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의 진실 - '생명의 소리가 사라진 황새울의 봄'

 활동이야기/군환경       2006. 5. 11. 19:32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5월 4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인 대추리, 도두리에 군과 경찰 병력 1만 5천 명이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강제철거(행정대집행)에 투입되었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을 설정하기 위해 투입된 한국군은 27km의 윤형 철조망을 설치하고 민간인 출입을 막았을 뿐 아니라 촛불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들을 무차별 수색하고 연행하였다. 지금까지 연행되었던 사람만 500여명이고 법원은 16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마을에서는 아직도 계속된 공권력의 감시와 수색으로 공포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날 황새울(대추리 지역의 넓은 들녘)이 울고, 사람도 울었다. 주요 언론에서는 수 년 만에 기록되는 최대 ‘공안사건’으로, 주민들이 받는 보상가가 억대에 달하고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지연되어서는 안 된다는 보도뿐이다. 그러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에는 우리가 더 눈여겨 봐야할 사실과 사람들이 있다. 저 너머의 진실을 들여다보자.
  
[imgcenter|060511_011.jpg|550|▲ 5월 4일, 대추리 도두리에 철조망을 설치하기 위해 투입되는 한국군  출처:민중의 소리|0|0]
두둑한 보상가와 안정된 이주대책? - 자신이 일구어온 소중한 삶터를 지키려는 주민들
대추리, 도두리 사람들은 이미 두 차례나 자신들이 일군 비옥한 농지를 강제수용 당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비행장을 만든다며 쫓아냈고,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기지를 건설하면서 강제수용을 당했다. 그 후 바닷물이 안성천, 진위천을 따라 내륙 깊숙이 밀려와 농토로는 가당치던 않던 척박한 땅에 둑을 쌓아 농토로 만든 것은 늙은 농민들이었고, 그곳이 바로 지금 국방부가 강제수용하려는 대추리와 도두리의 너른 들판이다.

[imgcenter|060511_013.jpg|550|▲ 5월 6일, 광화문 촛불집회에는 천 여명이 모였다|0|1]
국방부는 평당 15만원~18만원 씩 보상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추리 주변 평균 농지값은 평당 20만원을 훨씬 넘고 있고 국방부에서 대토로 마련한 서산은 대추리 만큼 옥토가 아니라 생산성이 훨씬 떨어진다. 정부는 농민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겠다고 했지만 이주하겠다는 사람들 중 직업을 얻은 사람은 2명에 불과하다. 도두2리에서 실제 농사짓는 68가구 중 26가구는 집만 있는 소작농으로 이들 중 11가구는 3천만원~8천만원의 보상금을 받고 쫓겨났는데도 국방부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대추리에 남아 있는 주민들이 보상가가 얼마이든 상관없이 그 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사람이 먹는 모든 것은 땅에서 나는 것”이라며, 땅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농민들에게 그 곳은 삶의 터전이고 고향이다. 주민들이 평화적 생존권과 주거권을 포기하고 수십 년간 스스로 개척해온 삶의 터전을 떠나는 문제는 단순한 ‘보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그 타당한 근거를 설득하고 합의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imgright|060511_012.JPG|199|▲ 5월 6일, 광화문 촛불집회. 평화의 촛불로 국가 폭력을 물리쳐야|0|1]계속 늘어나는 이전 비용,  통제할 방법 없어
2004년 국회에서 용산 기지 협정과 연합토지관리계획이 통과될 때, 국회의원들도 한국 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이 너무 많고, 당시 추산하던 35억~55억 달러보다 추가 부담액이 더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간다. 정부에서는 아직 명확한 종합시설계획(MP)이 나오지 않아 정확한 이전 비용을 계산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한미 양국 관계자들은 이미 더 많은 68억~88억 달러에 이를 수 있고 대부분을 우리가 부담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한미 협정문 제3조 1항에 ‘용산기지이전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권한은 SOFA합동위원회에 위임한다.’는 규정은 “연건평을 얼마로 할 지, 얼마나 호화로운 건물을 지을지에 따라 건설비가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는데 이러한 결정권한을 미국측 영향력이 절대적인 SOFA합동위로 넘기는 것은 백지수표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된다. 국회를 통과할 당시, 이 협정의 문제점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고, 이행합의서(IA)는 국회 동의를 밟지 않도록 해놓아 국민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음에도 통제할 방법이 없다. 2004년 국회에서 약속한 사후 청문회는 일정도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285만 평 확장면적, 미군에게 꼭 필요할까?
주한미군은 미국의 전략 변화에 따라 2만 5천 명까지 감축될 예정이고 앞으로 1천~3천명만 주둔하는 형태로 변화할 가능성도 예측되고 있다. 따라서 285 만평(서탄면 포함,평택 전체는 349만 평)을 확장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더구나 미국은 이 지역이 침수위험이 높으므로 285만 평을 3m 높이로 흙을 쌓아 지반을 높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남산 200개에 달하는 흙이 필요한 이 작업을 국방부는 선뜻 해 줄 모양이다.
집을 지을 때 몇 명이 살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듯, 미군기지 확장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적정 규모인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imgcenter|060511_019.jpg|550|▲ 확장되는 캠프 험프리 예상도|0|1]
평택 미군기지, 한반도 평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2006년 1월, 한미 양국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이 전략상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유연’성을 발휘해서 한반도뿐 아니라 대만이나 이라크도 갈 수 있다는 개념이다. 더 이상 ‘주한’미군은 한반도 안보를 위한 존재가 아니며, 주한미군이 출격하는 분쟁에 한국도 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정부는 주한미군이 들고나는 것을 제어할 수단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재로서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을 제어할 장치가 없다.

미군기지 이전 사업, 지연되면 국익을 해치나?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지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주장은 평택 주민들이 아니라 주한미군에 해야 할 것이다.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 국익을 해친다면 주한미군이 그 당사자다. 이미 작년에 반환되었을 미군기지 11개는 미군이 환경정화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폐쇄되었지만 한국정부에 반환되지 않았다. 더구나 반환되는 미군기지의 오염은 미국이 정화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정부, 특히 국방부는 이제 슬그머니 입장을 바꾸어 미국이 환경 정화에 문제에 ‘성의’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면서 미국의 환경정화 책임을 면해줄 태세이다. 버웨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 4월 초, ‘한국 정부가 환경문제를 일방적으로 해결할 경우 한미동맹을 저해할 것’이라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였다. 자신들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다. 양국이 합의한 바에 따르면 환경 정화는 미국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호의’나 ‘성의’가 아니라 책임져야 할 ‘의무’이다. 환경문제 미 해결되어 기지 반환이 한참 지연되고 있고,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비용을 담은 시설종합계획(MP) 발표도 9월로 연기되어 2008년까지 용산기지가 이전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왜 정부와 국방부가 나서서 국민들과 유혈 충돌까지 유발하면서 시급하게 미군기지 확장을 하려 하나.

대화보다 폭력 - 국방부, 대화 의지 있나?
국방부는 군인들은 비무장한 군인들이 시위대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하면서 폭력을 유발한 시위대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폭력 충돌 때문에 사람들이 다치는 일은 분명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대화, 설득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군 병력을 마을에 투입한 것은 바로 국방부이다. 주민들이 평화롭게 생활하고 있는 토지와 주거지에 군사시설 보호구역 지정하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고, 더욱이 군부대에게 곤봉을 지급하고, 진압훈련을 시킨 사실은 충격이다. 정당성 없는 정부가 폭력을 행사하고 , 폭력을 행사할 때 정부의 정당성은 사라진다. 미군기지 이전에 관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갈등을 무마하려는 것은 정부 스스로 사업 추진의 정당성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imgcenter|060511_017.jpg|550|▲ 마을로 투입되는 군부대를 몸으로 막고 있다. 출처:민중의 소리|0|0]
4월 30일, 국방부가 주민들에게 제의한 대화를 주민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한손에 칼을 들고 다른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고. 대화를 제의한 4월 28일, 국방부는 경찰과 헬기를 동원해 미군기지 수용 예정 터에서 강제진압 연습을 했다. 그리고 주민과의 ‘대화’에서 국방부는 첫째, 주민 보상만을 대화의 범위로 정하고, 둘째 기지 조성을 위한 측량 등에 협조하고 농사를 짓지 않으면 행정대집행과 철조망 설치는 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600일 넘게 싸운 주민들에게 갑자기 백기 투항하라고 협박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주민들은 제3자가 포함된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틀 뒤, 군부대가 투입되었다.

황새울에 생명의 소리를 되찾아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의미가 기술문명의 발전과 물질적 풍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사회 약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짓밟히지 않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 왔다. 노예, 노비가 없어지고, 아직은 부족하지만 여성의 권리가 존중되어 왔듯, 미래사회는 자신들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아이들의 권리가 존중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권리까지 존중되는 사회가 되었을 때, 진정한 녹색 사회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길은 멀리 있는 듯하다. 국가 안보라는 논리로 공권력이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나라에서 아이들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가 보장받는 것을 꿈꾸는 것은 아직 언감생심이다.  

[imgcenter|060511_020.jpg|550|▲ 황새울에 생명의 소리가 다시 울려야 한다. 출처:평화바람|0|0]
수만 명의 공권력 앞에서 주민들은 작은 존재였지만,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함께 할 때 힘은 더 커질 것이다. 작은 존재와 연대하는 것이 더 크게 환경을,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녹색연합은 이런 관점을 갖고 황새울에 생명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