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소장

 녹색순례/2002년       2002. 5. 12. 00:00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미군기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진작업뿐만 아니라 지역운동을 해온 파주 토박이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48) 소장. 어린 시절, 그는 광산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 자신도 장명광산에서 일하면서 광산노동자들이 진폐증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았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사진이었다.

[img:20020512_gfa01.jpg,align=right,width=188,height=250,vspace=5,hspace=10,border=1]"장명산이 광산작업으로 사라져버렸어요. 주변의 학교 교가는 모두 장명산으로 시작한다고요. 우리는 장명산을 봤지만 후세대들은 장명산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하는 거예요. '아, 지켜야 하는 것은 꼭 지켜야 하는구나'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 작은 것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작은 것이 뭐냐.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이더라고요. 실은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큰 것인데도 권력에서는 그것을 가장 작게 취급하는 거예요."

우리 일상생활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인가. 산이, 들이 없어지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 말고도 권력이 어떻게 삶을 파괴하는가에까지 그의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파주에서는 미군이라는 오만한 권력에 의해 인간, 삶, 자연의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선 그는 자연마을을 찍기 시작했다. 대대로 내려오는 마을들이 사라지는 것을 내 힘이 없어서 막지 못한다면 우선 사진으로라도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파주시에 사진을 제시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마을에 대한 제안을 해왔다. 그의 노력은 어느 정도 현실에 반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군문제 만큼은 이렇게 되지 않았다. 사진가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고 마음먹은 그의 작업은 군사시설과 민통선을 드나들며 현장사진으로 이어졌고 그 때문에 고발, 고소도 당했다.

"25사단에서 저를 고발했어요. 영농인으로 위장해서 민통선을 편법으로 들어갔다고. 나는 편법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이 그 안에서 하는 일은 불법이란 말이에요. 불법한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고 편법한 사람만 처벌받는 사회라면 나는 거부하겠다는 거요. 단지 편법으로서 불법을 지적하는 건데 어떻게 불법이 편법을 지적할 수 있죠? 나는 수용 못하겠다고 해서 지금은 계류 중이에요."

그는 지난해 7월 16일, 파주시 조리면 뇌조리의 캠프 하우즈 뒷문 공장증축 공사현장에서 미군 고압선에 감전돼 팔과 다리를 잃은 전동록(54) 씨를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뒤로 지난 1월 9일에는 전동록 씨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왜 고통스런 사진을 주로 찍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나는 사진에 나타나는 전동록 씨 모습이 고통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오히려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팔다리가 다 잘렸어도, 이 사람이 그것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려는 거예요. 고통 속에서도 당당하게 웃고, 그렇게 헤쳐나가는 거예요."

[img:20020512_gfa02.jpg,align=left,width=188,height=250,vspace=5,hspace=10,border=1]그의 사진은 장롱 속에, 전시장의 액자 속에 갇혀있기를 거부한다. 약수터, 길거리가 그의 말처럼 '아무데나'가 그의 전시장이다. 사진은 누구라도 가장 편하게 자기 할 일 하면서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사진은 삶을 담고 그의 사진은 삶 속에 있다.

미군기지 순례길, 파주에서의 이틀 내내 그는 우리와 함께 했다. 누구보다 파주를, 사람을 사랑하고 미군기지의 상황을 잘 아는 안내자로, 기록자로.

"내 평생에 쫓아다니면서 이렇게 많이 찍어보기는 처음이에요. 사진가들은 그림이 안 되거나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셔터를 누르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열 통이나 찍었잖아요.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소외된 사람들,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고통을 안고 가는 거예요. 제각기 등에 지고 땀을 흘리면서 한발 한발 가는 거죠. 이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어요? 이것만큼 힘이 되는 게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찍고 싶은 거야."

열 통의 필름을 꺼내보이며 웃음짓는 그는 사진가를 넘어, 운동가를 넘어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녹색순례 특별취재팀 - 사이버 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