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1일은 후쿠시마 2주기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녹색연합은 그 의미를 보다 잘 되짚어보기 위해 공감과 변화의 시나리오란 이름으로 세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0.25 밀리시버트 - 후쿠시마의 미래다큐멘터리 상영과,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홍기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상영회는 후쿠시마 2주기 당일인 311,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대강당에서 있었습니다. 휴머니스트 출판사 건물 안에 자리한 예쁜 카페를 지나서 계단으로 좀 더 내려오면 아담하지만 분위기 있는 대강당이 나옵니다.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 귀에 쏙쏙 들어올 것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강당입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였고, 저녁 7시가 됐습니다. 조명이 꺼지고 드디어 다큐멘터리가 시작하는데, 어라? 스피커 소리가 너무 울리네요. 월요일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부러 찾아온 관객들을 위해 이홍기 감독이 직접 나섭니다. 이리저리 음향을 체크해 주니 이제 괜찮습니다, 자 그럼 드디어 다큐멘터리가 시작합니다. 며칠 전에 아리랑TV, OBS에서 이미 방영이 됐지만, 스크린을 통해 직접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상영회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 사고로 폐허가 된 후쿠시마의 모습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다큐멘터리는 시작합니다.

 

 

 

 

 

 

본 다큐멘터리는 일본 전역에서 모인 17명의 일본 시민들이 체르노빌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모인 17명의 일본 시민들은 서로 초면이었고 사는 곳도 제각기 달랐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분명히 다 같았습니다. 바로 그들의 아들 딸, 그리고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체르노빌에는 안개와 연기만이 감돌고 죽음의 소리가 침묵을 깨네. 그리고 가슴 속에 남은 무서운 상처는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아. 오직 영원의 죄와 같은 빈 공허함만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이 폐허에 남아있지.”

 

다큐멘터리 안에서 한 아이가 일본에서 온 방문자들을 위해 떨리는 목소리로 부른 노래입니다. 체르노빌에서 100km 이상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의 아이들이 매년 426,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했던 날짜가 되면 부르는 추모 노래라고 합니다. 이렇게 멀리 거리가 떨어져 있었어도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날아와 그들의 마을의 땅과 공기를 오염시켰습니다. 당시 방사능에 노출됐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재의 그들의 아이들까지도 원인 모를 다양한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방사능의 폭풍이 한 번 휩쓸고 가면, 아무리 최첨단의 도시였다고 해도 야생동물들만 뛰어 노는 녹이 슨 놀이기구가 을씨년스럽게 삐거덕거리는 폐허로 변해 버립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이는 자연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 짙은 녹음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노랫소리가 묵직하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든 천진난만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3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어느 한 마을의 아이들은 방사능으로 잔뜩 오염된 놀이터 주변에서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오염된 땅을 갈아엎는 제염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0.25 밀리시버트 이하로는 방사능을 쬐어도 괜찮다고 이야기는 해도, 그 측정기를 1m 위에 대느냐, 아이들이 발로 구르고 손으로 만지는 땅에 대느냐에 따라 그 측정 결과는 천지차이가 납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렇게 체르노빌 근처 여러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후쿠시마 주변의 여러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하며 보여줍니다. 후쿠시마의 현재와 미래는 이렇게 공간을 달리하며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 다큐멘터리는 잘 보여줍니다. 체르노빌을 직접 방문한 17명의 일본 시민들은 후쿠시마의 어떤 미래를 엿보고 돌아왔을까요? 후쿠시마의 봄은 과연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게 될까요? 봄의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지금, 후쿠시마의 봄을 한 번 상상해 봅니다.

 

 

 

 

[감독과의 대화 요약] - "방사능보다도 무서운 것은 바로 거짓말입니다."

 

 

 

 

 

 

관객1: 저는 체르노빌 이야기를 초등학교 때 책을 보다가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 이야기보다는 자연이 파괴되고 송아지가 기형이 되는 등의 이야기가 기억이 많이 납니다. 감독님도 혹시 현장에서 직접 동물이나 자연 파괴의 모습을 보거나 들은 것이 있으신가요?

 

이홍기 감독: 유전학 전문가를 만났는데, 염소, , 소 등 다양한 기형의 모습, 팔 다리가 짧은, 5개월 된 낙태된 아기 등을 볼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러한 사진들은 너무 잔인하고 슬퍼서 다큐멘터리에는 못 붙이겠더군요. 이렇게 눈에 보이는 커다란 문제들도 있지만, 눈에 안 보이는 더욱 커다란 문제들도 있어요. 저는 방사능이, 핵이 뭔지도, 우리나라에 핵발전소가 몇 개 있는지도 몰랐어요.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프랑스와 한국을 꼽고 있어요. 최근 울진 등에서 발생한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미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쨌든 실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최근의 소식을 듣게 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죠.

 

 

관객2: 다큐멘터리 내용상 참 놀랐던 게 그 오염 지역 주민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방사능 위험이 도처에 널려 있는 유치원에 계속 보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이홍기 감독: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주민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80km 이내의 사람들은 강제 이주를 시키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체르노빌만 해도 30km로 기준을 정해놨는데 일본은 20km이에요. 그리고 이 문제는 또한 단순한 이주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파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더욱 어렵기도 합니다. 내가 살던 곳을 하루아침에 떠나기가 힘든 점도 있을 것이고, 일자리 문제, 방사능 오염에 대한 두려움 등이 일본 특유의 차별을 즐기는 특성과 결합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결혼과 관련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떠나지 못하고 자기의 아이들을 그 지역 유치원에 그냥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시정부가 방사능 오염 측정기를 설치할 때는 보통 그 주변을 깨끗하게 치웁니다. 그러나 가까운 그 주변은 방사능 오염의 정도가 매우 커다랗게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지금 주민들은 어디는 밟으면 되고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기도 하죠. 예를 들어 도로도 가운데 중앙선이 있으면 그곳이 약간 높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물이 주변으로 흘러내리게 되어 그 쪽으로 오염 물질들이 모이게 돼요. 그리고 이끼가 낀 곳을 절대 밟아서도 안 되죠. 그래서 평소에는 약간 높은 곳으로 계속 다녀야 해요. 이런 모습들이 앞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그 곳 지역 농산물을 사서 먹자는 등의 응원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보셨듯이 절대 그 쪽 음식을 먹어서는 안 돼요. 어느 정도 회복되는 방법도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방사능으로 인해 걸린 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지금 일본은 핵발전소를 지금 다 멈추고 한 개만 운영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지금 일본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지 않나요? 우리는 핵발전소가 20개가 넘게 돌아가도 매일 전기가 모자라다고 타령을 하는데.. 왜 그런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누구 아는 분 제게 알려 주세요.

 

그리고 핵폐기물 깡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면, 이 깡통을 땅에 묻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절대로 될 수 없어요. 이 문제는 우리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핵 문제는 정치, 경제, 학문, 의학 등 안 걸리는 분야가 없어서 다양한 것들을 모두 고려해서 풀어야 해요. 이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는데도 무척 어려웠습니다. 방송 3사들은 제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며 방송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오늘 상영회는 참 의미 있는 날인 것 같습니다,

 

 

관객3: 체르노빌 갈 때 만반의 준비를 했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이홍기 감독: 많이 두려웠지만 그것을 준비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장비가 필요해서 그를 감당할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장비들 다 착용하고 주민들을 만날 수는 없는 일이었죠. 그랬으면 제대로 인터뷰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당시 카메라맨에게도 함부로 가자고 하질 못해서 직접 찍기로 했었고, 두 사람만 같이 갔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50이 넘었으니 방사능 오염으로 10년 뒤, 20년 뒤에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을 때 괜찮지 않겠냐 싶어서 그냥 갔고, 당시 일본팀들도 커다란 준비 없이 그냥 갔었어요. 그 쪽도 평균연령이 60은 넘었었죠. 일본 후쿠시마 갔을 때 주민들이 취재팀 왔다고 바닷가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한 상 차려서 잔치처럼 대접해줬어요. 그런데 그 전 날 방사능 전문가가 거기서 오염된 음식 절대 먹지 말라고 했었지요. 어디까지 먹어도 되냐 물었을 때 생선은 두 점까지만이라고 했는데, 주민들은 한 상 차리고 자꾸 먹으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자기들은 먹지도 않고.. 어쨌든 배고파서 맛있게는 먹었어요. 그리고 체르노빌에 갔을 때는 너무 배고파서 체르노빌 안에 들어가서도 음식을 먹었었죠.

 

 

관객4: 마지막 영상에서 주민들이 일본 국회를 둘러싸고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핵 방사능 오염 문제란 것이 반감기가 몇 십만 년이고, 기형아가 나오고, 참으로 공포스럽고 종말론적이기까지 한데, 뭔가 그냥 그렇게만 이야기하기에는 개운하지 않고 고민이 됩니다. 우리의 핵발전소 23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답이 하나도 없지 않나요. 이런 상황에서 그러면서도 뭔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 그런 재앙을 경험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떤 걸까, 그 상상력이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묻고 싶습니다.

 

이홍기 감독: 연구해 봅시다. 답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잘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정치가의 집이라고 써져 있는 집이 하나 나옵니다. 핵발전소 문제에 대해 괜찮다 괜찮다 하는 정치가들이 살아야 할 집인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솔직한 정보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알아야 대책을 마련합니다, 어떻게 상상만 할 수 있겠어요? 그게 말이 되나요? 거짓말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방사능 만들어 놓은 거 어쨌든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방사능보다도 무서운 것은 바로 이 거짓말입니다. 

 

(위 내용은 3월 11일에 있었던 이홍기 감독과의 대화를 요약 및 재구성한 것입니다.)

 

 - 정리: 한재윤 (활동가_녹색연합 상상공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