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숲입니다 - 김선우 시인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11. 5. 25. 11:11  l   Posted by 최위환
인간이 자연인 것을 너무 자주 잊어버리고 또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 분리감 속에서 자연에 대한 폭력들이 자꾸만 생기는 거잖아요. 우리의 바람은 이렇게 모든 갖가지 나무들이 어울려 조화로운 숲이 되는 것이니까요. <작아>를 든 손이 우리 사회에서 정말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잊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땅에 있는 것 가운데 끊임없이 예찬을 해도 바닥나지 않을 존재가 나무라고 생각해요 - 시인 김선우


종이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세요

다들 그렇겠지만 저도 종이하고 굉장히 운명 같은 인연이 있어요. 저는 종이가 인간이 자연에서 가져와 만든 물질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연이었을 거라는 느낌을 가졌어요. 종이에 대한 첫 기억은 종이냄새였어요. 일곱 살 때까지 나지막한 산 밑 집에서 살았어요. 뒷산과 앞바다에서 온종일 놀았어요. 완벽하다 싶은 자연의 품속이었죠. 놀다 지치면 책장에서 책을 한 권 뽑아 산속 내 동굴로 갔어요. 바닥에 이끼와 나뭇잎을 깔아놓고 이것저것 장식해 놓고 스스로 내 방이라고 생각했죠. 동생들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동굴에서 뒹굴면서 책을 읽곤 했어요. 그런데 동굴에서 맡은 흙과 이끼 냄새, 나뭇잎 냄새와 같은 냄새가 책에서 나는 거예요. 그래서 종이가 인간이 추출한 물질이지만 이것의 근원이 자연이라는 느낌을 너무 자연스럽게 체험을 하고 자랐어요. 종이가 나무고 흙이고 숲이라는 느낌을 이론으로 배우기 이전에 이미 체험했던 거예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책도 귀했고 공책도 아껴 쓰던 세대였어요. 연습장을 처음에 연필로 쓰고 다 쓰면 그 위에 색깔을 구별할 수 있는 볼펜으로 다시 쓰고, 그 위에 형광펜 같은 것으로 쓸 수 있는 여백이 없어질 때까지 썼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주 자연스러운 문화였어요. 하지만 대학 가고 1990년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가 고도의 물질사회에 빠르게 진입하면서 종이를 낭비하고, 특히 책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종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인식하기 이전에 쓰고 버리면 되는 상품으로 간단하게 취급되었어요. 함부로 쓰는 문화가 깊어진 거죠.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함부로 버려지는 종이를 보면 몸으로 거부감이 들고 무서운 거예요. 저게 숲인데, 저게 나무인데, 내가 누리던 흙냄새인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쉽게 쓰고 버리는 문화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섬뜩섬뜩 놀라기도 하고 종이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다른 글과 달리 시는 여백이 많잖아요. 시를 프린트를 하면 죄책감이 많이 드는 거예요. 여백을 이렇게도 오려보고 저렇게도 오려서 메모지로 쓰는 거죠.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고작 할 수 있는 최선은 여백을 최대한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정도인 거예요. 때로 무력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종이에게 죄의식 많아요.

시인에게 종이란 무엇일까요?

‘종이는 자연인 인간의 역사를 가장 자연스럽게 기록하는 숨결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간도 자연이잖아요. 하지만 인간이 자연인 것을 너무 자주 잊어버리고 또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 분리감 속에서 자연에 대한 폭력들이 자꾸만 생기는 거잖아요. 자연인 인간의 자연스러운 숨결을 역시 자연인 종이가 인간과 함께 해왔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종이를 달리 보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 조금씩 조화로운 상생의 방법을 찾아갈 수 있는 그런 노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숲에 대한 경험이 있으시겠죠?

‘다시 태어난다면 뭐로 태어나고 싶은지’를 묻는다면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첫 번째가 나무에요. 이 땅에 있는 것들 가운데 끊임없이 예찬을 해도 바닥나지 않을 존재가 나무라고 생각해요. 식물들, 숲과 나무, 온갖 초록의 것들에 깃들어 살고 있어요. 사실은 빚지고 사는 거죠. 인간이 아무리 지구 생태에 덜 부담을 주고 살려고 노력해도 우리 존재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존재잖아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먹고 산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지금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지구에 해를 미치는 거예요. 해를 끼치지 않고 살기에도 사실은 굉장히 벅찬 존재죠. 근데 유일하게 식물들, 특히 나무는 지구가 생명의 기운을 보여줄 때부터 튼튼하고 씩씩하게 지구의 생명력을 보태면서 존재해왔잖아요. 유일한 존경의 대상이에요. 인간보다 훨씬 나은 존재, 그리고 끊임없이 예찬을 바쳐도 모자란 존재예요. 모든 나무는 정말로 낱낱이 너무 예뻐요. 사람들이 낱낱이 예쁜 거랑 닮아있어요. 물론 나무에 비길 것이 없지만요.
산 숲에 가서 잠자는 것이 저의 휴식 방법이에요. 작업을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신호가 오면 무조건 산 숲이 깊은 절집에 가요. 3박 4일 정도 줄기차게 자요. 가능하면 낮에도 문을 열어놓고 밤에도 열어놓고 자요. 그러면 나무들의 숨소리가 잘 들려요. 흙, 나무, 공기, 바람의 숨소리가 잘 들리는 상태, 몸 세포들이 적당한 나른함 속에 열려있는 상태가 정말 좋아요. 꼭 깊은 잠이 들지 않아도 계속 자고 있는 것 같은 몽롱한 상태로 짧으면 1박 2일, 길면 3박 4일 그렇게 숲속에 있다가 오면 원기가 충전돼요.

‘종이는 숲이다’라는 말로 재생종이운동을 펼치고 있는데요. 재생종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종이가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태까지 재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에 인쇄된 화려한 잉크에다 다시 코팅 입힌 상태를 보면 정말 숨이 막혀요. 특히 여성지 경우는 끔찍하죠. 이것을 어떻게 재생한단 말인가 걱정스러워요. 실제로 책을 펼치면 독한 화학물질 냄새가 올라와 숨이 안 쉬어지거든요. 한 번 보고 버리는 소모용 책들이 더 그래요. 이걸 다 어쩌려고 찍어내나 싶고요.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래요.
사람이 태어나 25세를 기점으로 몸 자체는 늙어가기 시작하잖아요. 25세 청춘기를 아름다운 시기라고 하죠. 그렇다고 그 시기가 지나면 보잘것없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때부터 다시 끊임없이 어떤 새로운 단계의 인생으로 진입을 하는 거죠. 종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 쓰일 때는 사람으로 치면 25세 정도까지 청춘기를 갖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가장 쓸모 있는 어떤 것으로 쓰이다가 폐기되고 재생되지 않으면, 마치 인생의 진짜 참맛을 보아야 할 단계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끊어져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들에게서 감동을 받고 깊은 경륜을 배우잖아요. 결국 아름답게 죽음으로써 삶에 대한 아름답고 행복한 사유를 하듯이 종이도 처음 태어났을 때만 종이가 아니라 점차 조금씩 헐거워지지만 끊임없이 재생되고 순환하면서 새로운 생의 깊이를 더해가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쓰이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환경이슈가 있으신가요?

지금은 당연히 4대강 사업이죠. 지난해는 그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일본 지진 나면서 핵문제가 발생했는데 사실 그동안 위험한 화약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쉬쉬하고 숨겨왔던 것들이 이제 제 얼굴을 드러낸 거라고 봐요. 투명하게 드러내 놓고 검토하고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할 때인 거죠. 이 문제는 정부의 권력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것이어서 굉장히 고달프기도 하고 굉장히 더디고 모두의 마음을 모아야 하는 일이죠. 그래도 저마다 목소리를 내면서 가야 해요. 저는 4대강 사업 첫 삽을 뜰 때부터 제가 쓰고 있는 그리고 쓸 수 있는 모든 신문과 칼럼에 끊임없이 4대강 이야기를 썼어요. 대체 김선우가 생태운동가도 아니면서 그러냐고 했을 정도예요. 그래도 글을 쓰다보면 치밀어 오르는 무엇이 강 이야기를 끌어내더라고요. 시간을 쪼개서 집필도 하고 4대강 문제나 핵문제도 계속 이야기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 육식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생태계에 최소한 폐를 덜 끼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채식을 선택했어요.

지금 겪는 여러 환경문제들을 위해 가져야 할 마음, 시작할 일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너무 거대한 차원에서 생각하면 사실은 앞이 잘 안 보이는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태들 앞에서 쉽게 절망하기가 쉬워요. 지금은 아주 작더라도 스스로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해요. 어떤 문제를 파고 들어가면, 헉 이게 뭐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벽에 턱턱 가로막히잖아요. 지레 먼저 주저앉아버리는 이유지요. 하지만 ‘나부터 바꿔가는 아주 소박한 마음을 갖는 것이 생태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생활 속에 작은 희망을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길이죠.            
가령 저는 육식을 그렇게 즐기는 사람이 아니에요. 육류를 전혀 입에 대지 않고 6개월 이상 살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내가 ‘채식’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걸까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종이를 만들면서 베어지는 나무들의 문제도 굉장히 크지만, 지금 아마존 원시림이 대규모 공장식 목축업을 위해 엄청나게 베어지거든요. 이렇게 베어지는 나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가만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 변명거리를 찾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육식을 줄이는 일이 지구 환경과 우리 생명을 지키는 데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자연스럽게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채식을 한다고 말하거나 채식주의자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갖는 이상한 폭력성에 연관이 있다고 봐요. 유럽이나 선진국들이 채식문화가 굉장히 일반화 되고 배려를 많이 하는 것에 비해 한국은 기묘하게도 먹는 문화도 굉장히 획일화 된 느낌이 들어요. 먹는 행위는 아주 일상적인 문제니까, 이를 통해 세상에 관여하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이런 분위기들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떤 변화든 작은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쓰신 작품 가운데 숲과 자연과 관련해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신가요?

권해주고 싶은 시는 너무 많아요. 식물적 상상력을 통해 표현한 시들이 많아요.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도 그렇지요.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풀여치 있어 풀여치와 놀았습니다/분홍빛 몽돌 어여뻐 몽돌과 놀았습니다’로 시작하는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도 온통 자연과 식물 이미지와 상상력이 넘쳐나죠. 최근에 발표한 시 가운데 ‘바다풀 시집’이라는 시가 있어요. 바다풀로 종이를 만든다는 뉴스를 보고 내가 드디어 종이를 쓸 때마다 나무들에게 갖는 이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시대가 오는 것인가 하면서 쓴 시에요. 바다풀 종이로 시집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이 있잖아요. 대학에 강의를 가서 학생들을  만나면 늘 이 책을 권해요. 학생들이 읽고 나서 열에 여덟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들은 이게 있을 수 없는 일인 거예요. 그러면 제가 다녀온 인도 남부 오르빌 이야기를 해주죠. 초창기 사진을 보면 그곳은 완전히 황무지였어요. 지금은 울창한 숲속 마을이거든요. 30년 동안 200만 그루 나무들을 심고 가꾸어 만든 숲이에요. 척박해서 기온이 50도까지 올라가고 풀들이 다 말라죽어서 채소를 먹을 수 없는 곳이었어요. 나무 한 그루 살리려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묘목을 심고 거름을 주고 흙이 유실되지 않게 돌보면서 나무가 스스로 힘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3년~4년 엄청난 공을 들이는 거죠. 이렇게 조금씩 숲을 이루게 되자 마을에 물이 풍부해지기 시작했어요. 이전 실제 일어난 일이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죠. 황무지 같은 절망이나 벽을 느낄 때 한 사람이 또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 몇몇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거죠. 스스로를 믿고 묵묵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실천이 필요한 시절이에요.

시인님이 생각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는 무엇인가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은 것’은 규모나 양, 크고 넓은 것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것은 씨앗에서 출발해요. 사람도 눈에 안 보이는 씨앗부터 출발하고 굉장히 큰 나무들도 작은 씨앗에서 시작하잖아요. ‘작다’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너무나 미미하고 눈에 안 보이는 어떤 미동으로부터 출발하는 거죠. 존재 기미가 포착되는 이 작은 미미한 파동이 사실은 모든 존재의 어머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마음이 중요해요.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는 마음인 거죠. 그래서 지구 어머니 앞에 겸허하고 겸손한 존재가 될 때 사실은 가장 넓고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겉으로 드러난 규모에 절대로 속으면 안 되는 거죠.

15돌을 맞는 열다섯 살 <작아>읽새에게 한 말씀 나눠주세요.

사랑합니다. 우리가 너무 규모에 속아 소통이 잘 안 되는 대목들이 정말 많아요. 15년 전이면 한국 녹색운동이 아주 척박한 곳에서 미미한 파동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잖아요. 앞으로 훨씬 더 오래 가야죠. 15년 사실 금방이잖아요. 생태 상상력과 초록빛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받지 않으면 더 나아갈 수 없고, 세상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아가들에게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큰 나무가 되라’ 하잖아요. ‘네가 되고 싶은 나무가 되라’고는 잘 하지 않아요. 크게 자라지 않는 나무도 있고, 단단하고 작게 자라는 나무도 있고, 크게 자라는 나무도 있어요. 모든 나무는 자기가 생긴 대로 자기만큼 함께 자라는 것이 중요하죠. 우리의 바람은 이렇게 모든 갖가지 나무들이 어울려 조화로운 숲이 되는 것이니까요. <작아>를 든 손이 우리 사회에서 정말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잊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마음으로 오랫동안 함께 갔으면 해요.

위의 글은 작은것이 아름답다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인터뷰 정리 편집부, 사진 김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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