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카 셰어링] ① '자동차 두레' 내건 성미산 마을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7. 11. 6. 13:43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자동차를 동네 사람들과 나눠 쓴다고?


대기오염·교통 혼잡·교통사고·주차난·에너지난 등 자동차 사용에 따른 피해는 엄청나다. 게다가 골목길까지 자동차가 점령하면서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어 다닐 권리마저 사라진 상태다. 과연 대안은 없을까? 오래 전부터 생태공동체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 성미산 마을이 10월 7일 마을 단위로는 국내서 처음 시작한 '자동차 두레(카 셰어링)'는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 다섯 가구가 참여한 이 실험을 오마이뉴스가 4~5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img|071106_001.jpg|580|▲ 인도가 없는 골목길. 아이들이 마음놓고 놀 수가 없다.  ⓒ 정선미|0|1]

카 셰어링(Car Sharing)이란 것이 있다. 직역하면 차 나눔 혹은 차 공유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개인이 각자 자동차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카 셰어링을 하는 영리업체 혹은 비영리협동조합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필요할 때만 자동차를 쓰는 시스템을 뜻한다.

이런 카 셰어링이 한국에서도 시작된다. 바로 서울 성미산 마을 주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약 60m밖에 안되는 작은 산 성미산을 중심으로 성산동·연남동·망원동 등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 도시생태마을을 꿈꾸며 살아가는 곳. 성미산 마을에서 국내 최초의 카 셰어링 조합 '성미산 마을 자동차 두레'가 2007년 10월 7일 문을 열었다.

자동차 없는 골목길에선 고무줄.제기차기.사방치기

성미산 마을 주민들이 카 셰어링, 즉 자동차 두레를 고민하게 된 것은 생활 불편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도시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성미산 주변지역도 놀이터나 공원이 부족해서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쉬거나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공간이 없다.

길을 지나갈 때면 당당히 속도를 내는 자동차 옆으로 움찔하며 피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일상다반사이고, 골목길에서 자전거나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달리다가 자동차와 부딪칠 뻔한 일을 겪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들과 노인이 많은 지역 특성상 골목길을 그냥 무법천지로 둘 수는 없는 일. 결국 성미산 마을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골목길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생각부터 바꾸어가기로 한 것이다.

2005년 10월 성서초등학교 앞 골목에는 차량출입을 막는 국화 화분이 곱게 놓여졌다. 그리고 어른과 아이들이 아침부터 골목으로 쏟아졌다. 고무줄 놀이며 제기차기, 사방치기 등 다양한 전통놀이가 골목 여기저기서 벌어졌고, 구경나온 주민들은 떡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웃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대도시 서울 한복판 어느 작은 골목길에서 이웃이 만나는 동네잔치가 열린 것이다.

차가 아닌 사람이 주인인 골목길이 얼마나 안전하고,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는지 알리는 것을 시작으로 성미산 마을의 안전한 골목길 만들기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골목길 축제가 동네 3곳으로 확대되는 등 이후에도 축제는 마을 주민들의 호응을 얻으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자동차 없는 골목길에선 아이들이 뛰놀고 어른들도 마을잔치

[img|071106_002.jpg|580|▲ 골목길은 이미 자동차가 점령했다.  ⓒ 정선미|0|1]

과거 골목길은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주민들이 오고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자, 아이들 놀이터였다. 그러나 지금 골목길은 어느 곳 할 것 없이 도로 혹은 주차장이다. 사람들 보행이 가장 많고, 아이들과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과 노인들이 낮이나 밤이나 생활하는 골목길에 사람들이 머물 만한 공간은 없다. 도로뿐 아니라 골목길이나 동네 작은 공터도 자동차가 차지한 지 오래이다. 결국 골목길 안전의 근본 해결책은 자동차가 줄어드는 데 있다.

2006년 10월, 성미산 마을 주민들은 자동차 위협이 없는 안전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녹색사회연구소와 함께 독일로 답사를 다녀왔다. 그 곳에서 주민들은 자동차 주차와 통행을 제한하여 주민들이 안전하게 보행하고 생활할 수 있는 카프리(Car-free) 주거단지를 살펴보고, 실제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을 만났다. 그리고 독일 최초 카 셰어링(Car-Sharing) 회사 stattauto의 담당자를 만나 카 셰어링을 통해 차량을 줄일 수 있는 방안도 살펴보았다.

보행자의 안전을 중시하고 자전거를 일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된 도로시스템은 주민들이 바라던 안전하고 살기 좋은 마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제도와 정책의 지원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래도 집집마다 자동차를 소유하는 대신 필요할 때 자동차를 나누어 탈 수 있는 카 셰어링 시스템은 소모임이나 비영리단체를 통해서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일에서도 몇몇 사람이 시험적으로 시작하여 성장한 시스템이다. 자가용처럼 편리하면서 대중교통만큼 경제적인 카 셰어링,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성미산 마을에서도 실현이 가능해 보였다.

이후 참여할 사람을 모으고, 이들 간 이견을 맞추고, 차량을 구하고, 관련규칙을 만드는 등 준비에만 꼬박 1년여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2007년 10월 7일 드디어 국내 최초 카 셰어링, '성미산 자동차 두레'가 마을 주민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첫 시작을 알렸다.

성미산 자동차 두레에 참여하는 사람은 지역주민 다섯 사람과 마포두레생협이다.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차량 열쇠를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차량을 이용하고 싶은 경우 자동차 두레의 운영 실무를 담당하는 마을단체에 날짜를 예약하면 된다.

회비는 초기 차량구입비로 각 20만원, 차량수리비·보험 및 세금 등을 계산하여 초기 적립금을 20만원으로 책정되었다. 사용료는 쓴 만큼의 기름값으로 사후 정산하기로 했다. 향후 3개월 정도 시범 운행기간을 거친 뒤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추가 회원을 모집할 계획이다.

자동차 두레가 도대체 뭘까?

[imgcenter|071106_003.jpg|580|▲ 독일 카셰어링 시스템. 회원제 방식으로 카드를 넣으면 언제든지 사용 가능하다.  ⓒ 정선미|0|1]

카 셰어링은 1987년 스위스 루체른(AtG)에 이어 독일에서는 1988년 베를린(StattAuto)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1988년 박사학위논문용 실험대상으로 시도된 베를린의 StattAuto는 1990년 8월에는 4대의 자동차와 50명의 회원을 가진 매우 작은 규모의 유한회사형태로 발전했다.

이처럼 유럽의 카 셰어링은 초기 공개 논의 단계를 거친 후 최근에는 회사형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지금은 카 셰어링조직 유럽연합회가 결성되었는데, 여기에만 50개 카 셰어링 회사가 단체회원으로 가입돼 있고, 이 회사들엔 1만5000명 이상 회원과 700대 이상 자동차가 등록돼 있다.

가장 규모가 큰 3개의 카 셰어링회사(ATG Luzern, ScharCom Zürich와 StattAuto Berlin)만 해도 각각 3000명 이상 회원과 160~200대분 승용차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비교하면 중소규모 자동차렌트회사 또는 국제 자동차렌트회사의 지역조직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이러한 변화는 90년대 초 북미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에서는 1999년 9개 카 셰어링 관련 기관이 만들어졌는데,이 가운데 4곳은 영리, 5곳은 비영리단체로 운영된다.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일본 등이 카 셰어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동차 관련기업.렌터카회사.환경NPO.교통 에콜로지 모빌리티재단이나 일본 자동차 연구소·지자체 등에서 다양한 카 셰어링 실험이 시도되고 있다.

카 셰어링은 편리성.경제성만 강조하기보다는 환경을 배려하는 도시교통·근거리 교통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뉴타운이나 주거단지를 중심으로 한 카 셰어링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에는 정부(주택개발청)가 적극 지원(보조금 제공)하여 활성화를 끌어내고 있다.

현재 카 셰어링은 유럽.북미.일본.싱가포르 등 전 세계적으로 100개 이상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카 셰어링에 대한 사회 인식과 관심이 전무한 상황이다. 다만, 몇 해전 렌트카 사업을 하던 기업이 카 셰어링 사업을 시작하여 법인차량 관리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정도이다. 그러나 경제성과 편리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제공과 안정된 시스템 마련 등 지원이 이뤄진다면 자동차 두레는 우리나라에서도 미래 도시에 적합한 녹색교통시스템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카 셰어링을 하면 나에게 도움이 될까?

카 셰어링을 하면 나에게 도움이 될까?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을까?
데이코D&S가 출간한 '2007 한국렌터카 오토리스시장의 실태와 전망’에 따르면 자동차가 실제 사용되는 시간은 평균 2.8%. 나머지 97.2%의 시간은 주차되어 있으며, 그 상황에서도 관련비용이 지출되고 있으며, 차량의 가치는 계속 감가상각된다고 한다.

카 셰어링은 이런 점에 착안해 자동차 소유형태를 바꿈으로서 이용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차량을 가지면 차량 유지 관리에 따른 많은 책임과 부담이 따른다. 자동차 세금부터 보험.연료비 등 비용 부담이 있으며 차량 보관을 위한 주차관리책임도 따른다. 카 셰어링을 통해 이러한 부담은 없애고, 필요한 경우에 차량은 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연간 주행거리가 1만㎞에 못미치는 운전자는 유지와 관리를 고려할 때 차량을 사기보다는 카 셰어링을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익이라고 한다.


[imgcenter|071106_004.jpg|580|▲ 자동차 두레를 시작한 성미산 마을 주민들. 이번에 마포두레생협과 함께 다섯 가구가 참여했다.  ⓒ 정선미|0|1]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자동차 두레는 자동차 이용 행태와 교통문화의 변화를 통해 생활공간의 안전성과 쾌적성을 추구하는 실현가능성 높은 대안이다.
또한 급격한 에너지 소비 증가와 고유가 정세가 이어지는 현실에서 그 사회 의미도 매우 크다. 대기오염 등 환경문제 해결에도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자동차 운행비율을 낮춰 에너지 절감, 교통체증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많은 시민들이 에너지 부족과 자원 고갈, 지나친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환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사용을  줄이거나 이용방법을 바꾸어야 한다는데 생각을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성미산마을 자동차 두레와 같은 시민들의 선진 교통문화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단순한 실험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행정당국과 지역자치단체의 선진교통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주민들이 진정으로 살기 원하는 안전하고, 쾌적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관련 조례제정이나 재정지원, 적극적인 민관 파트너십 등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 글 / 사진 : 녹색사회연구소 정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