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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0일이 지났습니다. 산이 좋아서 산에 사는 동물들이 좋아서 무작정 뛰어든 야생동물조사단... 눈길에 미끄러지고 돌에 부딪혀 이곳저곳 성한 구석 하나도 없지만 어느새 산 속의 똥만 보아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산양만큼이나 노루만큼이나 바위타기 선수도 되었지요.
산내음, 바람소리... 야생동물과 함께한 40일의 여정
어떤 젊은이들보다 힘차고 보람된 방학생활을 하고 있노라고 자부하는 두 젊은이의 야생동물 사랑이야기 한 번 들어볼까요?
[img:DSCN3655.JPG,align=left,width=288,height=216,vspace=5,hspace=10,border=1]졸린 눈 비비며 산으로 산으로~
차가운 산속의 새벽공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산양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우리의 여정도 다시 시작되는 것이지요. 울진-삼척의 험한 산줄기들은, 겨울옷까지 입고 우리 앞에 서 있지만, 그 구비구비에서 숨쉬고 있을 순한 눈망울의 산양을 가슴에 품은 야생동물조사단은 오늘도 힘찬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도시의 빌딩숲과, 화려한 네온을 뒤로 한채, 이곳 울진-삼척지역에 머무르는 것도 20여일이 넘고 있습니다. 손전화도, 티비도, 인터넷도 없는 산골에서 처음엔 무척이나 답답해 했었지요. 하지만, 소광리의 자연은, 제게 새로운 소통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빠르고 피상적인 도시문명에서 벗어나, 천천히 마음을 열어가게 만들고 있지요.
[img:DSCN3565.JPG,align=right,width=288,height=216,vspace=5,hspace=10,border=1]울창한 숲, 반짝이는 별과 바람
산양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직접 산양을 보진 못했지만, 조용조용 벗들의 발자국을 따라 가는 길에서 이미 저는 산양들과, 또 금강송과, 계곡물과, 구비구비 능선줄기들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길도 없고, 눈덮인 산을 타고 올라 산양의 흔적을 찾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입니다. 아찔한 경험도 많이 했구요. 넘어진 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네요 ^^ 하지만, 어렵게 오른 바위지대 절벽앞에서 산양의 똥무더기를 발견했을때의 그 기쁨과 뿌듯함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랍니다. 눈이 시릴만큼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 반짝이는 별과 바람도 있구요. 산양의 털 한 오라기를 발견하고서도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서로 간직하려고 다투는 야생동물조사단의 모습 그 순수함과 서로를 향한 믿음 역시, 오늘도 다시 산을 오르게 하는 이유랍니다
멀리 동해바다가 내려보이는 능선위에 올라섭니다. 끝없이 펼쳐진 장엄한 산줄기의 모습이 제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이 산줄기 어디에선가 그 선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뛰놀고 있을 산양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시원한 산바람을 가슴 가득히 담고서, 인간과 야생동물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자! 다시 살떨리는 절벽을 기어올라가 봐야겠지요?
우리의 소중한 벗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말입니다. 정말 멋진 겨울방학인 것 같지 않으신가요?
- 야생동물조사단 자원활동가 하호성
[img:DSCN0443.JPG,align=left,width=288,height=216,vspace=5,hspace=10,border=1]내가 이곳에 온 이유
높은 빌딩 숲은 겨울 별빛을 모두 가리우고, 콘크리트 바닥은 땅의 숨통을 죄어버리는 붉은 도시의 밤. 제대로 된 땅을 밟아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서울생활 5년차에 접어드는 나의 가슴은 늘 땅과 하늘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런 이유로 산양의 서식처를 찾아 나서는 일은 너무도 반가운 일이다. 천연기념물 217호라 이름지워진, 잊혀져가는 이 땅의 친구 "산양". 그 모습과 흔적을 찾아 단숨에 동해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그 발걸음에 서울에 대한 미련은 남지 않으리라.
이미 산양 서식처로 알려져 있는 울진, 삼척 일대는 금강송의 우람한 자태가 자랑스래 뻗어있는 산줄기와 그 앞으로 탁 트인 동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 거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늘상 환경과 생태문제를 가슴에 담고 살아오기는 하지만 험준한 산 골짜기 골짜기를 내 발로 직접 찾아가는 일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설레임도 설레임이지만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도시생활에 물든 내몸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줄까?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러나 곧 바람에 실려오는 비릿한 바다내음과 숲에서 밀려오는 향긋한 흙냄새는 나의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그리고 내 곁에는 든든한 선후배님이 있지 않은가. 겸허한 마음으로 도전하는 자에겐 두려움이 없으리라.
[img:DSCN3662.JPG,align=right,width=288,height=216,vspace=5,hspace=10,border=1]산양똥 보며 탄성이 절로~
생계를 위해 송이를 채취하러 가을한 철 매일 산에 오르는 주민 분들도 산양을 쉽게 보지는 못하신다고 한다. 그만큼 서식처가 험하여 사람이 접근하기 힘들고 또 산양은 워낙 예민하고 뛰어난 감각을 가진 동물임을 알 수 있었다.
산양의 서식처를 찾아 가는 산행에서 이런 사실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비탈길을 지나고, 잡목이 우거진 겨울 숲을 헤치고 올라 험준한 바위능선을 아슬아슬하게 헤매다 보면 어느새 똥무더기가 수북한 산양의 보금자리를 발견하게 된다. 산양 서식처를 발견하게 되면 나의 발목을 더디게 만들던 고소공포증과 무릎의 피로감이 모두 잊혀지고 연신 사진기의 셔터만을 눌러댄다. 앞으로는 굽이굽이 넘실거리는 백두대간의 능선이 보이고 그 너머 반짝이는 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고, 등뒤로는 수직으로 버티고 있는 바위 절벽이 있는 곳, 바로 이 곳이 산양의 안식처이다. 함께간 선배님은 감탄을 연발하신다.
"야- 정말 이런 곳에선 똥 눌 맘이 절로 드는 구나."
한번은 서식처를 발견하고 내가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동행하신 선배님이 갑자기 나를 부르셨다.
"쉿- 저기 뭔가 움직인다!"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마주 보이는 능선에서 무언가를 보셨나보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때는 이미 커다란 몸뚱이가 바람처럼 사라진 뒤였다.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능선을 돌아 그곳으로 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방금 만들어진 산양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우리가 있던 곳과 산양이 있던 곳 까지의 거리는 거의 백여미터나 떨어져있던 곳이었는데 산양은 우리의 인기척에 놀라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다. 발자국은 서둘러 도망가는 산양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거의 2미터에 가까운 보폭, 강하게 파헤쳐진 눈자국.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렇게 가파른 사면을 놀라운 힘으로 튀어올라가는 동물이 바로 산양의 모습이구나!
한편으로 매번 산양의 보금자리를 찾아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의 흔적이 산양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런지.... 그렇지만 전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이 되어버린 산양이 이 한반도 땅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의 서식실태를 파악하는 일은 가장 기초적인 작업의 하나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산양들도 우리의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라 믿는 수 밖에.
아직도 험한 산에 오르는 일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산에 올라 숲을 느끼고 그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음은 나역시 자연의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잠이들 무렵이면 나는 신이 내린 벌로 끝임없이 바윗돌을 거친 산으로 밀어올려야하는 시지푸스의 운명을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은 일, 산양의 발자국을 찾고, 산양의 쵸콜렛 무더기 같은 똥을 찾는 일, 바로 이런 작은 일이 우리가 인간이기에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을 되내이고 또 되내인다. 다시 굴러 떨어질 바윗돌을 끝임없이 밀어올리기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지푸스와 같이 우리도 우리가 인간임을 알기위해 내가 있는 곳의 작은 일들을 늘 소중히 여기고 나의 몸과 마음을 다해서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산에 오르는 나는 기쁘다. 나의 존재가 확인되는 곳이니까. 산양을 만나러 떠나는 오늘 이 길, 또한 나도 거기 서있다.
-야생동물현장조사단 자원활동가 유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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