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땅을 빼앗나 - 문정현신부

 활동이야기/군환경       2006. 3. 8. 11:36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img|060307.jpg|550|▲ 문정현(왼쪽) 신부와 인권단체 회원이 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분교에서 국방부관계자들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주민을 강제퇴거시키려고 절단기로 학교 철망과 쇠사슬을 자르자 기둥을 부둥켜안고 안간힘을 쓰며 막고 있다.  사진제공 : 한겨레신문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0|1]


대추리에서 보내는 긴급 호소문 - 누구를 위하여 땅을 빼앗나



무엇을 위해 이 마을 사람들을 내몰고 집과 논을 싹쓸이하는 강제철거에 나섰는가. 우리나라를 들락거리며 국제적 분쟁에 군사개입 하겠다는 주한미군에게 엄청난 크기의 주둔 터를 내주기 위한 강제철거다. 개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 우리의 평화적 생존권을 강대국에게 양도하는 강제철거다.


신발 끈도 안 풀고 옷도 안 벗고 자고 일어나는 바짝 긴장한 나날을 며칠 보냈다. 내가 1년 넘게 살아온 시골마을인 경기 평택 대추리에 국방부의 강제철거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6일 아침 스물다섯대의 버스에 나눠 탄 전투경찰들이 속속 이곳에 몰려들었다. 주민들이 농지를 지키려 550일 동안 촛불을 들고 싸워온 대추초등학교를 겨냥하고 있다. 법원의 집달관들이 대추초등학교를 접수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지난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주민들은 새벽안개 속에서 농민가를 부르고 있다. ‘경찰폭력’에 대비해 대나무와 천을 이어 만든 들것과 구급약품들이 학교 안으로 운반되고 있다. 이틀 동안 밤을 새우며 마을 곳곳을 지키던 주민들과 시민들은 대추초등학교로 후퇴해 임박한 격돌을 비장하게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평택 팽성의 황새울 땅 285만평을 빼앗기 위한 행정대집행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밤마다 “올 것이 오는구나” 하며 초조해했다. 그리고 오늘 그날이 왔다. 이쪽으로 총구를 겨눈 ‘적진’에서 첫 총탄이 날아들었다. 정당성 없는 침탈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주민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실행키를 눌렀다. 불행한 시발이다. 扁쩜막?밀어붙이는 승리가 정당성을 가진다면 5·16 쿠데타와 광주학살의 책임자들도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주민들의 정당성이 드러날 것이다.

팽성 주민이 정부의 물리적 힘을 이길 수 있겠는가! 처절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끌려가고 재판받고 징역살이를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경찰은 강제철거에 저항하는 주민들에 대해 전원연행 방침을 세워둔 상태다. 주민들은 체포하면 체포되고 재판을 하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두면 감옥에 들어갈 것이다. 주민들은 그런 각오로 싸우고 있다.

한·미 정부는 전국의 주요 미군부대를 평택에 집결시키려 한다. 미군에게 내줄 땅을 농민에게서 강탈하려 한다. 조직된 물리적 폭력은 이제 회유와 협상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졌다. “우리에게 와서 상의 한마디 했느냐”는 주민들의 피맺힌 절규가 정부 당국자들을 때렸지만 돌아온 것은 “주민들의 투쟁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불합리해도 어쩔 수 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합리하면 길을 바꿔야 함에도 지금까지 태도를 보면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국민이 나서야 한다.

지난 4일 110여년 전 농민항쟁을 다룬 고 구본주씨의 조각상 ‘갑오농민전쟁’이 대추초등학교에 세워졌다. 작품은 바로 팽성 주민의 모습이다. 부릅뜬 눈, 결단을 품은 입, 바위를 품은 배, 확고부동한 손·무릎·발, 그리고 칼날 같이 선 핏줄과 근육이 곧 팽성 주민이다. 협의매수에 응하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도 반수가 된다. 떠날 사람은 그렇게 다 떠났다. 갖은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남은 주민들은 조각상 갑오농민전쟁의 모습 그대로다.

주민들은 행정대집행, 즉 강제철거를 막음으로써 붙을 공무집행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의 딱지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저앉지 않고 ‘승리’의 날을 기다릴 것이다. 승리의 그날에 500만원짜리 소를 내놓겠다고 손도장을 찍는다. 손도장이 여섯 번이니 소 여러 마리를 잡아 큰 잔치를 벌일 것이다. 그날 모든 이를 초대할 것이다. 그것이 소망이다. 그날 현 정부는 자신의 수치를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경조사로 바쁘게 들썩이던 한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를 왜 거대 경찰병력을 동원해 강탈하려 하는가. 거대한 쌀 생산지인 평택 평야에 철조망을 치고 농지를 파헤치겠다고 왜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리는가. 결국 무엇을 위한 강제토지수용인가. 무엇을 위해 이 마을 사람들을 내몰고 집과 논을 싹쓸이하는 강제철거에 나섰는가. 우리나라를 들락거리며 국제적 분쟁에 군사개입 하겠다는 주한미군에게 엄청난 크기의 주둔 터를 내주기 위한 강제철거다. 개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 우리의 평화적 생존권을 강대국에게 양도하는 강제철거다.

주권을 권력자에 양도한 적이 없는 시민들이여, 평택 대추리를 잊지 말자. 지금 대추리로 달려오라. 황새울에 둘러친 한·미 권력자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주민들과 함께 올해도 농사 짓자!


문정현/천주교 신부·평화바람 평화유랑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