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녹색강좌 - 쉽게 풀어보는 생명공학 이야기

 회원이야기/회원참여       2005. 7. 26. 16:14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글 : 길미연 회원님


황우석 세 글자는 위인전기에 들어가야 마땅할 이름처럼 들린다. 외가의 성이 '황'인 까닭에 외갓집 식구들과 모이면 괜히 한 번씩 어깨를 우쭐거린다. 이렇다할 친척 관계도 없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황우석'이란 말을 들으면 마음 뿌듯해지고 그 사람을 동경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사는 교양인이라면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대해 알아두어야 하겠기에, 또 아직 연구하고 밝혀내야할 사실이 무궁무진한 유전공학에 대한 호기심도 조금 있었기에, 당연히 이 번 나눔 교실에 참가하였다.

[img|dscn050726_03.JPG|550| |0|1]

하지만 강의 시간 내내 나는 헛다리만 짚고 있었다. 계속 머리 속에서는 '엉?'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물론 줄기세포에 대한 여러 가지 과학적 지식도 잘 몰랐기에 나름대로 그것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놓고 나면 '어 그게 아니잖아. 그럼 뭐지?'하는 질문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강의 내내 뭔가 석연치 않고 마음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던 사실은 강사님이 시종일관 '배아줄기세포의 환상에서 깨어나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삶을 기적처럼 변화시킬, 연구가 활발함에도 밝혀내야할 것이 아직도 태산 같은, 기대주 유전공학. 그 중에서도 사람의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시키며 무한한 생명을 선사할지도 모르는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 그러한 연구에 대해 강사님은 시종일관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이었던 것이다.


강의의 요지는 이렇다.

첫째, 배아줄기 세포 연구로 인한 수많은 생명에 대한 무시현상.

정자나 난자는 생명이 아니며, 수정란도 아직 어느 곳이 몸의 어느 부분이 될지 모르는 것-배아 : 아직 인간의 형태가 갖춰지지 않은 세포 덩어리-은 인간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들을 거리낌 없이 마루타 다루듯 하는 태도는 분명 잘못되었다. 어디서부터 생명인지 정의할 권리는 인간의 몫이 아니며, 필요에 따라 생명의 범위가 바뀔 수 있다면 태아도 인간이 아닐 수 있으며 결국은 ‘이 세상 모두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생명체의 단계’도 생명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둘째,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무시한 채 현란한 마술 같은 현상에만 열광하는 우리의 태도
쓰레기를 줍는 것보다는 버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단 사실은 1학년 아이도 아는 사실인데 우리는 지금 쓰레기를 멋지고 기기묘묘하게 줍는 방법에만 열광하며 정말 필요한 일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배아줄기세포가 마치 예수님이라도 되어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벌떡 일어나게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을 개선하고 -최대한 자연과 건강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삶의 양식을 바꾸어 각종 스트레스나 오염물질에서 벗어나 병의 원인을 예방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또 장애인들이 좀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시설과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언제 성과가 나타날지 모르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그것이 마술처럼 ‘짠’하고 노화와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질환을 해결해주리라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imgleft|dscn050726_02.jpg|250| |0|1]사실 강의를 들으면서 ‘아직 배아는 생각과 감정이 없을 테니 연구에 이용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왜 강사님은 아직 인간으로 완성되지 않은 생명현상에까지 관심을 갖고 그것을 지키려 하실까? 난 왜 배아 연구에 대해 강사님처럼 분노하지 않을까? 아마 수많은 낙태가 공공연하게, 정당하게까지 이루지는 세상에서 자라 그렇지 싶었다. 인간을 위해서라면 무수한 동물들을 희생시켜도 괜찮다고 배워서 그러지 싶었다. 인간의 생명은 항상 다른 어떤 생명보다 높이 있다고 모두들 생각하니까 그러지 싶었다.

반면 나는 언제나 생명이란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어서 작은 새 한 마리도 존중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다. 만약 생명의 저울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있어, 작은 새의 목숨 가치와 똑같은 것을 올려놓으라 한다면 고릴라 한 마리를 주저 없이 올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생각은 거기까지다. 만약 인간을 올려놓아야 한다면 마음이 상당히 불편해지고, 특히 나 자신을 절대로 올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무게는 이 세상 모든 생명의 무게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결국 미분화된 수정란쯤은 생명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에게 별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쩌면 이익이 될지도 모른다면 배아세포 연구는 훌륭한 연구인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놓치고 지나가는 부분을 본다. 나의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면 다른 모든 것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나를 위해 다른 것을 해할 수 있다면 다른 것들도 각자 자신을 위해 타인을 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는 생명을 안전하게 보장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정자나 난자 같은 생명 현상도 신비롭고 숭고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강의를 듣고 나니 좀 귀찮아 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익숙하고 편한 생활 방법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내 몸을 간질이며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더라도 함부로 죽일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대로 이 자리에 머물고픈 내 마음을 보며, 매번 옷을 바꾸어 입기는 하나 작아지지 않는 이기심의 덩어리를 본다.

[img|dscn050726_01.JPG|550|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