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5일째] 미지의 숲, 난대림 속으로

 녹색순례/2007년       2007. 5. 4. 08:37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제주사람들에게 한라산은 제주도와 같은 말이다. 한라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고향이나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육지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백록담을 비롯한 어리목-윗세오름-성판악이나 영실을 포함한 지역 정도로 인식된다. 하지만 제주사람들에게 한라산은 중산간지대를 충분히 품어 안고 해안지대 가까이까지 이 모두 한라산으로 통한다. 실제 도로건설로 생태계가 단절되지 않았으면 산지의 흐름은 성산일출봉이나 제주시, 서귀포까지도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다. 배를 타고 제주로 들어오면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다. 섬 전체가 한라산으로 인식되는 하나의 장면이 연출된다. 이렇게 제주의 정신과 문화의 출발과 끝이 한라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imgcenter|pilgrim_03_01.jpg|580|▲ 제주도 녹색순례 5일째를 맞는 대원들이 남원읍 신원리 마을에 위치한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군락으로 들어서고 있다.|0|5]
녹색순례 5일째, 한라산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성판악이나 어리목을 통해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한라산, 해발 1,000m 위쪽의 고위 평원지역만이 한라산은 아니다. 녹색순례단이 입산한 한라산은 난대림의 절정인 물영아리오름, 붉은오름, 물찻오름을 지나서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졌다. 한라산에서도 생태적으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곳, 난대림으로 들어간 것이다. 육지에서 한라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록담 가까이만 한라산으로 여긴다. 그래서 어리목-웟세오름-성판악, 혹은 웟세오름-영실 등의 코스는 등산로 때문에 생긴 훼손을 비롯하여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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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읍 온평리 동백숲을 헤치며 순례의 하루 발걸음을 시작했다. 온평리 동백숲은 제주에서 대표적인 오래된 동백림이다. 이런 숲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키가 20m나 되고, 둘레가 어른이 껴안기에도 벅찬 큰 동백나무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동백나무가 한두 그루 있는 것이 아니라, 군락지로 있다는 사실에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온평리에서 수망리를 지나서 물영아리 쪽으로 올라갔다. 고도가 300m 가까이 되면서 서쪽으로 솟아오른 백록담과 여러 오름들이 육지의 산봉우리들처럼 겹쳐서 보였다.

[imgcenter|pilgrim_03_03.jpg|580|▲ 육지와는 기후가 다른 이유로 제주의 동백꽃은 5월 초순인 지금에도 강렬한 빛깔을 한껏 뽐내며 활짝 피어있다.|0|5]
물영아리는 환경부가 지정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금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고 계속해서 1118번 지방도로를 따라 붉은오름쪽으로 걸었다. 제주시 조천읍과 서귀포시 남원읍을 연결하는 1118번 지방도로는 제주의 난개발 실상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수망리에서 붉은 오름사이에 도로건설 2개소, 골프장건설 2개소 등 중산간지대를 난개발벨트로 만들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자동차를 뒤로 하고 순례단은 제대로 된 숲길로 접어들었다. 1118번 지방도로에서 물찻오름까지 이어진 숲길이다.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바람이 더덕내음을 물씬 품고와 코끝을 간지럽힌다. 야생의 동물이 다르듯이, 야생의 더덕도 기르는 더덕과 다름을 깨닫는 순간이다.

[imgcenter|pilgrim_03_04.jpg|580|▲ 난대림의 울창한 숲으로 들어서기 전 순례단이 지나는 길에 이름 그대로 신령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솟아있는 물영아리 오름. (참고. 영아리란 신령스럽다는 뜻의 제주 말)|0|5]
물찻오름으로 가는 길 초입에는 삼나무 조림지가 펼쳐져 있었다. 붉은오름 남사면 전체가 대규모 삼나무조림지다. 삼나무숲은 근대에 들어와서 형성된 대표적인 제주의 풍광이다. 삼나무조림지가 줄어들면서 이윽고 본격적인 난대림이 펼쳐진다. 한라산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육지의 온대림보다 더욱 풍부하게 하는 숲이 바로 난대림이다. 난대림 숲의 때깔은 온대림과는 뚜렷하게 다르다. 훨씬 다양한 빛깔을 지닌다. 4계절 내내 그런 빛깔이  나타난다. 난대림을 형성하는 주된 나무 중에는 늘푸른활엽수가 많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푸르름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봄, 여름, 가을에도 늘푸른활엽수와 잎갈이를 하는 활엽수 등이 어우러져 현란하다. 난대수종과 온대수종이 뒤섞여 있는 숲길을 따라 걸으며 봄 새싹을 틔우며 탈바꿈하는 나무의 빛깔 때문에 봄의 숲은 더욱 화려하다. 침엽수는 삼나무 이외에도 편백이 간혹 눈에 띄었다. 조림지역 이외에는 안정화되어 가는 자연림도 특히 인상 깊다. 숲길 안으로 깊숙이 들수록 난대림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그냥 보면 푸른 숲이지만 키 큰나무와 키 작은 나무를 잘 살펴보면 온대림지역에서는 없는 나무들이 눈에 띈다. 굴거리, 식나무, 꽝꽝나무 등을 비롯하여 후박나무, 가시나무 등도 보인다. 굴거리나무는 제주가 북방한계선이다. 그래서 굴거리나무 줄기를 이용한 제주도민만의 풍습이 있다. 제주도민들은 이 나무줄기를 이용하여 모자를 만들었다. 양반들이 제주도 말꼬리를 이용하여 망건이나 갓을 만들어 쓰고 다녔다면, 제주도민들은 굴거리나무를 이용하여 모자를 만들어 쓴 것이다.

[imgcenter|pilgrim_03_05.jpg|580|▲ 물찬오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삼나무숲이 울창하다.|0|5]
늘푸른활엽수 사이사이로 고로쇠, 당단풍도 보였다. 한라산의 단풍은 곱지가 않다. 그 까닭은 버렁바람 탓이다. 바다의 소금기를 담은 버렁바람이 중산간까지 불어와서 가을 단풍잎에 닿으면 성장에 지장을 받고, 소금기가 머금은 빗물을 맞으면 단풍잎은 꺼멓게 변해버린다.

[imgcenter|pilgrim_03_06.jpg|580|▲ 숲으로 난 길을 기준으로 좌측으로는 삼나무 조림지, 우측으로는 난대림 자생지가 분포되어있다.|0|5]
숲속에서 노랗게 꽃을 피운 새우란, 마치 누가 옮겨다 심은 것처럼 도드라진 빛깔로 드문드문 피었다. 물찻오름에서 사려니오름까지 길게 남북으로 펼쳐진 난대림은 국립산림과학원 난대림연구소의 채종원을 비롯해 한남시험림, 육종장 등이 있다. 국내 난대림 연구의 보고이자, 대표적인 난대림의 시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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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center|pilgrim_03_07_1.jpg|580|▲ 울창한 삼나무 숲|0|5]
숲길의 중간에는 서어나무 군락도 인상 깊게 펼쳐져 있다. 숲길에는 딱따구리의 정갈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나무 구멍 뚫는 소리에 이 숲의 깊이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다. “따닥따닥” 거리는 소리 이외에도 온갖 새소리가 들려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순례단 바로 50m 앞에서 노루가 한 마리 경쾌한 몸놀림으로 숲길을 가로질러 짙은 숲속으로 사라진다. 노루의 달음질하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면, 뛰어간다기보다 거의 점프를 한다는 표현이 훨씬 적당하다. 47m 정도를 튀어서 숲을 헤쳐 간다. 역시 한라산의 주인은 노루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숲의 울창함과 다양함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은 적은 편이라 노루가 맘껏 뛰어 다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의 인기척에 위협을 느꼈는지, 숲길을 걷다보면 자주 컹컹 개 짖는 소리와 비슷한 노루의 소리를 듣는다. 아무래도 주위 동료들에게 이상한 동물들이 무리지어 출현했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소리일 것이다.

[imgcenter|pilgrim_03_08.jpg|580|▲ 안정화된 숲의 모습을 가추어가는 단계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서어나무 군락지.|0|5]
한라산 남동쪽 난대림은 숲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감동을 전해준다. 국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완만한 지형에 펼쳐진 울창한 숲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한없이 잡아당긴다. 난대림의 절정을 경험하는 길이다.  

[imgcenter|pilgrim_03_09.jpg|580|▲ 나무의 둘레를 재기 위하여 성인 남성의 가슴높이에 표시를 해두었다.|0|5]

[imgcenter|pilgrim_03_10.jpg|580|▲ 제주의 난대림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새우난.|0|5]

[imgcenter|pilgrim_03_11.jpg|389|▲ 제주 산딸기 꽃이 순례단의 발길을 잡는다.|0|5]




난대림의 의미와 기후변화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훼손된 숲, 난대림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나타나는 난대림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을 높여 주는 중요한 숲이다. 독특한 해양문화에 어우러져 숲과 문화의 만남에서 펼쳐진 다양한 역사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전문가들은 난대림의 가치와 의미에 크게 주목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대림은 국제적으로도 중요성이 부각되는 숲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한반도의 난대림 지역이 확대되면서  국내적으로도 그 의미가 크게 부각되는 숲이다.  

[imgcenter|pilgrim_03_13.jpg|580|▲ 국립산림과학원 난대림연구소 측으로부터 난대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0|5]
한반도의 자연생태계는 온대림을 대표적인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주요 생태보고와 국립공원이 온대림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난대림이라는 또 다른 생태계를 구성하는 숲이 있었다. 이 숲은 백두대간과 함께 우리의 자연을  더욱 풍부하게 해 주는 숲이었다.

난대림은 염기(바다습기)에도 강하고 대기오염 등의 환경오염에 대한 내성이 강하여 경관보전과 환경대책 차원의 숲 조성에도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세기 동안 약 0.5℃ 증가하였고, 최근의 1월 평균 최저기온은 10년에 1.5℃씩 증가했다고 보고되고 있다.

[imgcenter|pilgrim_03_12.jpg|580|▲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잣성. 방목지의 경계를 표시하는 곳으로 잣성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과거엔 초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0|5]
기후변화의 증거는 식생의 변화에서 쉽게 드러난다. 난대림이 한반도 남단으로부터 북단으로 확산되는 것과 함께 한라산의 식물상 변화에서도 지구온난화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한라산 1600~1700m 고지 위에 800만 평 규모로 펼쳐진 평야에는 한라솜다리, 돌매화 등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한라솜다리는 약 열대여섯 개체, 돌매화는 약 삼십여 개체만이 남아 있다. 그 개체수가 줄어든 원인은 옛날의 불법 채취와는  차원이 다른 지구온난화이다. 1600~1700m 고도의 기온이 지구온난화로 올라감에 따라 이들 자생종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다. 이는 억새가 1600m 고도에서도 발견되는 원인, 적송이 정상부근에서 발견되는 이유와 같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구온난화가 지구 생태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 제주도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우리 한반도는 난대림의 영역이 점차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난대림에 대한 조사, 연구는 한반도의 산림관리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도는 한국의 난대림 연구에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  난대림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