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삶에서 피어나는 녹색의 희망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8. 1. 9. 13:58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소박한 삶에서 피어나는 녹색의 희망
-에코붓다 탐방기-


모든 온기가 으스러질 것만 같은 추운 겨울이었다. 잿빛의 담벼락 위로 개나리나무가 가녀린 몸뚱이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지만, 그 줄기 끝에서는 꽃눈들이 모여서 봄소식 움 트일 따스한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생명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절망의 시린 대지 위에서도 매 순간 스스로에게 주어진 생의 소명을 곱씹으며 초록빛 희망을 그 품에서 보듬어 피워내는 것, 그것인가 보다. 요즈음 환경의 위기에 대한 우울한 소식들이 많아져만 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소박한 삶으로 녹색의 희망을 삶으로 실천하는 환경단체가 있었다. 2008년 1월 4일, 우리 녹색연합 신입활동가들은 에코붓다로 향했다.

정토회관을 들어서며

[imgleft|080109_ecobuddha_001.jpg|278||0|0]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정토회관 입구에는 ‘2008년 녹색연합 신입실무자, 정토회관 방문교육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꼼꼼하고 배려 깊은 손길 속에 묻어나는 친절의 향기가 방문교육에 대한 어색함을 지닌 우리들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가져다주었다. 잠시 후, 에코붓다에서 상근자원활동가로 일하고 계신 김윤희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정토회관에 들어서자 낯설지 않은 서늘함이 발끝부터 서서히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정토회관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최소한의 난방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층 교육실에 올라가는 길에 우리는 정토회를 소개하는 게시판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간략하게나마 정토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 받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imgright|080109_ecobuddha_002.jpg|205||0|0]정토(淨土)란 부처나 보살이 사는,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을 지칭하는 불교 용어이다. 정토회는 이러한 ‘맑은 마음을 가진 좋은 벗들이 일구어 내는 깨끗한 땅’으로서의 정토를 이 땅에 실현시키기 위해 ‘현재 부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시면 어떠한 일을 하실까?’에 대한 고민의 응답으로 나온 불교 단체이다. 1988년 1월, 홍제동 정토포교원 개원을 출발점으로 하여 활동하기 시작한 정토회는 지금까지 수행, 통일, 복지, 환경 분야와 관련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사회 활동과 관련되어 말하자면, 정토회 안에서는 기아, 질병, 문맹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간기구인 한국 JTS가, 남북통일을 위한 노력으로 평화재단이,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위한 노력으로 ‘좋은 벗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에코붓다가 활동을 하고 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는 소박한 삶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습니다. 환경운동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내 삶의 참회로부터 출발합니다.”

거대한 사회구조의 변화가 아니다. 세상이 한번 갈아엎어져 버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모든 인류 공동체가 상생하며 살아가는 녹색 세상은 근본적으로 각자의 삶의 변화, 생의 진리에 대한 깨우침에서 시작된다. 에코붓다에서 추구하는 환경운동의 출발점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일본의 생명농업 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스찌다 다까시는 21세기를 사는 길의 해법은 공생공빈(共生共貧)이라고 말하였다. 집착과 경쟁 속에서 일그러져버린 마음으로 더 편안한 삶, 더 누리는 삶, 더 가지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현재의 행복을 놓친 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소위 과학적인 문명인들이라 불리는 이들의 삶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이웃과 자연, 모든 만물들이 서로가 함께 잇대며 살아갈 수가 없다. 더불어 잘사는 삶을 위해서는 모두가 함께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는 삶을 선택해야만 한다.

[imgleft|080109_ecobuddha_003.jpg|278||0|0]에코붓다는 그러한 공생의 삶을 이 땅에 실현시키기 위해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는 소박한 삶’을 모토로 하여 여러 활동들을 펼쳐 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쓰레기 제로 운동과 빈그릇 운동이다.

현재 정토회에서는 쓰레기 제로운동을 위해 재활용으로 분류할 수 없는 비닐, 휴지 등과 같은 일회용품들을 정토회관 안으로 들일 수 없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화장지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화장실의 화장지 쓰레기를 제로화 시키기 위해 뒷일을 보고 나서는 뒷물을 이용하자고 자원활동가들과 실무자들이 서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물론 이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에코붓다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실험을 강력하게 지속시켰고, 그 결과 지금은 어느 정도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문제가 해결된 상태이다.

이와 같은 운동은 쓸데없이 버려지는 포장지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엄격하여 캔이나 재활용이 되는 과자 봉지에 담긴 음식물까지 반입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회용 비닐에 포[imgright|080109_ecobuddha_004.jpg|278||0|0]장된 먹을거리만 정토회관 내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 보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들어온 먹을거리도 만약 일회용 비닐에 포장되어 있으면 정중히 사정을 말하고 돌려보낸다고 한다. 쓰레기의 제로화를 위한 굳은 의지가 그들의 확고한 실천 사이로 엿보였다.  

우리는 그러한 쓰레기제로 운동이 에코붓다에서 어떻게 행해지는지 정토회관의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작업을 통해 직접 배워보기로 하였다. 우리가 작업했던 쓰레기들은 ‘평화재단’ 일주일치 분리수거 양이었음에도, 책상에 쏟아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그리고 단순히 분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류별로 개수를 세고 무게를 달아서 각각의 재활용 쓰레기가 얼마나 배출되는지를 기록을 하였다. 이것은 앞으로 더욱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한 알의 밥알에서 생명보기

[imgleft|080109_ecobuddha_005.jpg|278||0|0]빈그릇 운동은 ‘나는 음식을 남기지 않겠습니다’라는 소박한 실천으로 환경을 살리고, 지구 저편의 굶주리는 이웃들을 살리는 ‘비움과 나눔’의 운동이다. 우리는 이러한 빈그릇 운동을 정토회관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몸소 체험을 하였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의 향내가 주린 배를 움켜쥔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그곳엔 밥과 국 그리고 서너 가지의 반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밥과 반찬은 큰 접시에 함께 담아야 했다. 음식의 양은 각자가 먹을 만큼만 덜어야 한다. 물론 그 음식을 모두 먹기 위함이다. 마지막엔 김치에서 딱딱한 부분을 골라두어, 음식을 모두 먹은 후 국이나 물에 씻은 김치 한 조각으로 그릇을 닦아내어 완벽하게 빈 그릇으로 식사를 끝마쳐야 했다. 이렇게 깨끗하게 접시를 비우니 당연히 설거지도 어렵지 않았다. 쌀뜬물로 일단 헹구고, 개수대에 받아 놓은 물로 1차 헹굼, 2차 헹굼을 하고나니 접시는 깨끗이 닦였다.

[imgright|080109_ecobuddha_006.jpg|205||0|0]음식을 남기지 않는 작은 실천을 했을 뿐인데,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되지 않았고, 세제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물이 절약되었다. 물론 세세히 따지자면 더 많은 것들이 절약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빈그릇 운동’은 환경(음식물쓰레기 줄어듦)·건강(비만 등의 성인병 예방)·나눔(기아인구와 나누는 것)·경제(식량 수입 및 음식물 처리비용)에 큰 도움이 되는 1석 4조의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매 식사 시간마다 우리를 위해 음식이 되어 자기 자신을 내어준 뭇 생명들에 대한 감사함에 대해 깨우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빈그릇 운동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결과인 것 같다. 다른 생명들의 희생으로 차려진 우리의 밥상도 어느덧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가치판단되어 버리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빈그릇 운동을 통해 생명에 대한 지극한 감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자연 만물과의 소통의 장이 바로 빈그릇 운동을 실천하는 이들의 밥상 앞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행복은 재산순이 아니잖아요!

어떤 이들은 그렇게 오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날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 온 인류 진보의 역사 아래에서 에코붓다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운동들은 지나치게 자기 억압적인 금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자기 자신의 불행을 전제로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만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토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가식 없는 미소를 만난다면 그러한 의심의 매듭은 저절로 풀리게 될 것이다.

[imgleft|080109_ecobuddha_007.jpg|278||0|0]김윤희님의 안내로 정토회에 속한 각 부서와 단체를 돌아다니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를 받았다. 그런데 정토회의 여러 부서들과 단체들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그 안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따스한 눈빛과 미소로 처음 보는 이들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대학생과 청년 정토회 활동가들이 인도 성지 순례 및 봉사활동이라는 커다란 행사를 앞두고 모두들 분주한 가운데서도 우리들이 찾아가는 그 어느 곳이든 그곳의 활동가와 실무자들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인사하고 소개들을 해 주셨다. 그분들은 업무에 대한 열정과 함께 마음 속 깊숙이 여유로움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사실 자본주의의 상식으로 보면 그들은 행복한 이들이 아니다. 아니 행복할 수 없는 이들이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많은 물질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모두는 정토회관 3층에 마련된 숙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다. 높이 1m, 너비 60cm 남짓의 옷장이 그분들의 개인적인 생활용품을 보관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전부다. 많은 수의 자원활동가는 그곳에서 어떠한 물질적인 대가를 받지 않는다. 실무자로 일하시는 상근활동가분들 역시 한 달 수입은 5만원(50,000)뿐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자본이 줄 수 없는 행복이 있었고 자유가 있었다.

그들은 결코 대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산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참된 자아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참회하며 수행하는 마음으로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참된 행복을 찾아나가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미소는 우리에게 귀한 진리를 하나 속삭여 주었다. 행복은 결코 재산순이 아니라고...

정토(淨土)를 향하여 한 걸음 내딛기

모든 교육이 끝나고 우리는 정토회와 에코붓다와의 만남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 때 우리들 중 한 신입활동가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인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살아가는 정토회 사람들을 보며 나의 지난 삶에 대해 반성해 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몸소 삶과 실천으로 작은 것 하나 하나를 바꾸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석가의 모습을, 예수의 모습을, 마호메트의 모습을, 공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한 그들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는 진정한 교육이었고 진리였고 희망이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우리는 환경운동가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진정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제 이러한 감동과 깨달음을 뒤로 하고 나부터 시작되는 환경운동, 소박한 삶으로 전하는 녹색운동, 비움과 나눔의 실천으로 완성되는 생태운동을 통해 날마다 정토를 향하여 한 걸음 내딛는 초록빛 생명이 되기로 다짐해 본다.

[imgcenter|080109_ecobuddha_08.jpg|440|▲(왼쪽부터) 신입활동가 노상은,김명기,김희정,박미경,신영은, 에코붓다 상근활동가 김윤희, 신입활동가 양석헌,황민혁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