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기지, 서글픈 찔레꽃은 흐드러지고

 활동이야기/군환경       2002. 5. 14. 00:00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의정부로 들어서는 길, 서울의 지독한 교통지옥처럼 우리를 실은 버스는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의정부가 큰 도시인 모양이구나. 첫인상 한번 고약하네’  못다 한 잠을 청하러 다시 눈을 감는데 건너편에서 땅을 울리는 굉음이 날아들었다.

‘엇, 도시 한가운데 웬 탱크행렬?’

말로만 들었던 전시상황이 떠올랐다. 장갑차에, 군용트럭까지 열 대는 족히 넘는 미군차량행렬이 신호를 무시하는 건 둘째 치고 한밤중 도시 한가운데를 쏜살같이 달려갔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 소세지 따위를 얻어다 먹으면서 생겨난 부대찌개의 원조도시로 유명한 의정부. 도시 곳곳에 9개 미군기지가 버티고 앉아 도시를 움직이는 곳, 말 그대로 ‘미군병사의 도시’이다. 오늘 순례단 발걸음은 의정부에 있는 미군기지로 향했다.

[img:20020514_gf01.jpg,align=left,width=250,height=188,vspace=5,hspace=10,border=1]도시의 첫인상인 역, 의정부역 계단을 내려서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역 양옆에 들어선 미군기지 담벼락이다. 도로가 시원하게 달리다 미군기지 담벼락에 막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미군기지 안에 있는 골프장에서 튕겨 나온 공이 지나는 사람의 머리를 향한 적도 있었다. 돈을 내지 않고 가방을 집어가는 미군 덕분에 진열된 가방을 아예 쇠사슬로 묶어놓은 가게가 있는가 하면, 기지 둘레 곳곳에 들어선 유흥업소와 매매춘, 더불어 일어나는 기지촌여성 폭행과 살인사건 역시 의정부를 비껴가지는 않았다.

누구를 위한?

오월의 불볕더위가 쏟아지는 캠프 스탠리. 미군항공헬기장인 이 곳은 우리 땅을 50만 평이나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24만 평이나 늘리겠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순례단이 지나온 모든 기지가 그랬듯이 정문은 굳게 닫혀 있고, 의정부 경찰서 형사들의 발걸음만 분주했다. 기지가 계획대로 30만 평 넓어지면 한 고층아파트는 미군기지 철조망과 만나게 되고, 기지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의정부 교도소는 쫓겨나게 생겼다. 죄수들마저 헬기소음을 참을 수 없다고 해서 겸사겸사 양주군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니 보통 사람들 이야기야 더 듣지 않아도 되리라. 지금 헬기장 소음만으로도 주민들이 살 수 없다고 하는데 기지가 더 넓어지면 소음피해가 더 늘어나는 것은 번지는 불길을 보듯 뻔한 사실이고, 서울과 의정부를 잇는 43번 국도는 기지 가운데를 지나게 되는데 미군은 이 43번 국도를 막겠다고 했다. 기지 중앙으로 차가 다니게 될 테니 도로가 비껴가라는 것이다. 자주독립국가 대한민국! 누구를 위한 기지이고, 누구를 위한 확장이란 말인가?

석면으로 오염된 반환 기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다고 노래했던가? 마치 철조망에 갇힌 모양으로 안에서 밖을 향해 핀 찔레꽃은 진한 향을 풍기며 하얗게 흐드러져 있었다. 노란 애기똥풀과 넝쿨손 길게 뻗은 콩과식물은 사람들이 떠난 휑한 자리에서 자기들의 생태계를 만들고 있었다.

캠프 인디언, 92년도 미군기지가 다른 땅으로 옮겨가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쓰던 빈 건물과 낡은 시설들이 흉가처럼 남은 채 자물쇠로 굳게 닫혀진 땅이다. 몇해 전 기지 안에서 건물 단열재로 쓰던 석면이 그대로 버려져 있어 세간의 눈과 귀를 모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우리 국방부 소유의 땅이 되었고, 보통 때는 굳게 닫혀 있다가 가끔 미군이나 우리 군의 훈련장소로 쓰고 있다.

[img:20020514_gf02.jpg,align=right,width=250,height=188,vspace=5,hspace=10,border=1]순례단이 도착했을 때 우리군 한 명이 정문에서 보초를 서고 있더니 기지 둘레 철조망을 따라 걸어서 돌아오는 사이 미군들 차 몇 대가 모여 들었다. 그 중에 책임자라는 오노 준령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동계올림픽 쇼트랙경기에서 우리를 분노케한 선수와 이름이 같았다. 미군기지연합토지계획(LPP)에 따르면 2011년까지 전국에 있는 미군기지 4천만 평 땅을 우리 정부에게 되돌려 주고 새로운 우리 땅을 미군에게 내주겠다고 했다. 캠프 인디언의 모습은 미군이 떠난 뒤 그 기지가 어떻게 관리되고 버려지는지,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었다. 기름으로 땅이 오염되고, 발암물질인 석면이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각종 폐기물을 대충 흙으로 덮어 버려서 다시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는 처리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은 땅. 오늘은 살고 있는 우리 세대는 물론 다음세대들에게도 큰 짐을 주게 될 것이 뻔하다. 미군이 떠난 땅에서 살던 필리핀 사람들이 일이 년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백 여명이 죽고, 기형아가 태어나는 클라크기지가 떠올랐다. 그런데도 미군은 복원할 책임도 없고 보상할 의무도 없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공기와 함께 들이마시면 폐가 썩는, 아주 위험한 발암물질인 석면이 문제가 되었다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기지 바로 옆에 마을 사람들의 집이 있고, 용현동의 상수도 취수원 시설이 있었다. ‘이곳은 간이 상수도 취수원이니 일체의 수질오염 행위가 없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표지판이 무색했다. 버려진 기지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순례단은 정문으로 들어섰다. 보초를 서던 우리군과 미군 몇 명이 앞길을 막았다. 우리는 평화의 순례를 하고 있다, 오염현장을 우리가 직접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훈련하는 미군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안 된다고 했다. 돌려받은 우리 땅에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이고, 왜 아직도 미군이 훈련을 하고 있는지, 왜 미군이 우리 발걸음을 막는 것인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폐허가 된 기지 건물은 어떻게 할 것이며, 석면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항의했다.

“우리는 이제 관여하지 않겠다.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서 우리는 모른다.”

그러면서 도리어 순례단이 왜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있느냐고 물어왔다. 책임자가 석면의 문제를 모르고 있다니, 그리고 오염을 시킨 장본인이 관여하지 않겠다니... 다음에 또다시 와서 반드시 조사하고 세상에 알리겠노라 경고했다.

모순된 사회의 모습, 기지촌

[img:20020514_gf03.jpg,align=left,width=188,height=250,vspace=5,hspace=10,border=1]나지막한 집과 좁은 골목길, 가게, 작은 텃밭, ‘뺏벌’이라는 이름을 가진 캠프 스탠리 기지 옆 작은 마을은 여느 마을의 봄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외국인전용유흥접객업’이라는 간판만 제외하면 말이다. 의정부는 많은 미군기지와 군사훈련으로 인한 소음피해와 교통체증 같은 문제도 많지만 기지 둘레에 생겨난 유흥업소와 기지촌여성들의 문제 또한 심각한 곳이다.

60년대 무렵부터 생겨난 기지촌엔 70년대 천 명이 넘는 기지촌여성이 모이기도 했다. 뺏벌 기지촌에는 우리 나라 여성이 30여 명, 러시아 필리핀 같은 해외에서 온 여성이 70~8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나라 여성매매춘도 문제지만 국제매춘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뺏벌에서 ‘두레방’이라는 기지촌여성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유영님 원장님.

“못 배우고 먹고 살 길이 없어 유흥업소를 돌며돌며 팔려다니다 제일 마지막에 찾아든다는 기지촌 여성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얼굴이 아니라 모순된 우리 사회의 희생양, 버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지촌 여성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담하고, 마음을 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있는 유영님 원장님은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필요한 건 정신치료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미술치료와 컴퓨터 교육, 원한다면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단다.

때이른 불볕더위에, 도시 소음에 순례단은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러나 지쳐서 힘들어하기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척 많다. 다시 부어오른 발을 어루만지고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몰아내자. 몰아내자. 주한미군 몰아내자. 여기는 우리의 땅 주한미군 몰아내자.’

【녹색순례 특별취재팀 - 사이버 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