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국민의 다짐 ‘우리는 꼭 승리한다’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8. 7. 6. 16:56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우리는 꼭 승리한다’

7월 5일 촛불문화제에 대한 보고


다시 한 번 거대한 촛불이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 민심을 외면하고 소통에 대해  폭력적 대응으로 일관한 정부에 대한 분노가 수많은 시민들을 다시 한 번 시청 앞 광장으로 모여 들게 했다. 이명박 정부의 거짓 사과와 폭력경찰과 정치검찰 등을 동원한 공안탄압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다시 한 번 촛불을 들고 거리로 모여들었다. 7월 5일 오후 5시부터 시작된 촛불문화제에 약 50만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시청광장 덕수궁 앞에 설치된 촛불연단을 중심으로 세종로방향, 남대문 방향, 시청앞 광장을 꽉 메워가며 자리를 함께 했다. 610촛불문화제 이후 다소 하향곡선을 그리는 듯했던 촛불이 다시 한번 거대한 민심의 들불로 타오르는 밤이었다.

6월 말이 되면서 촛불에 대해 공안과 폭력으로 화답한 정부의 대응에  종교계까지 촛불에 합류하였다. 폭력논란으로 주춤하던 촛불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확산시키면서 도도한 민주주의 성전으로 환하게 밝아 올랐다. 6월30일 천주교의 시국미사를 필두로 7월 3일 기독교의 촛불집회 그리고 7월 4일 불교계의 시국법회 등이 꺼져가던 촛불을 회생시키면서 꼼수와 초강경폭력 대응으로 나서던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민심의 염원이 무엇인지, 7월 5일 범국민촛불대행진에 모여든 시민들의 촛불은 민심이 왜 촛불을 들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생히 밝혀 주었다.

그간 정부는 대통령의 사과발표와 일련의 수습책을 내놓듯하다가고 국민기만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시민들의 촛불에 대한 염원을 ‘폭력경찰’을 동원하여 분탕질하고 보수언론을 동원하여 5공식 공안탄압에 골몰했다. 이런 분위기속에 5공식 초강경 대응은 시민들을 촛불로 모여들게 하는 자석이 되었다.  광우병문제로 촉발된 시민들의 분노는 이명박 정부의 어설프고 위험한 일련의 정책이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정권을 규탄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민심을 외면하고 민심을 무시한 정권의 오만이었다. 시민들은 광우병 협상이 잘못되었으니 국민들 앞에 사과하고 제대로 된 협상을 다시 하나라는 것이 주된 요구였다. 그런데 정부는 두 번에 걸친 대통령의 사과를 하였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쇼였다. 한마디로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촛불로 표출된 민심의 고비마다 시민들과 대화하고 소통의 장에서 풀려고 하는 노력보다는 ‘폭력경찰’을 동원한 공안탄압이라는 악수로 대응했다. 경찰이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정권의 주구로 나서서 시민들을 힘으로 억누르려는 계기를 거치면서 민심은 더욱 더 크게 저항으로 화답했다.

지난 두달을 넘는 촛불의 대장정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5월 24일 촛불이 청계천을 넘어 종로와 세종로를 번져갔을때 정부는 오직 한가지의 대응으로 화답했다. 오직 정권에 대한 충성만으로 똘똘뭉친 어청수 경찰청장과 폭력경찰의 강경진압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첫 분기점이 바로 5월 31일 밤부터  6월 1일 아침까지 광화문과 안국동 일대에서 벌어진 폭력경찰의 무자비한 시민탄압이었다. 길바닥에 쓰러진 가녀린 여학생을 전경의 군화발로 여지없이 짖밟았던 모습과 직각으로 쏟아대는 살인적인 물대포가 영상을 통해 방송과 인터넷에 그대로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가슴은 뻥 뚫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610촛불문화재라는  한국 현대사 새로운 한페이지를 뚜렷하게 장식하는 큰 발걸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 가장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2008년 6월10일 촛불대행진이었다.

거대한 시민들의 저항에 대해서 정부는 인사쇄신, 대통령사과, 추가협상 등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하나’가 없었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바로 진정성이다. 국민을 어렵게 생각하고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려는 노력 없이 그저 함성이 크니까 면전에서는 주춤하는 듯한 꼼수로 일관하여 그마저 잦아들 것 같으면 여지없이 짖밝으려는 태도가 시민들을 분노케한 것이다. 강자에게 약한척 시늉하고 약자에게 무자비한 이명식 논리가 사태를 이렇게 키우고 시민들을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염원하게 만든 것이다.

특히 지난 6월 28일 밤부터 29일 아침까지 정부와 경찰이 보여준 것은 군사독재로 회귀한 무자비한 폭력진압이었다. 서울시내 5개 병원의 응급실에 실려온 300명의 시민들의 모습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10년, 20년 전으로 한순간에 후퇴할 수 있다는 생생한 증거였다.  이런 현실에 동의할 수 없고, 그 현실에 화가 난 시민들이 바로 7월 5일 촛불문화제에 모인 것이다.

시민들은 결코 폭압에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도덕성과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오직 공권력에 의지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대답은 하나다. ‘우리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꼭 승리한다.’ 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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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center|080706_04.jpg|580|▲ 장마비가 내리는 5일 오후 시청앞 광장에는 민주당, 민노당 등 4개 정당의 의원들과 국내 4개 종파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의 성직자, 수도자들, 그리고 시민단체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나섰다.|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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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center|080706_08.jpg|580|▲ 지난달 28일과 마찬가지 양상으로 경찰은 프레스센터 앞까지 진출하여 시민들의 광화문 사거리로의 진출을 원천 봉쇄해 버렸다. 덕수궁 대한문앞에 마련된 무대를 중심으로 시청광장에서부터 경찰의 저지선까지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로 발 딛일 틈이 없자, 무대차량 뒤편 남대문 방향으로까지 시민들의 촛불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0|5]

[imgcenter|080706_05.jpg|580|▲ 두달여를 이어온 촛불문화제의 메인 주제곡이 되어버린 “처음처럼” 등 몇곡의 민중가요에 맞추어 청소년들이 멋진 율동을 선보이고 있다.|0|5]

[imgcenter|080706_06.jpg|580|▲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폭력으로 국민주권을 짖밟으려는 현 정부의 바르지 않은 행위에 대하여 규탄하는 성명서를 원불교 교무단 측에서 낭독하고 있다.|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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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center|080706_07.jpg|580|▲ 촛불을 나누는 마음이 길게 이어져 어둠이 드리워진 시청광장과 도로를 부드러운 빛으로 뒤덮었다.|0|5]

[imgcenter|080706_13.jpg|580|▲ “촛불이 승리한다” 라는 현수막이 밤하늘에 올려지고 있다.|0|5]

[imgcenter|080706_15.jpg|580|▲ 거리행진 중 발생될 지도 모를 경찰과의 대립과 불상사를 막기 위해 행진대열의 선두에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종교인이 플랜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0|5]

[imgcenter|080706_16.jpg|580|▲ 이색적인 자전거를 준비해 아이들을 태우고 거리행진에 함께하고 있다.|0|5]

[imgcenter|080706_17.jpg|580|▲ 안국동으로 들어선 행진대열은 종로경찰서 앞에서 지친 걸음을 멈추고 ‘폭력경찰 물러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굳게 닫힌 종로서를 향해 경찰의 폭력행위를 규탄한 뒤 탑골공원으로 향했다.|0|5]

[imgcenter|080706_18.jpg|580|▲ 녹색연합은 시민들과 함께 현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몇가지 참여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시민들의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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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center|080706_19.jpg|580|▲ 거리행진 이후 시청광장으로 다시 모인 시민들은 대한문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새벽까지 이어진 행사에 함께한 문화예술인들과 어우러져 흥겨운 공연의 장을 계속했다.|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