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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이 며칠 안 남은 밤. 오늘 밤 달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누군가의 말처럼 옛날 미인의 눈썹 같기도 하고, 깎아서 떨어진 손톱 부스러기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는 달밤에 펼쳐지는 그림자극을 생각하고 있다. 녹색연합 창립 14주년 후원의 밤에 상영하기위해 활동가들이 직접 제작한 일종의 만화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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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가을밤의 분위기를 연출하기위해 파란색 셀로판지를 빔프로젝터(빔프로젝터 불빛을 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조명으로 사용하였음) 렌즈에 붙이고 부엉이를 나무 위에 앉혔다. 윗부분 여백이 약간 허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활동가가 얼른 달 하나를 오려왔다. 오늘 하늘에 뜬 달과 같은 모양의 초생달이었다.

후원의 밤을 계속 열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 매년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행사는 시민단체에게 가장 큰 연중행사임에 틀림없다. 올해는 녹색연합 창립 14주년. 지난해에는 ‘백두대간’을 주제어로 하여 행사를 열었고, 이번에는 ‘야생’을 주제어를 정했다. 이번 행사 기획은 야생이라는 주제에 맞는 모토를 어떻게 만들어낼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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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차례의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쳐 야생과 올바른 관계 맺기라는 의미를 담은 “야생(野生)에 길들다”라는 모토를 정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자연에게 하는 일이란 야생을 길들이는 일이지만, 적어도 녹색사람이라면 스스로 야생에 깃들고 야생에 길들기를 원하고 거기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후원의 밤을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하나 하나 일을 풀어갔다. 당초 전문 그림자극단을 초청하려던 계획은 예산상의 이유로 포기하였고, 결국 활동가들의 철야작업에 의해 영상 그림자극으로 만들어졌다. 사랑방이라 불리는 녹색연합 사무실 주방 한가운데에 하얀 천을 달고 뒤쪽에서는 노트북에 빈 페이지의 화면을 만들어 빔프로젝터와 연결하여 쏜다. 그쪽에서 미리 준비한 종이 모형들을 움직이면 스크린 반대편에 그림자가 생기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사계절을 표현하기위해 눈 스프레이를 뿌리고(겨울), 새싹을 틔우고(봄), 낙엽을 뿌리고(가을 먼저), 맨 마지막엔 조리개에 물을 담아 스크린으로 물을 뿌렸다(여름). 물바다가 된 주방을 걸레로 깨끗이 닦는 것으로 그림자극의 촬영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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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막막하던 일들이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댈 때마다 하나씩 해결되었다. 전시공간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첫 번째는 인간중심의 발상으로 인해 야생에 끔직한 고통을 강요하는 ‘충격’의 공간이었고, 두 번째 공간은 야생에 길들여짐으로서 환경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 하는 녹색활동가들의 활동소품들과 활동결과물로 꾸며졌다(‘관계맺음’). 마지막 공간은 야생의 아름답고 생생한 모습과 환경에 잘 어우러진 인간의 활동모습들이 사진으로 전시되었다(‘치유’). 전시장 준비는 바닥에 동선 표시를 위해 삵 발자국 모양의 스티커를 붙이는 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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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left|dscn051109_008.jpg|150||25|1]6시가 넘자 한 분 두 분 발걸음이 이어졌다.
충격의 공간에서 만난 고무호스로 쓸개즙을 뽑아내는 철창 속 사육곰 인형은 그야말로 충격이었고, 관계맺음의 공간에서 만난 활동가의 야외활동 장비들은 현장을 찾은 녹색활동가들의 생활모습을 단편이지만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치유의 공간에서 만난 야생동식물들의 모습은 때로는 엉뚱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때로는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는 이들의 눈을 기쁘게 해주었다.

행사는 박경호 선생님의 사회로 예정된 순서에 따라 하나 둘 진행되었고, 박영신 대표님과 격려사를 해주신 백낙청 사장님, 수경스님의 말씀에는 환경운동의 중요성과 비젼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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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는 만능 엔터테이너나 멀티 플레이어여야 할 때가 많다는 걸 느낀다. 누군가 “애당초 끝은 없었다”라고 했던가? 불가능이라는 벽은 애당초 없다. 열네 살 먹은 녹색연합의 후원의 밤에 모인 따뜻한 격려덕분에 우리들은 힘겹지만 보람되게, 외롭지만 꿋꿋하게 좁은 문을 즐겨 드나들 수 있는 것 같다. 많은 분들의 후원에 감사드리며, 더 열심히 활동함으로 아낌없는 후원에 보답할 것을 녹색의 활동가 모두 약속드린다.


글 : 자연생태국 야생동물 담당 이신애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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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국 2005.11.10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글만으로도 참 고생 많으셨겠다는 느낌이 옵니다. 다른 환경단체들 후원행사 하는거 보면 너무 고급스럽고 사회 유명인사 아니면 얼굴 내밀기 어려운 분위기거든요. 근데 녹색연합은 활동가들이 직접 준비하고 소박하고 진실하게 회원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네요. 수고 많이 하셨고 다음 기회에 꼭 참석할께요.

  2. 은경 2005.11.14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녹색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럽습니다.
    녹색에서 일하고 있는 님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요...
    마음만 챙기지 마시고 몸도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