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생명의 품에 들다

 활동이야기/야생동물       2009. 5. 4. 14:30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울진, 생명의 품에 들다!!!



얼마 전 한 신문에서 사람들에게 ‘울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었다. 세대마다 답이 달랐는데, 50~60대는 울진삼척무장공비사건, 30~40대는 원자력발전소, 20대는 거기 너무 멀지 않아? 하는 대답이었다고 한다. 세대마다 대답은 다르지만 울진을 잘 설명해주는 답변인 듯 하다. 5월 11일부터 7박 8일 동안 녹색연합 활동가와 회원들이 2009 녹색순례를 통해 울진을 걷는다. 울진, 그곳에 뭐가 있기에 환경 활동가들이 길을 떠나는 것일까.

환경운동에서 울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원자력발전소 반대 운동이었다. 90년대 초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은 극렬하게 반대했다. 결국 현재 북면 부구리에 핵발전소 2기가 들어섰고, 지금은 핵발전소 옆에 잘 꾸며진 홍보관으로 긴 핵발전 논란을 덮고 있다. 낙후된 지역을 핵발전소 유치라는 것으로 부흥시켜보겠다는 지자체와 핵발전 중심 정책을 가진 중앙 정부의 합작품이다. 그런데 정말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지역 경제 활성화될까.

울진이 귀중한 이유는 자연 그대로의 가치가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울진 소광리, 두천리부터 삼척에 이르는 지역은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DMZ, 설악산과 연결된 마지막 산양 서식지로 약 500마리 이상이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산양이 좋아하는 암벽지대이고 산세도 험해서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탓에 산양 서식지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산양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별로 없어 보인다. 최근에는 36번 국도 확포장 계획으로 서식지마저도 위협을 받고 있다. 산양 서식지 보호를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울진의 대표적인 자원으로 금강소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소광리부터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일대까지 약 9천ha 정도를 산림청이 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해 국내 제일의 금강 소나무 숲을 지키고 있다. 520년 된 보호수 두 그루와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로 지정된 350년의 미인송, 200살이 넘은 노송 8만 그루 등 모두 1284만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울진에는 국내 최대 생태경관보전지역인 왕피천이 있다. 녹색연합은 2000년대 초 두 번의 생태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호구역 지정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결국 2005년 국내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2007년에 왕피천을 지켜내기 위한 10년 관리기본계획이 세워지기도 했지만 예정대로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왕피천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국가가 지정한 다른 보호구역에 비하면 지원과 보호 실태는 초라하다. 상류지역의 주민들에게는 보호구역이 또 다른 규제로 밖에 비춰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한데도, 주민 지원사업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녹색순례를 통해서 왕피천을 직접 걷고 느끼면서 왕피천 보호와 이용을 위한 탐방 대책을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정해 놓은 구역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서식지를 넘나드는 야생동물이나 협곡을 유유히 흐르는 계곡을 보면 보호구역의 경계가 모호해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분명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지켜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정부나 NGO가 보호구역으로 정한다고 해서 그곳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늘 그곳에 있고 자연과 함께 하는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지키지 않으면 법과 제도는 그저 멀리 있을 뿐이다. 울진 왕피천과 소광리 일대 산양 서식지까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지키는 일이 성공할 수 있을지 실험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핵발전소가 아닌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올해부터 두천리~소광리 숲을 잇는 ‘걷는 길’이 만들어진다. 옛날옛적 보부상들이 동해에서 장을 보고 내륙지방인 봉화, 안동으로 걸어갔던 길을 복원하는 의미로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숲, 물, 바람이 좋은 곳이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드나들게 되면 지금까지 사람의 간섭 없이 살아왔던 산양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두메산골에서 소박하게 살던 주민들에게도 큰 변화가 올 수 있다. 서로가 충격을 덜 받고, 늘 살아왔던 방식을 유지하면서 자연에 들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이곳은 옛길이자, 산양길이고 자연의 길인 것이다.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이나 그린피스 같은 국제 환경단체는 세계 곳곳에서 생태계가 민감하고 우수한 지역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코스타리카, 마다카스카르 등이 대표적이다. 울진은 국내에서 우리가 꼭 지켜야 할 Hot Spot이다. 예부터 진귀한 보배가 많은 곳이라는 뜻의 ‘울진’과 잘 어울린다. 자, 이제 울진의 보배를 찾아서 생명의 품으로 들어가 보자.

글 : 고이지선 국장 (녹색연합 자연생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