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위기-‘녹색주의’ 대안 부상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6. 6. 30. 17:54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국사회와 시민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사회 진보 담론으로 ‘녹색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당장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나 이념적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지만 개발과 경쟁의 신자유주의적 난제를 근본에서 풀어갈 담론의 확장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무엇보다 시민운동진영에서 오랜만에 큰 사회변화 담론을 제시했다는 것도 눈에 띈다. 이미 5·31지방선거시민연대 등에서 막개발 반대를 가장 큰 활동목표로 삼은 점은 녹색주의가 급속히 시민사회에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imgright|060630_001.jpg|350|▲ 심재봉 화백|0|1]녹색주의 담론 형성을 주도하는 녹색연합 최승국 협동사무처장은 “사민주의를 포함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형성하기 위한 담론 대부분이 과거의 논리를 넘어서지 못한 인간 중심 성장론”이라며 “생명의 가치가 존중되고 시민사회의 다양성이 관철될 수 있는 녹색담론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위한 진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만을 위한 진보는 진정한 사회발전과 인간의 행복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녹색주의의 대두는 한국사회 미래 이념좌표 설정 논란과 현실 정치·사회·경제의 비민주성 극복 과제가 중첩되며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양극화,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질서 심화, 경기침체의 바람을 탄 무분별한 환경파괴·개발지상주의 정책 등 절차적 민주주의와 별개로 삶의 질은 피폐화되는 상황을 극복할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유력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현재 국내서도 진행 중인 지역 중심의 지역화폐운동, 공동체, 생협 등 풀뿌리 운동과 스웨덴, 네덜란드와 같이 시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해 ‘생태적 현대화’를 이룬 해외의 사례를 들어 녹색담론을 펼치는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소장은 “근대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소통과 토론을 통해 생태주의와 민주주의를 함께 발전시키는 녹색 합리주의”를 강조하며 녹색주의의 상을 그렸다.

녹색연합은 이 같은 논의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15주년 기념 토론회 ‘이제 녹색주의를 이야기 할 때다’를 개최하고 공론 모으기에 들어갔다. 오는 9월 말에는 ‘녹색경제, 실현가능한 대안인가’란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녹색주의와 관련한 연쇄 토론회를 계획 중이다.

사회변화 진보담론으로써 녹색주의는 그러나 확산에 앞서 만만치 않은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애매모호한 개념과 이론, 적용대상과 방법론을 체계화하지 못한 채 논의만 장기화될 경우 실천 담론으로 작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환경단체 내부에서명칭부터 이견이 존재하는 등 기존 생태·환경·진보 담론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한 혼선 정리도 숙제다. 최근 시민사회 진보담론의 쟁점으로 서있는 사민주의와의 충돌도 예상된다.

최승국 처장은 “현 시점에서 녹색주의는 일단 상징이자 깃발과 같은 것”이라며 “그 안에서 다양성을 포괄하고 민주·진보세력과 연대해 현장에서의 실천을 바탕으로 담론을 강하게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글은 시민의신문 이재환ㆍ정영일 기자의 글입니다. y2kljh@ngotimes.net



지속가능성장론과 녹색낭만주의 모두 넘어

“녹색 낭만주의 담론을 성찰과 상상력의 뿌리로 두며 녹색 합리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날 토론회의 핵심 주제였던 ‘녹색으로의 진보, 무엇을 담아야 하나’ 발제를 맡은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소장의 제언이다. 그는 “녹색 합리주의는 근대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소통과 토론을 통해 생태주의와 민주주의를 함께 발전시켜 갈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입장은 지율 스님의 천성산 투쟁으로 대표되는 성찰과 비판의 녹색 낭만주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 실현가능한 녹색 합리주의를 풍성하게 만드는 보완관계로 보는 것이다.

[imgcenter|060630_002.jpg|550|▲ 녹색연합은 15주년을 맞아 서울 명동 청어람 빌딩에서 '이제, 녹색주의를 이야기 하자!' 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고 있다. 시민의신문 양계탁기자|0|1]
지율스님과 녹색평론의 담론, 김지하의 생명사상 등 생태적 감수성과 영성을 강조하고 농업중심의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는 흐름을 녹색 낭만주의로 정리한 구 소장은 유기농산물 직거래, 생협운동, 귀농운동, 공동체운동의 철학적 호수이자 생명 담론의 뿌리로 녹색 낭만주의가 우리 사회·문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산업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다 보니 실현가능한 대안 제시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와 기업, 일부 환경운동진영이 추구하는 지속가능발전론에 근거한 환경관리주의는 비판적이지만 녹색 낭만주의의 과잉은 생태 권위주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구 소장은 이에 따라 합리성을 바탕으로 산업주의·자본주의를 변형, 환경위기를 극복하는 담론인 녹색 합리주의 담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녹색당, 에코 맑스주의 담론을 녹색 합리주의에 포함시킨 구 소장은 국내에서도 주류 환경단체와 녹색정치세력, 에너지대안센터 등에서 그 전형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본주의와 산업주의를 어떻게 변형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 명확한 답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며 “때문에 녹색 합리주의는 녹색 낭만주의의 근본주의적 담론과 지속가능발전론의 현실주의 담론 속에서 동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화와 관료화의 덫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구 소장은 우선 합리적 토론을 통해 소수의 이해와 가치를 배려하면서 공공의 가치와 이익을 확보하는 숙의(토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의 심화를 제시했다. 구 소장은 “생태적 근대화를 급진전 시킬 방안”이라며 “녹색 합리주의는 숙의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생태민주주의의 절차와 제도를 통해 성찰적 근대화를 발전시켜 생태적 합리성을 높이고자 하는 담론이자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환경재단이 시장 안의 전략을 택했다면, 지율스님은 시장 밖의 전략을 선택했다”는 표현으로 그동안 녹색 대안을 찾는 많은 여정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지역화폐운동, 안성의료생협, 광명YMCA등대생협, 성미산 사례, 한살림 등을 제시하며 “이러한 힘이 사람들의생각과 삶을 조금씩 바꿀 때 지역이 바뀌고 나라가 바뀐다”고 말했다. 삶의 현장에서 생태주의와 민주주의를 바탕에 둔 자발적 참여를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과를 맺었음에도 실질적 민주주의를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구 소장은 아래로부터의 녹색화와 위로부터의 녹색화를 동시에 찾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태공동체, 생협, 마을만들기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녹색화는 비교적 성공했지만 지역과 국가 수준으로의 영향력 확대는 한계가 있다”며 “국가, 정치, 경제체계를 어떻게 녹색가치지향으로 바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시장·경쟁국가 체제에서 쉽지 않은 문제지만 불가능하진 않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활력있는 시장경제를 유지하면서도 민주적 통제와 계급갈등의 타협을 이루고 생태적 현대화를 통해 환경을 보전하는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국가가 사례로 제시됐다. “먼 길이 되겠지만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소통 속에 녹색대안은 마련될 것이다.” 구 소장이 제시하는 큰 틀의 방법론이다.

이글은 시민의신문 이재환 기자의 글입니다. y2kljh@ngo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