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독선으로 쌓아올린 이명박정권의 흉물스런 장벽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8. 6. 11. 16:44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img|20080610_.jpg|580|▲ 사진 : 내일신문 남준기 기자|0|5]

컨테이너 방어벽
87년 6.10 항쟁.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후 정국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국민들은 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의 ‘7년 단임제’와 ‘간접선거’를 대통령 직선제로 교체했다. 21년이 지난 2008년 6월 10일, 무려 70만의 인파가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청, 남대문까지 거리를 온통 메웠다.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의 시작이다. 경찰은 청와대로 통하는 세종로, 안국, 경복궁 일대에 컨테이너 장벽을 세웠다. 발화점 55℃의 ‘그리스(윤활유)’를 컨테이너 벽면에 발랐다. 촛불에도 타오를 정부의 아찔한 선택이다. 단절과 고립. “국민과 소통하겠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던 이명박 정권이 선택한 묘수였다. 대통령은 아직도 ‘국민의 조정자’ 역할을 하려 덤볐고, 시민들은 “국민은 위에, 대통령은 아래”라는 정답을 친절하게 제시했다.

1+5
10대의 발의로 시작된 ‘쇠고기 정국’이다. 0교시․우열반이 부활했고 영어몰입교육에 정부는 아이들을 몰았다. 의료보험․공기업․물 민영화 문제가 곳곳에서 터졌다. 한반도 운하로 자초한 현 정부의 개발 딜레마 속에 대통령 지지율은 사상 유례없이 10% 중반에 머물렀다. 이제 광화문의 촛불은 단순한 ‘한․미 쇠고기 협상’ 의제 만의 성토장은 아니다. 검역주권과 국민건강권을 포기한 쇠고기 굴욕 협상이 일파만파 세포 분열하면서 국민을 억눌렀던 각종 사회 현안이 광화문 ‘광장’에 등장했다. 이것이 이른바 ‘1+5’인 것이다. 각종 ‘두드릴 것’을 악기 삼아 ‘운하백지화’를 위한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시청광장 위로 ‘운하 파탄’ 가오리연이 날았다. 작금의 위기상황을 헤칠 돌파구의 ‘선결조건’이 ‘운하 백지화’ 선언임을 정부는 알고 있는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정부는 부끄럽지 않게 한반도 운하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모이자, 광장에서
고대 그리스 이후, 2500년 만에 다시 열린 광장과 시장 문화다. 문화와 사상, 재화의 교류가 시작된다. 인터넷 ‘아고라’는 광화문 현장에 고스란히 옮겨졌다. 지식인들은 거리 토론회를 격렬하게 벌였다. 문화 행동단이 광장에 활력과 리듬을 변주하면서 그곳의 생명은 움텄다. 삼삼오오 말과 말들은 행동으로 재탄생했다. 김밥과 생수가 언제인지 모르게 누군가에 의해 손에 쥐어졌다. 스티로폼 연단이 컨테이너 장벽 앞에 세워졌다. 2008년의 서울 광화문 ‘광장’. 차량 이동의 직선적인 도로 위에 ‘문화와 사상’이 뒤섞인다. 모여서 시작된 ‘아고라’는 물리적인 ‘사람수’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혁명, 사상혁명, 시민혁명을 모색 중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을 연습시켰고, 광장의 국민은 한 차원 높게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누구든 원하는 시민은 발언하시오.”

국민명령권 발동
“이제 주권자인 국민은 국민명령권을 발동하여,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준엄하게 명령합니다. 오는 6월 20일까지 쇠고기 협상을 무효화하고 전면 재협상에 나설 것을 명령합니다. 만일 이 정부가 주권자의 명령을 끝내 거부한다면, 촛불을 든 국민은 이명박 정부 퇴진을 위한 국민항쟁도 불사할 것을 선언합니다.”
오늘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명령했다. ‘우이독경’식으로 현 정부가 국민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천 만이 참여하는 거대한 투쟁도 성사시킬 것이다. ‘실용과 효율’ 만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으며, 정부는 철저하게 국정운영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 현 정부의 재활은 국민들의 평균적인 의견에서, 성장, 기업, 시장, 경제가 아닌 민초와 그들의 삶에서 건져야 한다. 국민 앞에 고개 숙이는 대통령, 그 모습은 결코 자신을 모욕하는 일이 아니며,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명심하길 바란다.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가, 희망을 바랄 것인가.


[imgcenter|080611_101.jpg|580|▲ 10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 무대를 설치하고, 국민주권을 찾기위한 촛불시위는 불법이라 주장하며 기도회를 열고 찬양을 부르고 있는 보수종교단체.|0|5]
[imgcenter|080611_105.jpg|580|▲ 주최측 집계에 따르면 이날 촛불집회는 4~50만명을 넘는 시민들이 광화문 사거리에서 시작하여 남대문 로타리까지 이어지는 태평로와 세종로를 가득 메웠다고 한다.|0|5]
[imgcenter|080611_103.jpg|580|▲ 고 이한열 열사의 상여가 촛불문화제 진행 중에 시민들이 만들어준 통로를 통해 무대로 옮겨지고 있다.  뒤를 따르는 행렬의 분위기는 87년 6.10 항쟁의 뜨거운 함성과 그날의 승리를 다시금 이룩하자는 결의로 비장함이 감돌았다.|0|5]
[imgcenter|080611_104.jpg|580|▲ 고 이한열 열사의 상여가 무대에 설치되고, 이어 이어진 이열사의 가족들의 발언이 시작되었다.|0|5]
[imgcenter|080611_114.jpg|580||0|5]
[imgcenter|080611_102.jpg|580|▲ 민중가수 안치환의 열정적인 무대가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안치환의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한 시민이 20년 전 오늘의 벅찬 감동을 떠올리는 듯 열정적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0|5]
[imgcenter|080611_106.jpg|580|▲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다시 이어진 거리 대행진. 수십만 시민들로 거리가 가득 메워져 혼란스러운 중에도 시민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소품들을 손에 들고 자칫 과격한 모습으로 비쳐질지 모르는 거리행진의 분위기를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반시민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다.|0|5]
[imgcenter|080611_107.jpg|580|▲ 거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들도 휠체어에 몸을 싣고 거리 행진에 동참하고 있다.|0|5]
[imgcenter|080611_108.jpg|580|▲ 광화문 사거리에서 안국동 쪽으로 향하는 시민들이 차로 중앙선에 촛불을 줄지어 세워 청와대로 가는 방향을 알리는 지시등을 만들고 있다.|0|5]
[imgcenter|080611_109.jpg|580|▲ 안국동에서 막혀버린 시민들의 발길. 경찰은 컨테이너를 높이 쌓아 용접을 하고, 그 위에 기름을 발라 시위대가 컨테이너 벽을 허물어뜨리거나 올라오지 못하게 대응을 해놓았다. 이 황당스럽고 어처구니없는 경찰의 액션에 할 말을 잃은 시민들은 흉물스런 컨테이너 벽을 가리기 위해 들고있던 태극기나 피켓등을 붙여 놓았다.|0|5]
[imgcenter|080611_110.jpg|580|▲ 우리의 소원, 촛불이 말해주다.|0|5]
[imgcenter|080611_111.jpg|580|▲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이 함께 온 남자의 목마를 타고 안국동을 가로막은 컨테이너 벽에 손피켓을 붙이려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이 달면 그 소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귀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나는 순간...|0|5]
[imgcenter|080611_112.jpg|580|▲ 광화문 사거리 경찰의 컨테이너 장벽에 막힌 시민들이 그 아래 모여 앞으로의 시위진행에 대한 방향을 정하기 위해 그룹별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0|5]
[imgcenter|080611_113.jpg|580|▲ 꿏으로 장식된 폭력의 상징 전경차량이 컨테이너가 막지 못한 틈을 메우고 서 있다.|0|5]
[imgcenter|080611_116.jpg|580||0|5]
[imgcenter|080611_115.jpg|580|▲ 시위대는 미리 준비되어 있었는 듯 커다란 스티로폴을 동원하여 경찰이 세워놓은 컨테이너 저지선 앞에 탑을 쌓았다.  컨테이너벽보다 더 높이 쌓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나, 비폭력 평화시위를 지향하는 시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로 약간 낮은 높이의 탑을 쌓아, 그 위에서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진행하였다.|0|5]
[imgcenter|080611_117.jpg|580|▲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닌 국민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들어준 자리에서 국민의 뜻을 섬기고 제대로 역할을 못한다면,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부모에게로부터 받은 소중한 선물을 다시 빼앗기는 자식처럼, 국민에 의해 그 자리는 빼앗겨야 마땅하다.|0|5]
[imgcenter|080611_118.jpg|580||0|5]
[imgcenter|080611_119.jpg|580||0|5]
[imgcenter|080611_120.jpg|387||0|5]
[imgcenter|080611_121.jpg|580|▲ 태극기에 이어진 각종 깃발들이 새벽 어슴푸레 밝아오는 하늘 아래 장군의 보호를 받으며 펄럭이고 있다.|0|5]
[imgcenter|080611_122.jpg|580|▲ “태극기 휘날리며...” -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계속되어지던 새벽 3~4시경. 일부 흥분한 시민들이 발언대를 컨테이너 벽으로 붙이고 기름이 발라져 미끄러운 컨테이너 벽 위로 올라 태극기를 세우고 있다. 과격한 행동으로 시민과 경찰을 부추기지 말라는 우려의 말들이 밑에서 계속되어지는 가운데 시민들 사이에 의견 충돌로 인한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0|5]

[imgcenter|080611_123.jpg|387|▲ 밤샘 시위의 여파로 피로에 지친 기색에 만연한 어머니. 답답한 심정을 쏟아내며 허탈하게 앉아있는 그 마음을 더럽혀진 발이 대신 말해주는 듯 하다.|0|5]
[imgcenter|080611_124.jpg|580|▲ 날이 밝아오자 시위 참가자들은 자발적으로 곳곳에 널려있는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0|5]
[imgcenter|080611_125.jpg|580|▲ 오전 6시 30분 경.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서로의 팔을 걸어 의지한 채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는 예비군 참가자들. 이들은 뒤에 있는 시민과 전경 양측 모두의 안전을 위해 거리행진을 진행해온 지난 1달 동안 늘 시민의 앞에서 든든한 방패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0|5]
[imgcenter|080611_126.jpg|580|▲ 긴장감이 감돌던 대치상황을 깨고 시민들을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앞으로 전진하는 전경들. 맞서 대응하던 여성들은 버텨내지 못하고 힘겹게 뒤로뒤로 밀려나고 있는 모습이다.|0|5]
[imgcenter|080611_128.jpg|580||0|5]
[imgcenter|080611_127.jpg|580|▲ “야.. 야..  니들 맘 다 알어..  살살 해.. 사람들 다쳐..”  전경의 진압에 맡서 뒤에 있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몸으로 저지하고 있는 예비역들. 한 예비역이 방패로 밀어붙이는 전경을 향해 말을 건네는 모습이 긴박한 상황속에서도 훈훈한 기분이 들게 한다.|0|5]
[imgcenter|080611_129.jpg|580|▲ 이른 아침 출근시간의 광화문을 막아선 시민과 전경의 벽 사이로 일터로 발길을 재촉하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간다.  일부 시민은 시위대의 행위에 불만스러운 듯 “소고기 안먹으면 될 것 아냐?” 라는 말을 던지며 지나가기도 한다. 시위대의 도로 점거 행위가 불법이라며 즉각 해산하라는 경찰의 경고방송에 대하여, 시위대는 도로 불법점거는 경찰이 먼저라며 컨테이너 벽을 허물고 즉각 철수하라고 반발했다.|0|5]
[imgcenter|080611_130.jpg|580|▲ 교통경찰들이 광화문 사거리로의 차량통행을 유도하려 하자 시위에 참가한 몇몇 시민들이 차량의 진행을 막고, “우리의 시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은근슬쩍 넘어가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들지 말라.”고 하며 교통경찰들의 행위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0|5]
[imgcenter|080611_133.jpg|580||0|5]
[imgcenter|080611_132.jpg|580|▲ 간밤 쌓아놓았던 컨테이너 박스를 해체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용접기를 든 경찰측에 고용된 노동자들. 첫 번째 컨테이너 박스가 해체되자 그 소리에 한 전경이 고개를 돌려 컨테이너 장벽의 해체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0|5]
[imgcenter|080611_135.jpg|580|▲ 하룻밤 사이에 싸였다가 허물어지는 “명박산성”. 국민의 의견을 컨테이너 박스로 가로막아 듣지 않겠다면, 국민도 컨테이너 박스로 막아 이명박 정부를 그 안에 가두어 둘 수 있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