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평화가 공존하는 땅, 평택

 활동이야기/군환경       2010. 1. 13. 13:56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imgleft|100113_01.jpg|267|▲ 평택의 미군기지에 대해 설명하시는 강상원 소장님 |0|0]크리스마스 이브, 평택을 방문하다
모두들 들떠 있는 크리스마스 이브. 녹색연합의 활동가들이 평택을 방문했다. 녹색연합의 주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인 군기지 환경문제의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을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3시경 평택의 웃다리 문화촌에 도착하였다. 녹색연합 활동가들을 기다리고 계신 분은 평택평화센터의 강상원 소장님이었다. 그곳 평택 지역에서는 2004년경부터 2007년까지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치열한 노력들이 있었다. 2007년 2월, 주민들이 이주에 합의하고 난 뒤, 평택 미군기지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평택평화센터이다.

평택미군기지의 역사
현장을 돌아보기 전, 평택지역 미군기지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소장님께서 안내해 주셨다. 평택에 외국군이 장기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1942년 일본군이 건설한 보급기지와 비행장은 해방 후 미군이 접수하였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군기지가 되었다. 현재 미군들은 신장동과 서탄면 일대의 오산미공군기지와 팽성읍 일대의 캠프 험프리 두 곳에 나누어 주둔하고 있다.

오산미공군기지는 미군 전투기들의 소음으로 인해 주민들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한다. 여기에 활주로를 다시 확장하려는 미군의 계획에 대해, 평택시 의회까지 나서서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한편 캠프 험프리 주변의 대추리 지역은, 경기 북부 지역의 미군부대들과 용산미군기지의 이전 계획에 따라 강제로 수용된 곳이다. 주민들이 강제로 쫓겨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일제가 기지를 건설할 때, 해방 후 미군이 들어올 때, 다시 2007년 미군기지를 확장할 때, 이렇게 3번에 걸쳐 자신들이 직접 일군 삶터에서 밀려나야만 했다. 사실 현재 대추리 지역의 비옥한 농토들은 모두 갈 곳 없던 주민들이 손수 갯벌을 개간하여 옥토로 바꾼 곳이라고 한다. 그렇게 피땀으로 일군 땅을 또다시 미군에게 빼앗긴 주민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올해도 농사 짓자”며 경찰들과 군인들에 맞서 논과 밭을 갈며 935일간 촛불을 들었던 주민들의 아픔이 떠올랐다.

미군기지, 무엇이 문제인가
강상원 소장님은 평택의 미군기지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의 심각성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무엇보다 주소마저 U.S.A.인 치외 법권의 기지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큰 문제임을 지적했다. 핵무기와 같은 위험한 무기들이 드나드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고, 환경을 오염시키더라도 감시하고 통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름유출, 오폐수 무단방류, 토양 기름오염, 폐기물 불법 매립, 전투기로 인한 소음 및 진동 등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피해로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imgcenter|100113_02.jpg|600|▲ 폭발물이 보관되어 있는 탄약고 |0|0]
[imgcenter|100113_02_.jpg|600|▲ 미군기지 내 오염물질 처리장 |0|0]
소장님의 설명을 들은 뒤, 한 시간 가량 오산공군기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국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평택 평야 한복판에 미군들은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미군기지 안에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군용 활주로 및 정비고, 오염물질 처리장 등이 있었다. 또한 폭발물이 보관되어 있는 탄약고가 민가와 불과 50여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날은 마침 전투기의 이륙이 거의 없었는데, 마침 U2기라는 정찰기의 착륙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의외로 크지 않은 소음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소장님께서 전투기에 비해 정찰기의 소음은 비교적 작다는 설명을 해 주셨다. 실제 군용항공기의 소음은 민간항공기 소음의 10배를 넘어선다고 한다. 이러한 소음 피해는 기지 주변의 주민들에게 큰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가져오고 있다. 2005년 평택시가 단국대학교에 의뢰해 실시한 주민건강조사결과, 평택미군기지 주변지역에서 소음에 노출된 주민들의 청력은 일반지역 거주자보다 저하되었고, 고혈압 위험은 23~33%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울증 위험은 1.8배, 불안장애는 3.6배, 일차성 불면증은 5.1배가 높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imgcenter|100113_03.jpg|600|▲ 멀리서 착륙을 시도하는 미군 정찰기의 모습 |0|0]
두 개의 평화
현장 방문 전 교육 시간에, 민혁 활동가는 “군대란 과연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졌다. 럼멜이라는 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20세기 100년 동안 국가에 의해 살해된 2억 명 중 1억 3천만명이 자국민이라고 한다. 또한 민간인 사망자가 전사한 군인보다 5배나 많다는 것이다. 전 세계 각국의 군대와 그들이 지닌 수많은 무기들은 진정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일까? 농민에게서 삶의 터전을 빼앗고, 주민들의 건강한 삶을 해치고, 주변의 환경을 파괴하면서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과연 누구를 위해 이 땅에 있는 것인가?

[imgright|100113_04.jpg|330|▲ 평택의 저녁노을 |0|0]이반 일리치라는 학자는 평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평화는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중심부에서는 ‘평화의 유지’가 강조되지만, 주변부의 사람들은 ‘평화로이 내버려두어져 있기’를 바랍니다”
현장방문을 마칠 때 즈음, 서쪽 하늘에 아름다운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소장님께서는 동요 ‘노을’의 배경이 바로 평택이라고 말씀하셨다. 미군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한국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이 땅에 와 있노라고 말한다. 하지만 평택 대추리 주민들은 다른 평화를 이야기할 것이다. 가을걷이를 마친 들녘에서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평화라고. 그렇게 올해도 내년에도 농사지으며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어지는 것이 평화라고. 한 평 땅에서 난 곡식을 이웃들과 나누며 사는 것이 평화라고. 쫓아내는 자의 평화와 쫓겨나는 자의 평화, 평택은 전혀 다른 두 가지의 평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라는 아기의 탄생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의 어머니는 몸을 풀 한 칸 여관방이 없어 마굿간으로 쫓겨가 예수를 낳아야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쫓겨나야 했던 예수. 그가 꿈꾸었던 평화는 무엇일지, 12월 24일 평택 들판에서 곰곰이 물어본다.

글 : 황인철 (녹색연합 수습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