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다 하고 박수칠 때 떠나라

 활동이야기/군환경       2006. 8. 25. 17:17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난 7월14일 한미 두 나라는 15개 주한미군 기지 반환에 합의했다. 미군이 사용하던 기지를 완전히 정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환한데다, 7월24일 환경부의 보고자료를 통해 공개된 29개 미군기지의 오염 실태는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정부는 국내 오염 기준치를 수백 배 초과한 기지가 수두룩한 것을 알면서도 미군이 요청한 대로 서둘러 기지를 돌려받았다.

미군은 자체 기준으로 지하 유류 저장탱크 제거 등 8개 항목의 정화계획을 모두 마친 15개 기지들을 반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미군의 정화 계획은 제대로 된 것일까?

[imgcenter|060825_01.jpg|412|▲ 파나마 훈련장에 붙여진 위험 경고판 (출처: Fellowship & Reconcilitation)|0|1]
비에케스 섬 주민 73%가 납 중독
지난 1991년 미군이 필리핀을 떠난 뒤 남겨진 ‘환경 재앙’으로 수빅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 주변 등지에서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백혈병 등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필리핀뿐 아니라 미군이 기지를 반환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서도 미군이 ‘환경 정화’를 했다는 곳의 실상이 어떤지는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반환에 합의한 15개 미군기지에는 경기도 화성의 매향리 공군 폭격장이 포함돼 있다. 현지 주민들은 미군이 치우겠다고 약속한 불발탄도 제거하지 않은 채 반환한 것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카리브해 푸에르토리코에는 매향리와 마찬가지로 수십 년 동안 미 해군이 폭격장으로 사용한 섬 비에케스가 있다. 1999년 미군 훈련 중 오폭사고가 발생해 비에케스 청년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폭격장 폐쇄운동이 불꽃처럼 일어났고 결국 2003년 미 해군은 비에케스를 떠났다.

비에케스에서 해군 폭격장 폐쇄운동이 ‘성공’한 것은 수십 년 동안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주민들이 폭격장으로 인한 피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비에케스 주민들의 암 발생률은 푸에르토리코의 다른 지역보다 30% 이상 높다. 공장이 하나도 없는 작은 섬인데도 주민들의 체내 중금속 농도 조사에서 대상자의 44%가 수은 중독 상태였고, 73%가 납 중독으로 밝혀졌다. 2004년 현지 보건당국은 자체 조사 자료를 근거로 비에케스섬 주민들의 보건 실태가 위험 상태에 이르렀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미 정부도 비에케스섬의 환경오염을 인정하고 이른바 ‘슈퍼펀드 사이트’로 지정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환경 정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 환경청(EPA)이 실시한 조사에서 잠재 오염 지역 11곳이 발견됐지만, 미 해군은 출입제한 구역으로 설정한 뒤 “주민들이 접근하지만 않으면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 해군이 취한 조치는 그게 전부였다.

[imgcenter|060825_02.jpg|550|▲ 비에케스에서 출입제한구역 안으로 들어가 환경정화를 요구하는 사람들 (출처: CRDV)|0|1]
미군은 오염물질이 ‘거기 서’라는 군대 명령을 받아 기지 철조망이나 출입제한 구역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걸까? 현지 시민단체인 ‘비에케스 구출과 개발위원회’(CRDV)는 지난해 8월부터 미 해군이 불발탄을 제거한다면서 20t이 넘는 포탄을 해상에서 터트려왔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어민들은 강한 폭발로 구름이 형성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고, 포탄 처리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비에케스섬 양쪽을 미군이 사용하고 주거 지역이 가운데 위치해 있기 때문에 포탄 처리로 생긴 화학물질이 대기 이동을 통해 주거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주민들은 미 해군이 보유한 불발탄을 안전처리 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터트린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미 해군은 이 모든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해양 생태계는 여전히 불발탄 부식으로 오염되고 있고, 미 해군의 불발탄 제거 방법은 비에케스 주민들 건강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주민들은 “미 해군 폭격은 멈췄지만 포탄을 폭파 처리하는 것과 폭격 훈련이 뭐가 다르겠느냐”며 분노하고 있다.

파나마엔 아직도 11만개의 포탄이…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미국은 1903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파나마운하를 건설하는 조건으로 파나마 전체 국토의 약 5%에 해당하는 주변 지역 관리권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파나마 국민들의 반환 요구가 거세지면서, 결국 ‘운하 통과 선박의 규제, 운하의 관리·운영·개선·보호·방어 등 운하 관리권과 또한 운하 보호와 방어’를 위해 주둔해온 미군 기지와 시설을 1999년까지 파나마 정부에 완전히 이양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지난 1977년 체결한 파나마운하 조약에 따른 것이다.

그러던 중 1998년 시민단체 ‘파나마 화해 캠페인을 위한 모임’(FRPC)이 미군이 파나마에 화학무기를 저장했을 뿐 아니라 실험까지 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환경 문제가 떠올랐다. 하지만 미군은 1998년부터 2년 남짓 지표면의 불발탄만 제거한 채 관리권을 파나마 정부에 넘겼다. 미군 쪽은 “3670만 평 훈련장에서 8500발의 불발탄을 제거하고, 사격장의 80%를 정화했다”고 주장했지만, 최소 11만 개의 미처리 지뢰, 박격포탄 등이 정글에 묻혀 있음도 인정했다. 남은 환경오염에 대한 정화 책임은 고스란히 파나마 정부가 떠안게 된 것이다. 남아 있는 지뢰와 박격포탄을 제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미군은 “빽빽한 정글과 험한 지형 때문에 포탄을 제거하기 어렵고, 만약 포탄 제거에 나설 경우 이 지역의 산림이 크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파나마의 ‘환경 파괴’를 우려해 불발탄 추가 제거를 할 수 없다는 미군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이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imgcenter|060825_03.jpg|550|▲ 비에케스 훈련장에 남겨진 불발탄 (출처: CRDV)|0|1]
1977년 체결한 파나마운하 조약은 미군 쪽이 “파나마의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환경 보존과 보호에 관해 서로를 인정하는 올바른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고 “생명과 건강, 안전에 해를 끼치는 모든 위험은 제거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방법”을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군은 관련 정보를 파나마 정부에 충실히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미군은 시간과 비용을 제한해놓고 환경오염 치유에 좀더 효과적인 방법들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마치 주한미군이 “반환 대상 미군기지에서 발견된 오염이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며 정화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파나마에서 미군이 반환한 군 기지 가운데 970만 평은 여전히 민간인 통제 구역으로 남았다. 심각한 환경오염과 그에 따른 위험 때문에 790개가 넘는 경고판과 철조망으로 봉쇄한 이 지역에서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미군과 파나마 보건당국이 취한 조치는 고작 주민들에게 불발탄을 식별하는 교육을 한 게 전부였다.

미국 텍사스주 남쪽, 멕시코 국경 가까이에 있는 샌안토니오에는 모두 7개의 군사시설이 있다. 가히 ‘군사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주를 미국에 편입시킨 뒤 국경 보안을 위해 수많은 군사시설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가운데 500만 평 규모의 켈리 공군기지는 70년대까지만 해도 미 공군 엔진의 50%를 관리하고, 핵물질을 다루던 주요 기지다. 이 기지는 또 2만5천 명을 고용하는 이 지역 최대의 노동현장이기도 했다. 그러다 1995년 군 기지 통폐합(BRAC) 계획에 따라, 지난 2001년 일부는 폐쇄되고 일부는 바로 옆 레클린 공군기지로 통합됐다.

암에 시달리는 켈리 기지 주민들
폐쇄 당시 EPA의 조사 결과 모두 54곳의 오염 지역이 발견됐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레클린 공군기지에 편입되는 부지에 있다는 이유로 아무런 정화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폐쇄 지역의 오염 발생 지역도 상황은 별반 나을 게 없다. 시멘트로 메워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게 고작이었고, 기지 외부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 등 각종 환경 문제가 지적됐다.

특히 기지에서 일하던 지역 주민 상당수가 암 등 각종 질병을 앓고 있고, 오염된 지하수가 확산돼 기지 밖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미 공군은 끝내 기지 외부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

현지에서 나온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켈리 기지 지역 주민의 95%는 멕시코계인데, 성인의 90%와 어린이의 75% 이상이 복합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또 기지 주변 주민의 45%는 암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환경 정화를 하지 않고 군대가 떠난 이곳을 보잉·록히드마틴 등 대규모 군수업체가 빌려 사용하면서 비행기 엔진 실험을 실시해 소음 등 새로운 환경 문제를 낳고 있다. 공군에서 거대 군수업체로 사용자만 바뀌었을 뿐, 이전과 비슷한 용도로 쓰이다 보니 추가 환경오염 가능성에 주민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imgcenter|060825_04.jpg|550|▲ 파나마에 남겨진 화학무기 (출처: OPCW)|0|1]
눈에 보이는 불발탄을 제거하고 철조망을 설치하는 정도로 ‘정화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무지하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미군이 사용하다 떠난 기지는 해외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환경 정화’를 둘러싸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비에케스나 파나마 등지의 사례는 미군이 주장하는 ‘정화 계획’이 국내 환경과 보건기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미국 쪽의 일방적인 계획을 받아들인 각국 정부 때문에 국민들만 고통을 받게 되는 게 현실이다. 제대로 된 환경 정화 없이는 미군기지 반환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동맹과 안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국익’과 환경오염과 그에 따른 피해라는 지금 발생하는 직접적인 문제를 비교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미군 스스로도 인정한 것처럼 환경오염은 앞으로 미군이 부딪힐 가장 큰 ‘도전’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미군의 존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미국 안에서도 골칫거리

군기지 통폐합으로 폐쇄된 부지 57%가 오염돼

미국 내에서도 군기지 폐쇄는 커다란 사회 문제다.

미국은 냉전이 끝나기 전부터 새로운 안보 환경에 발맞추기 위해 자국 내 군기지 통폐합(BRAC)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지난 1981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기지 통폐합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고 있다. 미군 당국은 88년부터 95년까지 모두 450개 군기지를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지 폐쇄는 전체적인 군작전과 군인 재배치를 뜻하는 것이지 군사력의 감소를 뜻하진 않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보면 대규모 군사시설의 폐쇄는 단기적인 실업률을 높이고 지역 경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많은 연방의회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군기지 폐쇄를 막으려고 엄청난 로비를 한다. 대규모 부지를 새롭게 계획하는 것은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지만, 군기지 오염은 미국 내 가장 큰 오염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국방부가 1994년 내놓은 자체 조사 결과를 보면, 폐쇄 대상 군사시설 부지의 57%가 오염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헌터스 포인트 해군 조함기지는 이미 1970년대 폐쇄됐지만, 환경정화 기준을 두고 샌프란시스코 시당국과 해군이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있다. 낮은 수준으로 정화하고 끝내려는 해군과 완전 정화를 요구하는 지자체 사이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한편, 저소득층 흑인 노동자의 주거 지역인 이곳은 새로운 주거단지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하지만 개발계획은 땅값 상승을 일으켰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사람들 때문에 가난한 흑인 노동자들은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있다고 한다. 마치 정부 주도의 재개발 사업 때문에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달동네로, 쪽방으로 옮겨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글 : 녹색사회국 고이지선 활동가 antikone@greenkorea.org


* 이 글은 한겨레 21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