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사흘째 - 삼척과 동해, 영동의 산마을 굽이굽이 휘어 돌아

 녹색순례/2004년       2004. 5. 15. 14:20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백두대간 자락에는 무수히 많은 마을들이 들어앉아 있다. 강원도를 뻗어가는 대간의 산줄기에도, 심산유곡 굽이마다 두메산골 마을이 앉아 있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을 이어온 마을마다 수많은 사연들. 그 자체가 문화요, 역사다. 강원도 영서지역 중에서 가장 두메산골에 해당하는 삼척시 하장면에서 댓재를 넘어 삼척시 미로면 일대를 휘어 돌아 동해시 삼흥동까지 걷고 또 걸었다. [img:0DSC_0112.JPG,align=right,width=300,height=199,vspace=5,hspace=10,border=1]풍년농사에 꼭 필요한 뜨거운 햇볕 덕분에 소금 땀을 흘리고 또 흘리며 작은 마을들을 지나쳤다.

처음 순례 계획에는 번천분교에서 시작해서 오늘 순례의 걸음을 내디딜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밤 각 조별 평가에서 순례가 너무 걷는 것에만 마음이 바빠 백두대간의 문화와 역사, 생태와 환경을 차분하게 느끼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30km가 넘는 일정의 일부를 줄이기로 했다. 댓재까지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영동의 첫 마을인 삼척 고천리 삼거리에서 본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삼척 하장면 근처에서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기가 무척 쉽다. 그래서 여러 팀으로 나뉘어 재주껏 차를 얻어 타기로 했다. 그런데 50여 명 가까이나 되는 순례단이 한꺼번에 얻어 타기는 쉽지 않았다. 도로변에 서서 손을 흔들며 한참을 기다려도 차는 쉬 멈추지 않았다. [img:0DSCN0039.JPG,align=left,width=300,height=225,vspace=5,hspace=10,border=1]그러자 순례단의 지원팀과 홍보팀에 소속된 정용미, 박경화 활동가가 도로 가운데 서서 손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차들이 달리다가 그대로 멈추었다. 어쨌든 여자들한테는 남자들이 가지고 않은 최대의 무기, 미인계가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삼척시 미로면 일대는 2000년 봄에 일어난 산불 중 동해안에서 가장 피해가 큰 곳이다. 그 해 고성, 동해, 삼척을 번져간 산불의 위력은 백두대간도 잔뜩 긴장했던 기세였다. 다행히 낙동정맥에서 가장 중요한 숲이라 할 수 있는 울진 북면 덕구리와 서면 소광리 코앞에서 불길이 잡혔다. 지금도 백두대간은 봄마다 산불이라는 유령과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번 들어 닥치면 수백 년 된 대자연의 속 깊은 숨결도 한 뼘조차 남기지 않고 몽땅 집어 삼키는 무서운 놈이다. 그래서 이곳 강원도의 영동지역 주민들이나 지자체, 산림을 담당하는 행정기관들은 봄이면 비상상태와 같은 긴장 속에서 5월의 신록을 기다린다. ‘녹두대간(녹색연합 백두대간)’ 순례팀이 태백부터 삼척 하장 번천리를 지나 영동의 중심마당인 삼척 미로면과 동해시 삼화동 일대를 이어가면서 살펴보니 올 산불의 긴장은 거의 끝나가고 있는 듯 했다. [img:0DSCN0093.JPG,align=right,width=300,height=225,vspace=5,hspace=10,border=1]불에 타 버린 검은 숲은 몇 해가 지나자 풀과 덤불이 우거져 촉촉한 초록 융단을 깔고 있었다. 자연의 힘은 이렇게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한낮의 뙤약볕을 가르며 저시고개를 오르니 드디어 광산이 나타났다. 백두대간을 파헤친 최대의 훼손현안이라면 그 으뜸이 광산이요,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석회광산이다. 순례단이 처음 마주한 광산은 쌍용자원개발의 석회석 광산이었다. 두타산 자락의 쉰음산 아래에서 동해시 삼화동 일대까지 수십만 평에 이르는 큰 규모다. 순례팀이 서 있는 능선부터 저 아래 길게 내리 뻗은 곳은 물론이고, 5km는 족히 될 것 같은 먼 곳의 능선에도 석회 광산으로 파헤쳐 흉물스런 모습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마침 조심하라는 사이렌이 울린 뒤 폭파작업이 있었다. 산을 뒤흔드는 굉음이 터지자 우리가 서 있는 산줄기에도 울림이 왔다. 폭파작업이 있을 때는 위험해서 공사현장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산 능선에 서 있는 우리를 찾아왔다.

[img:00DSCN0112.JPG,align=left,width=300,height=225,vspace=5,hspace=10,border=1]순례가 3일째로 접어드니 50명 가까이 되는 대원들도 서로들 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루 세 끼 옹기종기 같이 먹고, 발 냄새 풍기고 코 골며 같이 자고, 하루종일 굵은 땀을 흘리며 걸으니 정이 안 드는 게 더 이상하리라. 아침부터 내리쬐던 햇볕은 오후가 되자 더욱 강렬하다. 동해시의 작은 마을이 먼발치에서 보이는 달방댐 근처까지 걸어와서야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마지막으로 휴식을 한 달방댐 쉼터에 이르자 순례단 대부분이 신발에, 양말까지 벗어던지고 땅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지친 걸음에 달콤한 휴식, 그 어떤 보물보다도 반갑고 고마운 선물이었다. 그렇게 힘겹게 도착한 마을은 그야말로 백두대간의 마을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원방재 아래 동해시 삼흥리 서학골 마을이다. 백두대간의 주능선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골 깊은 마을이다. 물 소리, 바람소리, 그 골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마을…, 풍경 역시 아름다운 곳이다. 코끝에 와 닿는 내음만으로도 생태계에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단번에 드러나는 골짜기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계곡은 맑은 물을 한없이 토해냈다. 마을 입구부터 감자밭, 보리밭이 길 양쪽으로 펼쳐지고 밭농사를 짓는 중간중간 벼농사를 짓는 논들도 나타났다. 모내기 준비를 위해 가두어 둔 논물에는 아무르산개구리와 참개구리의 올챙이들이 제철을 만난 듯 부드러운 유영을 하고 있었다. [img:0DSCN0013.JPG,align=right,width=225,height=300,vspace=5,hspace=10,border=1]이제 웬만한 농촌 마을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흙과 나무만으로 빚어 올린 3m가 넘는 담배잎 건조창고가 마을 가운데 아직 건재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숨 막힐 듯 쏟아지는 시원한 물소리가 가슴 벌렁이게 하는 숙소에 닿자 5월의 허리답게 7시 넘어도 해가 남아 있었다. 순례단은 조마다 밥 짓기에 여념이 없다. 민박집 앞마당 곳곳에서 고소한 밥 냄새가 피어났다. 물이 풍부한 마을이라 하루 종일 우리 곁을 떠나지 않던 땀내도 시원하게 씻어냈다. 비누 없이도 그저 상쾌하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자연속의 시간들이 백두대간 깊은 산마을에서는 풍성하게 펼쳐진다. 도시생활에서는 미처 몰랐던 것, 깊은 산 두메산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잊지 못할 행복이 녹색순례 길 위에서는 차례차례 펼쳐지곤 한다.







※ 현장사진은 녹색순례 2004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pilgrim.greenkorea.org/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