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의 화두-불교적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7. 5. 22. 17:34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중부 내륙에 사람의 발길이 끊긴 숲이 있다. 문경 봉암사의 사찰림이다. 한국 불교의 최대 종파인 조계종은 많은 사찰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중에서 조계종의 정신적 자존심으로 불리우는 사찰이 바로 희양산의 봉암사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에 속해 있는 산으로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에 걸쳐 있고, 봉암사는 희양산의 경북 문경 쪽,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골짜기 안에 자리잡고 있다.

[imgcenter|070522_001.jpg|570|▲ 하늘에서 본 봉암사 전경이다. 희양산 자락의 드넓은 숲속에 위치한 봉암사, 전체 숲을 국가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다. |0|5]
   봉암사는 신라 선문 9산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정점인 사찰로, 신라 헌강왕 5년인 879년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지선 스님이 창건했다. 그 때부터 봉암사는 희양산에 터를 닦고 1100년의 풍상을 이어왔다. 봉암사는 조계종 특별선원으로 참선과 정진의 대명사다. 우리 불교의 도도한 전통을 이어온 터전으로 지난 80년대 초부터 봉암사 입구의 일주문 일대부터 사찰림 전체를 오직 수양의 공간으로만 삼고 행락객의 발길을 금했다. 봉암사는 성철스님을 비롯한 선승들의 요람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한국불교의 중흥을 모색한 근거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선방 스님들에게는 때가 되면 거쳐 가는 정진의 언덕인 곳이다.  

   봉암사는 그 면면에 비해 일반에게 잘 알려진 사찰은 아니다. 하지만 불교계 내에서는 국내의 어떤 유명사찰보다 확고한 위치를 지닌 사찰이다. 역사로 보나 수행의 분위기로 보나  불교계의 자존심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조계종이 직접 관리하는 특별수행도량으로 예산 일부를 총무원에서 직접 지원하고 있으며, 사찰의 운영과 관리에 중대한 부분은 조계종에서 음양으로 챙기는 곳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내력이상으로 한국불교에서 차지하는 각별한 위치는 오직 용맹정진만을 하는 스님들의 수도 도량이 된다.

   봉암사는 조계종에서 직접 관리 운영하며 100여명에 가까운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조계종이 뜨거운 갈등의 도가니에 빠져 세인의 이목을 받을 때도 봉암사만은 정진의 한 길을 갔다. 다만 조계종이 정말 위기에 있다고 판단될 때는 봉암사가 나선다고 한다. 그래서 봉암사가 나설 때는 그 현안이 조계종의 근본적인 현안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imgcenter|070522_002.jpg|580|▲ 봉암사는 수행하는 스님들 뿐이다. 정적이 감도는 사찰 주변에서 가끔 스님들이 보인다. |0|5]
봉암사는 분위기에서부터 여느 사찰과 다르다. 한국 불교의 정신적 거점으로 숭상받는 봉암사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다른 사찰의 스님들도 예외가 아니다. 주지 스님의 허락이 없으면 그 누구도 봉암사에는 들어올 수가 없다. 여기에는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주라는 배경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일 년에 단 한번 석가탄신일에만 외부에게 공개되는 봉암사는 그 기풍에 있어 국내 유일무이의 사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암사는 2002년 국가산림유전자원보전림으로 지정되었다. 봉암사가 직접 나서고 조계종 총무원과 녹색연합 등이 협력한 결과다. 일의 발단은 2000년부터 인데, 봉암사 주변 희양산 일대에 광산개발과 대규모 레져단지 조성 등의 난개발 압력이 이어지면서, 이런 흐름 속에 2001년, 참선도량으로의 보전에 위기감을 느낀 봉암사 대중스님들을 중심으로‘봉암사를 봉암사답게 가꾸고 지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 결과 보호지구로 지정하여 영구히 지켜가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봉암사가 주도하고 조계종총무원이 합심하여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검토하였고 이 과정에서 환경부의 생태경관보전지역과 산림청의 산림유전자원보전림의 두가지 안을 두고 검토하다가 최종적으로 산림유전자원보전림으로 결정하고 추진하게 되었다. 봉암사 주변의 희양산이 백두대간의 중추로 산림이 주요한 자연의 구성요소였기 때문에 산림유전자원보전림으로 지정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2002년 봄부터 봉암사는 백두대간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마지막 터전인 희양산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작업을 전개하였다. 그 일환으로 희양산 일대의 자연생태계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산림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보호지구로 지정 건의 하였다. 이에 산림청과 경상북도가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약 200만평 이상의 땅을 산림법상의 산림유전자원보전림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후 봉암사는 국내의 대표적인 사찰보전림으로 이어져고 있다.

[imgleft|070522_003.jpg|250|▲ 수행중 잠시 휴식을 위해 봉암사 주변의 숲길을 걷고 스님의 모습|20|5]희양산은 자연경관도 국내 으뜸에 꼽힌다. 솟은 바위의 모습은 북한산국립공원의  인수봉, 선인봉이나 설악산국립공원의 울산바위 등에 견줄 만하다. 거대한 바위 봉우리를 정점으로 하여 백두대간을 따라 남쪽으로는 대야산, 북쪽으로는 백화산이 이어진다. 봉암사는 희양산의 가장 넓고 깊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의 이치를 절묘하게 수렴하는 터에 자리 잡았다. 양택풍수의 원리를 충실하게 반영 한 것이다.

   봉암사 일대의 숲은 충북과 경북의 접경인 백두대간 중부 생태계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경내를 휘감아 도는 소나무 군락을 비롯하여 참나무과의 갈참나무와 졸참나무가 그윽한 깊이의 숲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느티나무가 고요한 정적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수달, 하늘다람쥐, 담비, 삵 등을 비롯한 주요 멸종위기종이 광범위하게 서식하고 있다.

   여름 철 장마나 수해 때면 계곡을 헤매는 어린 새끼 수달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작년에도 탈진한 어린 수달을 스님들이 정성스레 살펴주었다고 한다. 사람의 발길을 금하고 오직 자연의 공간만으로 이어온 시간의 결과가 동식물에게는 가장 편안한 삶의 터전이 된 것이다.    

   봉암사가 희양산 일대의 사찰림을 국가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한 것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2007년 현재 국내의 어떤 사유지도 스스로 자발적으로 국가보호지구로 허락한 경우는 없다.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수백만 이상의 신도를 가진 여러 종교 중에서 종교재단의 토지나 사유지를 공익적인 차원에서 헌납한 경우는 거의 없다. 현행 법상 국가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면 일체의 개발행위는 물론 실질적인 사유권 행사도 거의 불가능하다.

[imgcenter|070522_004.jpg|580|▲ 봉암사는 항상 정적이 감돈다. 스님들이 하루 종일 선방에 들고 나면 경내에는 인적이 끊긴다. 봉암사는 일년내내 선방 사찰 특유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0|5]
그런 점에서 보면 봉암사는 새로운 시대의 화두를 스스로 답한 것이다. 백두대간은 2005년 가을 백두대간보전법이 만들어져 실질적인 보전지구로 되었다. 그 실질적인 내용을 가장 먼저 자기희생적으로 실천한 것이 봉암사다. 그러하기에 봉암사와 희양산 만은 세속의 간섭 없이 영구히 참선 도량으로 가꾸어 가야 한다. 그럴 만한 가치와 자격이 있는 곳이다.

   희양산을 산림유전자원보전림으로 지정했던 봉암사의 노력은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불교적인 내셔날트러스트 운동이었다. 그러나 봉암사의 이런 노력에 비해 정부의 보호지구 관리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지정 이후 체계적인 관리노력이 거의 부족했던 것이다. 특히 해당 주무관청인 경북도청과 문경시는 관리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모니터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희양산은 최근 등산객들이 일부 유입된다고 한다. 그러나 산세가 험하고 절벽이 많아 매우 위험하다고 하다. 재작년에도 정상으로 가다가 사망사고를 당한 등산객이 있었다. 아울러 일부 백두대간 등산객들의 무분별한 이용으로 특정구간은 훼손이 심각한 상태다. 그러나 희양산을 경계로 충북지역인 괴산군은 대책없이 군청홈페이지에 등산안내지로 희양산을 올리는가 하면 문경시는 산림청으로부터 지원받는 관련 예산을 시장의 실질적인 보전과 관련이 없는 다른 곳에 쓰고 있다.

[imgcenter|070522_006.jpg|580|▲ 대웅전에서 예불을 드리는 수행스님들의 모습|0|5]
   희양산의 정상 쪽은 백두대간 주능선에서 벗어나 있다. 정상은 말 할 것도 없고 백두대간 종주하는 길도 상당히 위험하다. 더욱이 희양산에서 문경 지역에 해당하는 봉암사쪽은 등산로도 없어서 더욱 위험하다. 스님들 이외에 다닐 수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경상북도나 문경시 등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이나 희양산에 대한 안내판을 설치하지 않아서 백두대간 종주자들 중에서 길을 잃고 봉암사쪽으로 위험한 길을 내려온다는 점이다. 봉암사 사찰림은 조계종에서도 개방하지 않고 다른 신도들도 방문하지 않는다.  오직 자연의 공간으로 국가차원에서 보호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관리는 부실한 셈이다. 여기에 봉암사의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imgcenter|070522_005.jpg|580|▲ 봉암사의 마애불상|0|5]
   불교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종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민족의 역사 속에 숨 쉬어 온 불교는 정신과 철학, 문화와 예술의 터전이었다. 이런 실체가 바로 사찰이고 이를 지켜준 터전을 지켜준 바탕이 사찰림이다. 그런 점에서 봉암사는 사찰림을 사유지로 인식하지 않고 가장 공공적인 차원으로 접근하여 지켜왔다. 더욱이 민족의 생태축인 백두대간을 정부 보다 앞서서 가꾸고 지켜온 셈이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그런 노력에 외면에 가까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희양산과 봉암사의 보호림에 대한 전면적인 관리대책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터전을 백두대간과 국가산림자원 등의 보전을 위해 스스로  자승자박한 봉암사의 노력에 대한 정부의 예의다.

                                                                                
글,사진 :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서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