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습지 ⑥

호수와 바다의 환상적 결합, 동해안 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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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년 역사가 불과 10년 전, 세간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담수도 아니고, 해수도 아닌 이상야릇한 생태계가 동해안에 즐비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바로 동해안 석호에 관한 이야기다. 지형․지질 전문가 사이에서는 석호의 존재나 세계적 보전가치가 오래전부터 확인된 사실이었다. 1996년 강릉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동해안 석호 보전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정부에 앞서 시민사회단체가 한발 앞서 훼손된 석호의 복원을 주장한 것이다. 당시 동해안 석호는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 관리의 사각지대였고, 습지의 범위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비로소 석호의 신비가 한 꺼풀 벗겨졌다.


8천년 해안사(史) 복원의 열쇠

석호(Lagoon)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모래톱을 형성해 만들어진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자연호수다. 석호의 육상부는 담수 하천이 유입되고, 반대로 모래톱을 범람해 해수가 유입되기도 한다. 이른바 담수생태계와 해양생태계가 교묘히 공존하며, 저서생태계와 수초의 발달로 어류와 철새의 유토피아 같은 공간이다. 람사르 협약의 중요한 범주로 분류되는 석호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국제적인 관심거리며 보전가치가 충분하다. 동해안 석호의 생성연대는 8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호를 시작으로 강릉시 풍호까지 동해안에는 현재 18개의 석호가 남았다.
환경부는 2007년부터 화진포호, 송지호, 광포호, 영랑호, 매호, 향호, 경포호 등 7개의 석호를 중심으로 가치 발굴을 했다. 그나마도 기본적인 생태조사만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석호 생성의 지형적 조건을 밝힐 연대조사, 퇴적상 조사도 전무하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보전방안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석호에 대한 국가관리가 공백상태를 띄는 동안, 동해안 석호 중 가장 아래에 위치한 ‘풍호’는 매립되었다. 세계적 자연유산인 풍호가 1980년부터 한국남동발전소 폐탄처리장으로 활용되면서 무연탄재 360만톤이 매립되었기 때문이다. 드넓은 갈대밭 군락과 자투리 습지만이 옛 풍호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강릉시는 이곳에 다시 골프장 조성계획을 추진하면서 그마나 남아있던 흔적도 사라질 위기다.


경포호의 명성도 옛 이야기

[imgright|20081104_003.jpg|320| |0|0]동해안 대표적 석호인 강릉 경포호의 경우는 어떨까? 경포호는 강릉 안현동, 조동, 초당동에 걸쳐 형성된 자연석호로, 강문교를 사이에 두고 담수와 해수가 교차한다.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경포호. 예전 강릉 사람들은 경포호에서 생산된 어패류로 보릿고개를 넘겼다고 한다. 경관 또한 뛰어나 해안과 유입하천 곳곳에 열두 채의 정자를 거느리고 있다. 강릉 시민들의 애정과 지지 속에 강릉 관광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경포호의 명성도 옛 이야기다. 과거 12킬로미터였던 경포호의 둘레는 이제 4킬로미터만 남았다. 각종 폐수로 인해 거울처럼 맑지도 않고, 철새도 드물어 예전과 같은 풍류와 풍족함은 찾기 힘든 실정이다. 경포호 생태계 훼손은 국도 7호선이 담수와 해수의 경계인 모래톱 위로 건설된 이유도 있지만, 유입하천 관리 실패가 결정적인 원인이다.
2006년 환경부는 ‘물환경관리 10개년 계획’에 동해안 석호를 포함시켰다. 환경부의 석호보전대책 수립계획에 따르면, 경포호 생태복원 사업은 송암천과 경포호 합수 지점에 2010년까지 7,618백만원의 예산을 들여 수질정화를 위한 인공습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즉 경포호 유입하천인 송암천 하류지역의 생태복원은 추진하지만 중․상류 수질관리 대책은 전무한 것이다. 상류지역에는 오염 발생이 예상되는 건설폐기물 처리장을 허가하고, 하류지역에는 예산을 들여 유입하천의 오염원을 잡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이다. 지금까지 환경부와 지자체가 자연형 하천정화사업 등을 이유로 석호에 투자한 예산은 총 300억원 이상이다. 그러나 수질개선 효과는 뚜렷하지 않고 오히려 석호의 특성을 무시한 복원사업으로 인해 석호생태계만 더욱 교란된 상태다.


하류는 습지복원, 상류는 폐기물처리장

[imgleft|20081104_002.jpg|320| |0|0]강릉시 대전동 송암리 즈므마을에 위치한 송암천은 경포호로 유입되는 3개의 주요 하천 중 수질과 생태계가 가장 양호한 하천이다. 하천 1급수 지표종인 가재와 참게, 멸종위기야생동물 I급인 수달이 서식하는 건강한 하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경포호로 유입되는 나머지 2개의 하천이 택지개발 등으로 심각히 훼손된 상황에서 송암천 유역관리는 경포호 수질관리의 핵심이다. 동해안 석호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유입하천의 관리가 필수적인 상황인 것이다.
강릉시는 송암천 상류에 건축폐기물 중간처리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2002년 건축폐기물 사업계획서가 제출된 이후, 즈므마을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강릉시는 2004년 건축페기물 사업 부결통보를 내렸다. “소음, 비산먼지로 인해 농작물 피해와 지역주민 생활 불편이 우려되며, 우기 시 사업장에서 발생한 침출수 등으로 하천오염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2007년 강릉시는 다시 사업변경계획을 받아들여 사업 적합통보를 내렸다. 강릉시에만 3곳의 건축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섰지만, 모두 가동률이 저조해 현재 존폐 여부가 논란 중이다. 청정마을인 즈므마을 주민들은 “깨끗한 자연을 가진 것이 죄다! 깨끗한 맘을 가진 것이 죄다!”며 송암천 건축폐기물처리장 건설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역사에서 사라진 석호들

그나마 경포호의 경우는 양호하다. 화진포호, 송지호, 경포호 등 관광효과가 높은 지역은 주변 경관시설 정비와 확장에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이라도 배정되기 때문이다. 풍호, 염개호, 순개호, 순포개호, 봉포습지, 봉포호, 광포호, 천진호, 청초호 등 나머지 석호들은 과거 8,000년의 역사를 채 밝히기도 전에 방치, 매립되었다. 동해안을 남북으로 가르는 국도 7호선은 석호 파괴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국도 7호선이 바다와 석호의 중간 모래톱을 가로질러 건설되면서 해수유입을 단절시켰고, 그 결과 석호의 수질이 악화되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석호의 원형을 상실했던 것이다.
녹색연합에서 2007년 강원도 18개 석호지역을 조사한 결과는 참담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풍호는 올해부터 골프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쌍호는 유입수가 줄어들어 호수에서 늪으로 변형되었다. 경포호는 1930년대에 비해 호소면적이 50% 이상 감소했다. 염개호와 순개호는 군 폐기물과 어망 등이 석호 곳곳에 방치돼 있고, 순포개호는 쓰레기 처리장과 별 다름없는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가평리습지는 매립된 지 오래다. 쌍호는 박물관 호수로, 봉포호는 대학교 호수로 사용되었다. 광포호, 천진호, 청초호 등은 최악의 부영양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선유담은 조사도 되기 전에 내륙화현상으로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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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의 풍류를 즐길 수 있을까?

현재 동해안 석호는 공식적으로 18곳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8곳 외에도 원형이 심각히 훼손돼 존재를 확인하기 힘든 석호가 더 많을 것이란 의견이다. 후대에 석호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인위적으로 훼손돼 사라진 것이다. 동해안 석호는 지각변동과 모래톱에 의해 매우 독특한 담수, 해수 생태계를 동시에 간직한 ‘기수호’다. 약 4,000년 전에 형성된 생물상이 동해안 석호에서 독특하게 적응한 것이다.
환경부가 올해부터 10년 간, 동해안 석호 보전을 위한 로드맵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늦게나마 석호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보전의지를 보인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나마도 면적이 큰 호수나 관광자원으로 활용 가능한 7곳에 국한되었다. 나머지 공식적인 11곳 석호는 환경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버려졌다. 과거 경포호에는 ‘달이 다섯 개 뜬다’는 풍류가 있었다. 하늘에 뜬 달이 하나, 호수에 하나, 그리고 바다와 술잔, 연인의 눈에도 똑같은 달이 하나 뜬다는 것이다. 호수와 바다의 환상적 결합. 언제쯤 원형 그대로 간직한 석호에 한 자락 배를 띄워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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