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 모니터링을 통해 발견한 연결과 공존

 활동이야기/야생동물       2011. 4. 5. 10:38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참가자 김연화

“어머나, 세상에. 호랑이가 있어요.” TV에서 방영해 주던 다큐멘터리 속의 남자는 히말라야 지역에 설치했던 무인카메라에 찍힌 호랑이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해에 러시아에서 열렸던 “호랑이 회담”은 세계 여러 나라가 모여서 멸종 위기에 처한 호랑이의 보호를 논하는 자리였는데, 보호구역의 지정에 있어서 무인카메라가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자리에 호랑이는 무인카메라를 통해서 자신의 의사 표시를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던 차에 마침 녹색연합에서 온 메일은 산양의 모니터링에 함께 하자 했다. 그 중에서도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산양 모니터링을 위한 “무인카메라”였다. 멀게만 느껴졌던, 아니 사실 우리나라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산양이 무인카메라를 통해서 나와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 산양의 배설물을 발견했다. 옛날 것부터, 최근 것까지 한자리에 가득 있었다
앓는 소리를 조금 하자면, 학기가 워낙 바쁜 터라 학업 외의 일을 한다는 것은 정신 나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산양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한 순간, ‘에라 일단 지르고 보자.’ 무턱대고 신청하고는 준비도 없이, 등산화만 덜렁 들고 울진에 갔다. 그것도 나는 별 생각이 없던 차에 후배가 전 날 들고 나타나서 다짜고짜 빌려 준 등산화, 네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니! 사실 낯을 좀 가리는 나로써는 산양을 만나는 것보다 더 떨리는 건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는데, 산양을 보러 가는 길에 낯선 사람들을 잔뜩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버스를 타고 내려갈 때만 해도 그 낯선 사람들은 행사를 기획한 녹색연합 활동가들과 그에 참석한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울진에 도착하자 갑자기 그 곳에 살고 계시던 동네 주민들과 울진숲길 관계자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사람 외의 부분으로 시선을 넓혀서 생각해 보면, 울진이라는 지역과 금강송 숲, 그 안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명들이 나와 산양 사이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나는 단순히 산양과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산양과 나는 무인카메라 외에도 수많은 존재들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다!


▲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일대에 살아가는 산양 모니터링을 위한 무인카메라
생각보다 많은 연결이 존재해서 놀랐는데, 그 중에서도 마을 어른들과의 연결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자연이나 환경에 대해 피상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인간만큼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없는 것 같고, 인간은 흔히 자연을 보호하거나 파괴하거나 둘 중 하나의 역할로 구분되며, 이분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주변인으로 배제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자연과 보호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외에도 그 환경 속에 살아가는 지역민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환경 보호란 그들을 포함하는 활동이라는 것을 녹색연합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도시와는 다른 환경에서의 잠자리와 평소 익숙하지 않은 나물이 가득한 밥상이 그저 신기한 일회성 경험이 아닌 하나의 삶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마도 그들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처음 만나 쌩얼을 마주하며 밤을 함께 한 분들도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것도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내가 하루 밤을 머물렀던 집의 어머니는 두천리에서 가장 젊은 분이라고 하셨다. 밤 늦게 도착했음에도 반갑게 맞아주시며 꿀 차도 타주시고 다음 날 아침에는 정말! 맛있는 아침밥을 한 상 가득 차려 주셨다. (시골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순간!) 평소 고기 매니아인 나도 그 날의 아침밥이 어찌나 맛나던지, 많다고 덜었던 밥을 다시 가져와서 먹었다. 그리고 두천리 마을 분들께서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도시락으로 점심에도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었다. (먹을 거에 가장 감동받는 나) 어쩌면 나와 산양 사이에 그분들이 연결이 되어주신 것처럼 그분들과 산양 사이에 내가 연결이 되어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연결들은 산양 서식지를 돌아다니는 내내 계속 나타났다. 생전 처음 등산로가 아닌 야생동물의 길을 따라 올라가는 산길은 나에겐 정말 너무 험난했지만, 나는 후배의 등산화, 같은 조의 착한 분들의 장갑과 스틱 등이 그 마음과 함께 연결되어 산양을 보러 가는 그 길에 다리를 놓아주었고 덕분에 무사히 무인카메라에 담긴 산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산양을 직접 보지 못한 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뭐 꼭 직접 보는 방법만 있을까? 무인카메라가 산양의 대리자라면? 혹은 무인카메라가 산양이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이라면? 애초에 목적이 겨우내 산양이 잘 있었을까를 모니터링 하는 것이었는데, 그에 대해 산양은 여기저기 흔적을 남겨 대답해 주었으니, 직접 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소통을 했고 이는 다른 방식으로 산양을 만났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꾸며보자면, 산 길에서 불쑥 산양과 마주쳐서 그들을 놀라게 하는 대신에,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는, 더 예의 바른 만남을 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참가자 박다예


▲ 산양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산양의 똥으로 산양을 느끼다
서울에서 출발하고 나서 오랜 시간 끝에 울진에 도착, ‘야생동물 흔적도감’을 쓰신 최현명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멧토끼와 산양에 대해서 좋은 강의를 들었다. 기억나는 산양의 주요 특징은
1. 뿔이 고개를 숙이면 마치 송곳처럼 될 만큼 날카로우면서도 짧다
2. 발이 바위를 잘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고무재질에 바닥이 약간 움푹 들어가 있다
3. 좁은 영역에서 생활하고 다른 산양의 영역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4. 다리가 짧아서 눈이 오면 활동이 어렵다

특히 4번 때문에 눈이 많이 오면 산양들이 눈 속에 갇혀서 죽기도 한다니 정말 안타까웠다. 또 눈이 많이 오면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기 쉽다는 슬픈 얘기도 들었는데, 눈이 지나치게 많이 오는 것이 이상기후 때문에 그렇다니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두천리 마을 민박에서 어르신들이 해주시는 밥상에 든든한 아침을 먹고, 모니터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산양이 사는 능선에 오르기 전까지 계곡에 혹시 죽어가는 산양이 있나 보면서 걷기도 하고 살쾡이 똥, 맷돼지 발자국 등을 발견해 기뻐했다. 사실 전 그동안 산에서 그런 똥을 보면 왠 개가 산 한가운데에 똥을 싸놨지 하고 궁금해 했는데, 그게 살쾡이 똥이었다니! 능선을 따라 올라간 뒤에는 산양은 만나지 못하고 산양 똥을 많이 만났다. 정말 정말 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이번에 갔다와서 느낀 건 야생동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산양도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야생동물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 어쩌면 야생동물 보호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산양아 놀자’ 프로그램처럼 일반인이 멸종 위기의 동물에 대해 더 잘 알 수있는 계기가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