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재앙 150일, 우리는 벌써 태안을 잊었나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8. 5. 16. 14:12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서해안에 기름재앙이 발생한 지 약 150일이 지났다. 조금씩 잊혀져 가는 기름유출 사고의 향후 대응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5월 7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는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시민사회대책위원회와 태안읍유류피해대책위원회, 국회의원 강기갑이 공동으로 주최하였다.

[imgcenter|080516_001.jpg|580|▲ 5월 7일, 삼성중공업 기름유출 150일을 기념한 토론회가 열렸다|0|1]

사고 피해액은 정부도 모른다

정부측을 대표해 참석한 박광열 과장(국토해양부 해양환경정책과)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소개하면서 피해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공무원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삼성중공업에게 무한 책임을 물을 의지가 있냐는 질문에 “그럴 입장도 아니고 그런 논의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현재 특별법에는 사고 원인자인 삼성중공업에 무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모호하기 때문에 시민사회대책위 등은 이 특별법이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당연히폐기하거나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래서 정부 관계자의 이런 단호한 말에 더욱 답답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현재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이하 IOPC)이 산정하는 피해액을 기준으로 특별법에 근거해 주민 피해를 지원할 방침이다. 그러나 IOPC는 국제 정유사들의 분담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주민들의 피해액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산정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IOPC 배상매뉴얼에 따라 합리적으로 자료제출이 힘든 비수산 분야, 맨손 어업자들, 환경과 건강피해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는 것이다.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지역은 국무총리 산하로 특별재난지역까지 선포되었지만, 정부는 지금도 사고지역의 피해액을 자체적으로 산정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차례 현장에 갔었다

박광열 과장은 “사고 발생 이후, 여러 차례 현장에 갔었는데...”라면서 정부가 현장을 중심으로 열심히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토론회에 참석한 주민은 “정말 그랬냐, 왜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지 모르겠다”면서 정부가 현실을 반영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김을회 대외협력국장(태안읍유류피해대책위원회)은 단일선체를 통해 기름을 수입한 현대오일뱅크 역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초일류 기업인 삼성이 “체면을 좀 지켜라, 이번 기회에 이미지를 바꿔라”고 주문했다.

삼성중공업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전종원 변호사(민주화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위원회)는 현재 벌이고 있는 삼성중공업 고소 고발 운동을 설명하면서, 사실상 현재 검찰의 수사 결과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가해자의 무한책임을 따질 수 있는 법적근거는 삼성중공업의 ‘고의․과실에 의한 중과실’ 여부에 달렸다. 우리나라에서 사고 선박의 중과실을 밝혀낸 적이 없다는 회의적 시각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선박 사고에 대해서 수사가 진행된 사례가 아주 적기 때문에 사례를 근거로 가능성이 있다, 없다는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의 유조선 기름사고 판례에 따르면 가해자 무한책임을 물을 사례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삼성중공업의 중과실 판명에 대해서 한번 해볼만하다는 설명이다.

시민사회의 역할

박창재 집행위원장(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은 “우리는 위험 사회에서 책임 사회로 나아가야”한다면서 삼성중공업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시민들이 이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기폭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액슨 발데즈호 사고를 예로 들면서 꾸준한 생태계 조사가 필요하며, 방제 종료를 판단하는 기준을 설정할 것을 요구했다.

사전 예방이 가장 중요

일본의 나호토카호 유출 사례를 발표한 양흥모 국장(대전충남녹색연합 도시생태국)은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 예방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 역시 97년에 발생한 나호토카호 중유 유출 사례를 통해 여러 가지 제도가 정비되었던 점을 들면서, 한국 정부나 시민사회가 그 동안 이 점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되물었다. 현재 서해안은 대산항을 중심으로 유조선뿐 아니라 증설되는 산업 단지 때문에 화물선도 예전보다 더 많이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는데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은 미비하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국내 대형 선박 사고가 적은 편이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할 만한 경험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양흥모 국장은 “이번 기회에 국제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imgcenter|080116_03.jpg|580|▲ 녹색연합 회원과 시민들이 삼성중공업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0|1]

기억을 잊는다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다. 기억의 소중함과 뼈아픈 교훈을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다. 기름유출사고 당시 충격을 우리는 아직 기억한다. 160만명의 뜨거운 자원활동가의 물결을 아직 기억한다. 그래서 150일이 지났지만, 아직 생계를 회복하지 못한 주민과 오염된 채 남아 있는 생태계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똑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된 관심과 관련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