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제 거리엔 나오지 마세요

 활동이야기/골프장대응       2011. 2. 23. 14:38  l   Posted by 비회원
할머니들은 종종 쉬어야 했다. 굽은 허리에 지팡이 짚고 몇 걸음 내딛고선 다시 길가에 있는 화단이나 차량 진입을 막는 장애물에 앉았다. 젊은 사람 걸음으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곳까지 그렇게 1시간여에 걸쳐 겨우 도착했다. 그런데 힘든 여정을 마친 후에도 할머니들의 나무토막 같은 손을 잡아줄 따뜻한 손은 없었다.

2월 22일,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이 춘천 팔호 광장에 모였다. 그들의 목소리를 강원도청에 직접 전달하기 위해. 강원도에는 현재 41개의 골프장이 운영 중이다. 여기에 지금 또 41개의 골프장이 건설 중이거나 추진 중이다. 7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어 모여 살던 홍천 구만리는 세 개의 골프장에 둘러싸일 판이고, 물이 부족해 소방차의 도움으로 겨우 모내기를 심었는데 하루에 1,000톤의 물을 사용하는 골프장이 생기면서 이제 먹을 물까지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춘천 덕만리에 들어설 예정이던 골프장은 묘지 2기만 덩그러니 남기고 주변 땅을 모두 파헤쳤다. 그런데 사업비의 10%도 갖고 있지 않던 사업체는 공사 진행에 대한 대금을 치르지 못해 부도가 났고, 파헤쳐진 땅은 시뻘건 속살만을 드러낸 채 애처롭게 누워 있었다.

1988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된 골프진흥정책으로 국내에서 골프장을 짓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참여정부는 해안구릉지, 간척지 등에도 골프장을 만들 수 있게 했고, 이명박 정부는 전체 임야의 5% 이내로 제한했던 골프장 면적 제한 기준을 폐지했다. 이로 인해 전국에 우후죽순 골프장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춘천-양양 고속도로 개통으로 수도권에서의 접근성이 좋아지고 경기도 내 골프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2008년부터 강원도 내 골프장 건설 붐이 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골프장 건설 과정에서 온갖 불법적인 일들이 자행되는데, 이것이 묵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는 한반도의 허파로 불릴 만큼 빼어난 환경적 가치를 자랑한다. 그래서 멸종위기에 처한 많은 야생동식물이 강원도에서 살고 있고, 이는 많은 골프장 예정지 또한 예외가 아니다. 홍천 구만리, 동막리, 갈마곡리, 강릉 구정리, 원주 신림면 구학리 등 현재 강원도 골프장 대책위에 함께 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예외 없이 삵이나 하늘다람쥐와 같은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홍천 갈마곡리에는 하나 걸러 한 그루 꼴로 멸종위기종인 까막딱따구리의 둥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본 주인이 떠난 집을 차지하고 앉은 하늘다람쥐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원주 구학리에서는 살아 있는 수달을 직접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멸종위기종이 있는 지역은 골프장을 짓지 못하기 때문에 사업자는 그들을 모두 ‘유령’으로 기록했다. 골프장 예정지역 내 없다고 기록한 것이다.

주민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늘다람쥐 사진도 찍고 수달 동영상도 찍었다. 그리고 환경적 가치를 제일 중심에 놓고 사업에 평가하는 원주지방환경청에 자료를 제출했다. 그러나 환경청은 해당 사업자의 평가서를 모두 ‘문제없음’으로 평가 짓고 사업을 ‘통과’시켰다. 주민들은 환경청에 대한 항의를 이어가는 한편 최종적으로 골프장 허가 도장을 찍는 군수, 시장, 도지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증거 제시로 주민들은 소기의 성과를 얻어 냈다. 원주시장은 사업자와 주민대책위가 함께 골프장 예정지의 환경을 다시 조사하기로 결정했고, 홍천군수는 구만리, 갈마곡리에 대해 주민과 함께 재조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이광재 전(前) 강원도지사는 논란이 되고 있는 골프장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광재 도지사가 대법원의 판결로 도지사직을 상실하게 되면서 약속은 공중에 붕 떠 버렸고, 주민들은 4.27 보궐선거에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때까지 골프장이 승인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때까지만 이라도. 그리고 2월 22일 집회 도중 도지사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강기창 정무부지사와 지역 대책위원장들 간의 면담이 진행되었다.

1시간 30여분 대담이 이어졌지만 서로의 말은 만나지 않았다. 강기창 부지사는 4.27 보궐선거 전까지만 논란이 되는 골프장에 대한 인·허가를 미뤄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권한 없음”으로 일축했고, 골프장 진행과정에서 발견된 불법적인 사례들에 대해서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보겠다.”란 단서를 달긴 했지만 방점은 “이미 지나간 행정절차는 돌이킬 수 없다.”에 찍혀 있었다. 다시 한 번 두텁고 차가운 벽이 뺨에 닿았다.



각 지역 대책위원장들은 결국 1. 골프장 사업에 대한 심사를 규정된 기한을 모두 활용하여 최대한 꼼꼼하게 한다. 2. 주민들이 골프장 추진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직원(부서)을 배치한다. 등 두 가지 사항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아쉽게 도청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만나 주지도, 관심 갖지도 않은 골프장 예정지 지역 주민들을 이제 군수가 만나고, 도지사(직무 대행)이 만난다. 큰 변화이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고, 벽은 넘으라고 있는 것이다.

글 : 김명기 (녹색연합 평화행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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