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줄기는 끊어져도 내 땅에 내가 간다 - 한북정맥 7차 탐사

 활동이야기/백두대간       2004. 12. 22. 21:06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북정맥 환경탐사를 진행한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가고, 이제는 해를 넘기며 한북정맥 줄기를 이어가게 된다. 그런 중요하고 의미있는 12월인데! 바깥에서의 야영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부담이 되나 보다. 게다가 바쁜 연말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이번 환경탐사는 열손가락을 넘지 못하고 달랑 일곱 명이다. 다른 때 지속적으로 오던 녹색친구들도 이번에는 몇 명 빠지고... 그래도, 오붓한 게 더 좋다 뭐! 더 재미나게 야영하고, 더 신나게 산행하고, 더 진지하게 마룻금 탐사를 진행할테다!ㅎㅎ

이번 야영은 지난 6차에 떨어진 큰넓고개 근처 마을 원두막 옆에서 한다. 겨울이라 작물이 없어서 뭘 키웠는지 모르겠지만 원두막은 제법 넓고 튼튼하다. 원두막에 바람이 들지 않도록 텐트 후라이를 쳤더니 한결 따뜻하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준비한 밥과 라면을 먹고, 제대한 선배 축하해주며 와인으로 분위기도 내고, 내년 녹색친구들 산행에 대해 발전적인 이야기들을 하며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바깥에는 얼음이 얼었다. 지구온난화라 측정 후 네 번째로 따뜻한 겨울이라는 데도 어쨌거나 겨울이라고 춥기는 춥구나. 오늘 의정부 쪽에서 한 사람이 새벽같이 출발해 큰넓고개에서 로얄컨트리클럽까지 한모둠, 불국산에서 샘내고개를 지내 작은 테미까지 한모둠이 진행하기로 했다. 따뜻하게 챙겨 입고 출발출발!

지난 번 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한 한북정맥 길 찾기는 처음부터 쉽지 않다. 마을이 생기고, 길이 생기니 산길은 보이지 않고... 오늘은 왠지 지도보다는 오로지 표식만을 의지해 걸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오늘따라 몸도 무겁다. 늘 무거운 몸이긴 하지만.ㅋㅋ
[img|handaegan_01.jpg|500| ▲ 도로로 끊어진 한북정맥 큰넓고개|5|1]
몇 분 걷지 않아 도로로 끊긴 절개면이 나타났다. 내려가서 큰길 건너서 다시 올라가야 한다. 쌩쌩 달리는 차들로 길 건너기도 살벌하다. 도로로 내려섰다 다시 오르는 길에 다람쥐가 차에 치였는지 꾹 눌려서 얼어 죽어 있다.

다시 이어진 길은 좁지도 넓지도 않은 작은 산길이다. 아직 많은 사람이 다니지는 않나 보다. 그리고 어제 잡아 먹혔는지 산비둘기 깃털도, 멧토끼 깃털도 보인다. 잎이 다 지고 죽은 듯 고요한 겨울 숲이지만 나름대로 쫒고 쫒기며 비장하게 살고 있구나 싶다. 산비둘기도, 멧토끼도, 나무껍질 속에서 겨울을 나려는 벌레들도...
[img|handaegan_02.jpg|500| ▲ 멧토끼의 흔적|5|1]
또 쭉~ 가다보니 어? 숲이 다르다. 전까지는 잣나무랑 참나무만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금강송도 보이고 매끈매끈 서어나무도 보이고, 잎은 지고 없어도 숲이건강한 기운으로  꽉 차있다. 그럼 그렇지! 팻말을 보니 광릉수목원 시험림지역인 죽엽산을 지나는 길이다. 서어나무는 울퉁불퉁하면서도 매끈한 것이 멋진 근육을 생각나게 하는 나무로, 극상림이라고 숲이 최고로 안정되었을 때 나타나는 나무다.

멋있는 서어나무를 보니 몸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다.^0^ 서어나무랑 같이 몇 백 년은 살아오신 듯한 큰 소나무를 안아 보았다. 큰 줄기 하나가 한 아름이 넘는 소나무.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img|handaegan_03.jpg|500| ▲ 죽엽산의 큰 소나무|5|1]
죽엽산, 그리고 비득재를 지나고, 이제는 축석령이 바로 나올 것 같다. -_- 그랬던 축석령은 가도 가도 보이지 않고 공동묘지를 지나 내려서니 도로가 보인다. 몇 번 지방도이겠거니 했는데 여기저기 이상한 건물들. 우리가 내려 온 곳은 군부대 내였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중대장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다시 축석령을 찾아 올랐다. 서울로 가까워지니 계속 나타나는 것은 이어진 산길이 아니라 도로들. 지난번 탐사에서는 오르락내리락 오솔길같은 마룻금만을 따라 걸어서 하나도 안 피곤했는데 이번은 계속 끊어지는 산줄기에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img|handaegan_04.jpg|500| ▲ 큰 규모로 이어진 공동묘지|5|1]
드디어 축석령으로 떨어졌다. 축석령은 『조선왕조실록』에 “ 이 축석령은 백두산(白
頭山)의 정간룡(正幹龍)이요, 한양으로 들어서는 골짜기이다. 산의 기세가 여기에서 한번 크게 머물렀다가 다시 일어나 도봉산이 되고 또 골짜기를 지나 다시 일어나 삼각산이 되는데, 그 기복이 봉황이 날아오르는 듯하고 용이 뛰어오르는 듯하여 온 정신이 모두 왕성한 지역에 모여 있다. 산천은 사람의 외모와도 같은 것이어서 외모가 좋은 산천은 기색 또한 좋다“쓰여 있다고 한다. 그만큼 중요한 축석령이 지금은 43번 국도로 동강나 있다. 사람이 편하기 위해 도로를 만들 수 있지만 오랜 미래를 바라보고 만드는 길이었으면 한다. 여기저기 생각없이 뚫리는 도로로 백두대간은 8km 마다 동강 나있고, 화천 수피령에서 흘러오는 한북정맥은 이제 산줄기로 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img|handaegan_05.jpg|500| ▲ 잘못 들어간 군부대|5|1]
오늘의 도착지점인 로얄 컨트리 클럽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사장님. 나이스 샷!" 그러면서 골프치는 사람들이 있다. 골프도 칠 수 있겠지만 잘 죽는 잔디를 키우려 엄청난 농약을 뿌려대야 하며, 많은 편편한 면적이 필요한 골프장 때문에 많은 산이 깎여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골프장 200개를 더 짓고, 작은 골프장 짓는데 규제완화를 하면서 경제 활성화를 시키겠단다. 노동자도 골프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나, 뭐라나. 골프치고 싶다는 노동자를 본 적이 없다는 백무산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녹색사막이라고 불리는 골프장이 경기도에만도 벌써 몇 백 개인지 모른다.
[img|handaegan_06.jpg|500| ▲ 로얄 컨트리 클럽 골프장|5|1]
이런, 한북정맥 얘기를 하다가 옆으로 좀 새었다. 만나기로 한 곳에서 험한 불국산과 마을길로 찾기 어려워진 정맥길로 고생한 다른 팀을 만났다. 다들 고생했어요! 그래도 조금만 있으면 도봉산으로 들어선다. 다음달 열심히 마룻금을 걸으면 오늘 눈앞에 펼쳐졌던 저멀리 도봉산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는 더 많은 사람들과 끊이지 않은 한북정맥 마룻금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 백두대간보전팀 조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