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발렌타인데이, 어떻게 할까?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7. 2. 9. 16:55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슬슬 바빠질 시간이다. 가슴이 설레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하고 골머리를 앓을 시간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할 지, 어떻게 기억에 남을 멋진 시간을 보내야 할 지 고민하거나 아직 고백을 하지 못한 사랑이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이 나의 사랑을 받아 줄 것인지에 대해 걱정을 하는 시간이다.

[imgleft|070209_001.jpg|250||10|0]그렇다. 발렌타인 데이이다. 많은 사람들이 쵸콜렛을 살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질 것이다. 그런데, 발렌타인데이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 쵸콜렛의 마법으로 행복해 지는 것일까? 아니다. 초콜렛은 사람들을 슬프게도 한다. 발렌타인데이에 쵸콜렛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쵸콜렛은 시기와 질투 외로움의 상징이다. 짝 없는 이들은 진열장에 화려하게 놓여져 있는, 사람들의 손에 예쁘게 포장되어 들려져있는 초콜렛을 바라보며 ‘발렌타인데이가 왜 있는지’, ‘크리스마스가 지나간 지 얼마나 됬다고 또 이런 연인들의 날이 있는지...’ ‘세상 초콜렛이여 다 녹아버려라’, 이런 혼잣말을 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라고 하겠다. 그런데, 초콜렛은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그자체이다.

이른 새벽,
나를 깨우는 엄마의 손은 울고 있었다.
너는 아홉 살,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자고 있는 동생들, 저 아이들은 먹을 것이 필요해.
가라, 아들아.

열두 살이 되었다.
여섯시에 시작되어 여섯시에 하루는 끝난다.
끝없이 코코아를 따도
엄마도 동생도 볼 수 없었다.


400개의 코코아가 200그램의 쵸콜렛을 만든다.

오늘도 400개가 넘는 코코아를 땄다.
작년의 오늘도 400개가 넘는 코코아를 땄다.
재작년의 오늘도 400개가 넘는 코코아를 땄다.

하지만 아직도 난 쵸콜렛을 먹어본 적이 없다.


2002년 국제 적도 농업 기구 (The International Institute of Tropical Agriculture)의 조사에 의하면 약 284,000명의 9살에서 12살 사이의 아동들이 코코아 농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 중 12,500명의 아동은 인근 지역에 가족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아동매매의 가능성을 시사해준다고 한다. 글로벌 익스체인지는 그 보고서에서 이 아이들의 실상을 잘 밝히고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아이보리코스트에 있는 코코아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경우, 말리, 버키나, 파소, 토고 등의 나라에서 팔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아이보리코스트에서 좋은 직장을 찾아 집으로 돈을 보낼 것이라고 믿으며 아이들을 판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코코아 농장에서 거의 돈을 받지 못하거나 돈을 아예 받지 못하면서 일하게 된다.

이 아이들이 일하는 코코아 농장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아이들은 기다란 칼을 가지고 카카오 열매를 수확해야 하는데 살충제에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일주일에 80-100시간을 일하도록 강요받으면서도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폭행을 당하기 일쑤이다.  IITA에 의하면, 아이보리코스트의 코코아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66%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으며 64%의 아이들은 14세 이하라고 한다. 400개의 코코아를 따야 200그램의 쵸콜렛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딴 카카오로 만들어진 쵸콜렛을 맛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세상 어느 한 곳에서 아홉 살 난 아이가 한입에 베어 무는 쵸콜렛을 만들기 위해, 다른 한 곳에서는 아홉 살짜리가 자기 팔보다 긴 칼로 400개의 코코아를 따야하는 것이다.

초콜렛은 아이들만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지구에 살고 있는 많은 생명들이 슬퍼하고 있다. 기업적 코코아 농장들은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숲을 없애고 살충제와 비료를 뿌려대고 있다. 코코아 재배에 의하여 잃어버린 열대 우림은 약 800만 헥타르에 이른다고 한다.  (World Agriculture&Environment, Jason Clay) 이는 서울시의 128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더욱 큰 문제는 코코아 농장이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평균기간은 25-30년이므로 향후에는 더 많은 숲의 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육상생태계 종의 절반이 열대 우림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숲의 손실은 종 다양성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발렌타인데이를 없애야 하는가?

[imgleft|070209_003.jpg|300||0|0]난 발렌타인데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슬픈 발렌타인데이가 아닌 즐거운 발렌타인데이를 만들자는 것이다. 상업적으로 치닫는 발렌타인데이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지만 발렌타인데이를 통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녹색 발렌타인데이를 만들자는 노력은 이미 시작되어왔다. 글로벌 익스체인지나 옥스팸 같은 단체에서는 아이들에 의해 생산되는 코코아를 사지 말 것을 허쉬나 네슬레 같은 대기업에 요구하면서 코코아 생산들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공정무역 운동 외에도 레인포레스 얼라이언스 (Rainforest Alliance)같은 단체는 코코아 생산을 통한 숲의 파괴를 막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쵸콜렛을 통한 세상 바꾸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판매 수익의 10퍼센트를 야생동물보호를 위해 기부하는 초콜렛도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의 시작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주말이다. 발렌타인데이를 준비하기위해 쇼핑을 할 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해 쇼핑하러 가는 그 발걸음을 막을 생각은 없다. 소비는 당신의 권리이다. 하지만, 당신의 소비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쓰여진다면 그것이 발렌타인데이에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한다. 사랑을 전하는 당신의 손에  아이들의 눈물이 담긴 쵸콜렛이 아닌, 수 많은 야생동물의 보금자리를 파괴한 쵸콜렛이 아닌 ‘착한’ 쵸콜렛이기를 기대해 본다. ‘착한’쵸콜렛을 고르는 방법은 쉽다.  공정무역 인증 마크나 열대우림보호 인증이 있는 쵸콜렛이나 야생동물 보호 기금으로 쓰이는 쵸콜렛을 고르면 된다.

혼자서 비를 맞는 것은 우울한 일이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행복합니다.
혼자서 저 먼 길을 돌아오라면 까마득한 일이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아무리 먼 길도 짧을 겁니다.

(이정하, “함께라면” 중에서)



사라져가는 열대우림 한 구석에서 살고 있는 야생동물에게, 오늘도 코코아를 따고 있을 한 아이에게 사랑을 고백해보자. 나도 함께 이 지구에 살고 있다고 말해보자. 그동안 미안했다고 말해보자. “함께하는” “즐거운” 발렌타인데이가 되었으면 한다. 나도 이번 주말에는 착한 쵸콜렛을 사야겠다.

글 : 녹색연합 정책실 모영동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