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숙도 미운오리새끼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5. 2. 7. 18:05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요즘 들어 부쩍 철새처럼 이 곳 저 곳을 떠도는 사람들이 있다. 선거철만 되면 이 당 저 당을 왔다갔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철새정치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천성산 화엄늪을 지키기 위해 부산을 떠나 서울에 머물고 있는 지율스님이 그렇고 해가 지면 교보문고 앞으로, 서면으로, 대구백화점 앞으로.... 철새들처럼 모여드는 ‘도롱뇽의 친구들’과 환경과 생명을 사랑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또한 그렇다. 그리고 2월 2일 ‘세계습지의 날’을 맞이하여 을숙도로 모여든 사람들이 있다.

[img|100_0019.jpg|550| |0|1]-을숙도 철새도래지의 핵심지역을 관통하는 명지대교 건설은 백지화되어야 한다-

이들은 바로 을숙도 철새도래지의 핵심지역을 관통하며 건설예정인 ‘명지대교 건설저지를 위한 부산시민대회’를 위해 모여든 ‘낙동강하구살리기 시민연대’의 시민과 학생들이다. 환경부가 주관하는 2005년 ‘세계 습지의 날’ 기념행사가 창녕 우포늪 일대에서 요란한 잔치를 벌이는 동안 이들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철새도래지의 핵심지역 위를 관통하는 명지대교건설을 저지하고 정부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습지보전정책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을숙도로 모여든 것이다.

[img|100_0018.jpg|413| |0|1]낙동강 하구는 황새,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노랑부리백로, 넓적부리도요 같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세계인이 감탄하는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다리와 도로는 언제 어디서나 세울 수 있지만 이곳의 독특한 자연경관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낙동강 하구는 세계인의 발길을 한국과 부산으로 향하게 할 우리의 소중한 자연자산이다. 그런데 환경부는 2003년 12월 31일 명지대교 사전환경성검토 승인을 통해 습지보호구역 최초의 대형 개발계획을 허가하였다. 그리고 2004년 2월 을숙도 습지 곳곳에는 높이 30미터, 폭 6차선의 대형교각인 명지대교 건설사업을 알리는 붉은 깃발이 곳곳에서 나부끼고 있다. 명지대교는 세계적 희귀종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구조물인 것이 분명하다. 건설후의 불 보듯 뻔한 상황은 두고서라도 건설과정에서의 습지의 파괴와 건설굉음은 세계적 철새도래지를 하루아침에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개발이 지상명제인 사람들의 눈에는 철새는 안중에도 없다. 행사를 진행하는 내내 우리들 앞에서 유영하는 흰고니떼를 보고 건설업자 측에서 했다는 “고니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내 눈에는 상류에서 떠밀려온 스치로폼밖엔 안 보이는데요”라는 웃지 못할 말에는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명제가 쉽게 풀리지 않는 오래된 숙제임을 다시 한번 우리의 머리 속에 심어주었다.

[img|100_0009.jpg|550| |0|1]그렇다. 그들 눈에는 흰 고니떼는 스치로폼으로, 검은 가마우지는 비닐봉지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부산시 곳곳에서 환히 불을 밝히고 있는 ‘Dynamic 부산’이라는 대형입간판의 눈에도 그것을 만든 정책자들의 눈에도 철새들의 ‘역동성’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어울리는 진정한 역동성이 대형구조물과 기계의 역동성(?)으로 지워가는 현장, 지금 을숙도 습지에서는 속도와 편리의 상징인 붉은 깃발이 한없이 희날리고 있다.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여러 마리의 솔개가 우리들 주변을 빙빙 돌았다. 어쩌면 그들은 힘겨운 날개짓을 통해 그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무언으로 알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명지대교는 부산과 을숙도의 문제로만 끝날 수 없는 것이다. 더 이상의 자연파괴는 솔개의 생존을 넘어, 수많은 철새들의 생존을 넘어, 우리들 인간을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으로 등록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글 : 황완규 (자연생태국 자원활동가)

[imgleft|swan.jpg|280| |0|1]명지대교가 불 밝혔다.
- 최갑진
명지대교가 불 밝혔다.
활주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고니가 교각에 걸렸다.
가랑이가 찢어진 채로 4200Km를 날아온 민물도요들은
자본의 이윤을 실어 나르는 컨테이너 바퀴에
날개의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드디어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렸다.
남극에는 난데없는 빙산이 솟아올랐다.
어미 펭귄은 길이 막혀 발을 동동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명지대교가 불을 밝혔다.
솔개가 안녕하고 슬픈 날개짓을 한다.


드디어 세모고랭이가 슾지에서 적멸하고
명지대교가 불을 밝힌 날이었다.
새들이 떠난 마을에는 인간의 그림자가 없다.
드디어 2008년 8월 어느날
명지대교가 불을 밝히는 날이었다.
더 이상 슬프게 울어줄 고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