀씨를 뿌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확인한 것은 단 한 포기의 풀도 이 땅에서 자라지 못한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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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기름유출로 오염된 캠프 하우즌 뒤의 하천과 땅

우리는 그 흙을 한 줌 움켜쥐었다. 기름 범벅 그 흙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캠프 하우즈 담장 안으로 던져 넣었다.

"이 땅을 복구해서 반환하라! 이 땅은 우리가 수천 년 지켜온 깨끗한 땅이다!"

"Let's go!"의 뜻은 "비켜!"?

파주는 특히 농민들과 미군의 마찰이 많았던 곳이다. 지난 해 가을에도 길가에 널어놓은 벼 나락을 미2사단(캠프 하우즈) 소속 탱크가 짓밟은 사건으로 농민들이 미군 탱크의 통행을 가로막고 시위를 벌였다. 이런 와중에 청년회장 신동국 씨가 강제 연행되자 농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미2사단 민사참모 윌시 소령은 오늘만 탱크를 보내주면 앞으로 한 달간 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이야기다.

그러다 지난 달 13일, 미군 중사는 약속이행을 요구하며 항의하는 주민 우경복 씨의 얼굴과 가슴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구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는 도로에 쓰러진 우경복 씨를 그냥 두고 트레일러를 향해 외쳤다고 한다. "Let's go!"

우경복 씨는 움직이는 트레일러 앞머리를 붙잡아 더 큰 화는 면했지만 분노한 주민들이 항의하자 미군들이 해명이라고 한 대답은 차라리 웃음이 난다. "Let's go!는 비키라는 뜻이다." 우리는 얼만큼 더 바보가 되어야 하는가.

뭐, 폭발물? 일단 뛰어!

1번 국도 '통일로'를 달리는 미군 트럭을 비껴 우리는 다시 걷는다. 캠프 에드워드는 지난 해 12월 휘발유 유출로 토양오염 사건을, 올해 3월에 다시 주유 시설 바닥 틈으로 1만4천8백 리터의 휘발유가 누출됐음이 알려진 곳이다. 캠프 에드워드는 2000년 1월 5일, 폭발물 사건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캠프 에드워드는 우리의 방문을 달가와 하지 않았다. 순례단이 도착하자 정문을 닫아걸었다. 우리는 우리 땅을 차지하고 있는 미군 부대가 닫아버린 문 너머에서 펄럭이는 성조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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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캠프 에드워드 안으로 난 경의선

"폭발물이 설치되었다는 제보를 받아놓고 주민들한테는 알리지도 않고 저희들끼리 내뺀 미군들이 우리를 지켜준다고요"

파주 토박이이자 사진작가인 '현장사진연구소'의 이용남(48) 소장의 말은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누구를 위한 기지인가, 누구를 위해 이 끝없는 피해를 감수하며 살아왔는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때로 경의선 철길과 나란히, 때로 철길을 가로지르며 걸어왔다. 그러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철길이 캠프 에드워드 안으로 뻗어 있는 것이 아닌가. 기름이나 자재 수송을 위해 경의선이 부대 안으로 들어오도록 철로를 부설했다는 것. 남과 북을 있는 그 길, 달리고 싶지만 달릴 수 없는 그 철길이 미군 부대를 통과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세탁공장의 비밀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군이 전용하도록 제공한 땅을 점유하고 있다. 우리는 허가 없이 들어온 불법 침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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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경고문

경고문

이 지역은 대한민국의 방위를 돕고 있는 미국군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우연한 사고로 여러분의 재산이나 생명에 침해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불법 침입자로서 이 지역에서 철거하고 여하한 목적으로도 이 지역을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여러분이 이 지역에서 재산이나 생명에 어떠한 사고로 부상을 입더라도 미국 정부는 피해보상을 하지 않습니다. 이 경고문에 대하여 의문이 있으면 해당지구 국방부 부동산 사령관에게 문의하십시오.


경고는 미군 군대가 하면서 문의는 대한민국 국방부에게 하라니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가 불법 침입한 셈인 이 곳은 한때 경기 북부지역에서 가장 큰 세탁공장이었다. 1960년대는 미국의 용역을 받은 한성실업이 미군복 따위를 세탁했던 곳이었다. 300여 명이 일했다고 하는데 이상한 점은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길어야 한 달이면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되는 것이다. 이 공장은 끝없이 사람을 뽑았다고 한다. 그것도 외지의 젊은 여성들만 골라서.

이 곳에서 세탁일을 하다가 어느 때가 되면 없어지곤 했는데 그들이 보내진 곳은 바로 미군 클럽이었다. 끔찍한 일이지만 세탁공장은 미군 클럽 접대부의 '공급소'였던 것이다. 세탁공장은 젊은 여성들에게 취직이라는 이름으로 던진 미끼였다. 이 세탁공장에서 불과 10분만 걸어가면 한때 화려한 클럽이었던 곳을 만날 수 있다. 이태원이나 평택에 클럽이 번성하면서 이제는 을씨년스러운 폐허로 남은 그곳은 마치 이제는 어떤 감독도 배우도 스텝도 찾지 않는 버려진 영화 세트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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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세탁공장의 내력을 설명하는 이용남 소장

"세탁공장의 오염 문제는 또 어떤가. 기름때를 제거하기 위해 벤졸이라는 약품이 사용된다. 그 많은 군복세탁을 위해 벤졸을 비롯한 온갖 화학약품들이 아무런 정화시설을 거치지 않고 날마다 분수천으로 쏟아져 나왔다. 1960년대, 아이들이 깨벗고 강가에서 물장구치며 놀았던 그 시절에 분수천 하류는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을 정도로 부영양화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1972년, 세탁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침묵 같은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시간동안 이 곳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땅으로 이렇게 굳게 잠겨만 있었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주민들에게 강제 수용한 땅의 용도가 끝나면 돌려주는 하는 것이 당연하다.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반환하겠다는 땅은 30년 전에 돌려줬어야 마땅한 이런 땅이 대부분이다.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주한 미군의 헬기 훈련에 대한 작전 계획은 저공비행이다. 그래서 작전을 수행하는 곳은 꼭 민가여야 한다. 헬기가 바로 집 위에서 낮게 계속 떠 있는 것. 그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고 인삼밭의 그늘막이 날아가기 일쑤다. 파주 광탄면 주민들은 이런 일을 연례행사로 치르고 있다. 해마다 피해는 계속되는데도 캠프 스탠톤은 미 국방부의 지시가 없는 한 이 계획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캠프 스탠톤이 남긴 또 다른 상처는 유류 창고로 쓰였던 곳에 남아 있다. 1964년 2월 17일, 다섯 남매의 가장이었던 한 소년이 기름 한 드럼을 훔치다 미군이 갈긴 켈빈 소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미군의 잘못은 한국 법으로 처벌 할 수 없으나 기름 한 드럼을 훔치는 것에 대해 그들이 한 처벌은 목숨을 뺏는 것이었다. 그것을 그저 실수라고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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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캠프 스탠톤 정문. 저공비행을 하며 주민들의 삶을 괴롭히는 헬기가 보인다

이곳은 이제 반환예정지가 되었다. 닫힌 문에 걸린 쇠사슬은 잔뜩 녹이 슬었는데 거기 걸린 자물통만 생뚱 맞게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것이었다. 연합토지관리계획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 기지를 일제히 점검하면서 열리지 않는 자물통을 새 것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열리지 않는 자물통을 채워 놓았던 이 땅은 주고 이 새 자물통같이 새 땅을 달라는 것인가. 30년을 묶어놓았던 세탁공장 부지에서도 확인했듯이 이미 용도가 끝난, 필요 없는 땅은 이제 줄 테니 필요한 땅을 내놓으라는 것이 연합토지관리계획의 본질인 것이다.

기름을 취급했던 이 땅이 온전할 리 없다. 먼저 이 땅의 오염 정도를 조사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를 가지고 복구계획을 세워야 한다. 반환은 그것이 전제되어야 그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곳이 다시 주민들의 깨끗한 논밭으로 돌려지는 날을 그리며 네쨋날 미군기지 순례의 길을 닫는다. 아홉 시간을 걸어온 밭에는 제법 물집이 잡혔고 몸도 지쳤다. 하지만 우리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녹색순례 특별취재팀 - 사이버 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