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받아준 바보 - 녹색연합 에코-다이빙 교실을 마치고

 활동이야기/습지·해양       2005. 11. 22. 16:47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바다는 “바라다”의 준말이다. 무엇인가 간곡하게 기도하는 곳이다.

바다는 온몬을 다해 기도하면 “바로”다 들어주신다.

바다는 자 “받아”하면서 그 큰 손을 턱 내어 주신다.

- 유용주 <쏘주한 잔 합시다> 中




깊은 바다 속에서 해초를 지나 물고기 친구들과 함께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
내가 초등학교 미술시간 상상화그리기에 어김없이 그리던 그림이다.  
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아스팔트에 뒹굴다 성북구청 쓰레기봉투에 담겨지는 날에
20대의 젊은 힘을 주체하지 못해 매일 밤 팔굽혀 펴기 하면서 잠드는 외로운 가을밤이 계속되는 날에.. 고소공포증때문에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할 수도 없고, 똥배가 나와서 신도림 역안에서 스트립쇼도 할 수도 없는 순간이 이어지는 날.
나의 어릴적 간절한 바램이 통했던 걸까? 바다는 “받아”하면서 상상화로만 그리던 것을 직접 자신의 품속에 안 길 수 있는 기회를 턱 내어주셨다.

[img|dscn051122_014.jpg|550|▲ 무거운 장비가 아니라 아가미와 지느러미를 갖고 싶다.|0|1]
이틀 동안의 이론 교육을 마치고 난생 처음으로 간 실내 수영장. 민망한 삼각수영복과 수영복 차림의 여자들. 시선처리가 곤란하고 약간은 낯설기도 했으나, 촌놈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 애써 태연한 척하며 수영장 교육을 받는다. 아가미와 지느러미가 없는 우리들은 물 속에 빠져죽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산소통과 조절장치. 물안경. 물에 가라앉게 해주는 납덩이, 물에 뜨게 해주는 부력조절기,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옷, 지느러미 대신 오리발. 모든 장비를 몸에 걸치고 힘들게 뒤뚱거리며 물 속으로 뛰어든다. 한 결 가볍지만 아직 익숙치 않아 몸에 맞지 않은 신라장군 갑옷을 입은 느낌이다. 3일동안의 수영장 적응훈련을 통해 처음엔 불편하던 물속과 장비들이 익숙해졌다. 이제 바다로 가야 한다. 근데 날 쉽게 받아줄라나?


바다의 품에 안기기 위한 중요한 두 가지 방법

바다와 평형 만들기 - Equalizing(압력평형)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바다와 평형을 이루는 것이다.
공기보다 물이 더 무거우니 바다 속으로 깊이 내려가기 위해서는 지어야 할 무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이런 걸 유식한 말로 보일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공기의 무게에 길들여져 있으므로, 바다 속으로 내려가면 물의 무게에 의해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코를 막고 숨을 코로 내뱉으면 귀가 열리면서 우리 몸과 바다가 평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를 압력평형(Equalizing)이라고 한다.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여 평형을 이루지 못하면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바다가 눌러대는 엄청난 무게로 인한 고통으로 결코 바다로 들어갈 수 없다. 자기이기를 고집하고 자연에 드는 이들은 결국 자연을 파괴하게 되므로, 자연은 그러한 이들에게 경고한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떨어져 있을 때의 추위와 붙으면 가시에 찔리는 아픔 사이를

반복하다가 결국 우리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 쇼펜하우어 -


적당한 거리 만들기 - 중성부력

또 하나 에코-다이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다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것이다. 부력조절기와 호흡을 통해서 중성부력을 만들어 바닥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유영을 해야 한다. 많은 다이버들의 무리한 다이빙과  먹거리 채취 다이빙으로 인해 수천년 된 산호를 훼손하거나 바닥의 퇴적물을 일으키는 등 해양생태계를 파괴되고 있다. 자연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이는 자연에 들 자격이 없다.  어차피 자연에 의지하지 않고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류라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더 쉽게 더 빨리 자연에 접근하려는 우리들의 욕심이 결국 자연을 파괴하게 되고 결국은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게 된다. 물론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이들이 가장 큰 문제지만, 자연을 사랑하려고 하는 나의 마음이 파괴적 사랑이 되고 있진 않은지 되물어 본다.

육지에는 경계가 있지만 바다에는 경계가 없었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남극해, 북극해, 그 어디에 경계선이 있는가.

이름 붙이기 좋아하고 가르기 좋아하는 인간이 만든 허구일 뿐이었다.”

- 조병준 <나를 미치게 하는 바다> 中


모든 교육을 마치고 아직은 바다를 받아들일 마음가짐도 부족하지만 바다에 안기기 전의 설레임과 받아들여지지 못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동해안 속초 청간정으로 향한다.

첫 번째 다이빙. 약 5m의 수심에 들어가 바다와 친해지기를 시도하다. 바닷물이 생각보다 차고 파도도 심해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역시나 나를 쉽게 받아주지는 않는구나. 두 번째 다이빙. 보트를 타고 수심 15m 지역으로 접근. 입수. 파도가 심하게 요동친다. 정신이 없다. 뱃멀미와 파도 때문에 속이 약간 매스껍다. 조절기에 공기를 빼고 숨을 내뱉으면서 서서히 바다로 잠긴다. 귀가 아프다. 코를 잡고 “흥”. 바다와 평형을 만들면서 서서히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몸은 파도에 떠밀려 이리저리 흔들린다. 마스크로 들어오는 물에 신경이 쓰이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드디어 바닥에 도착했다. 수심 16m 이퀄라이징을 계속해서 귀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바다가 날 받아주려나 부다. 그러나 중성부력이 익숙치 않아 바닥을 헤집고 다닌다. 아직은 바다에 안길 자격이 충분치는 않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니 산소통에 산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올라가야 한다. 아직도 파도는 거세다. 이리저리 출렁인다. 속이 더 매스껍다. 모두들 물 위로 올라왔다. 몹시 추워하기도 하고 코에서 살짝 피가 흐르는 이도 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이빙, 점심을 먹은 후 바다도 조금 잠잠해 지기 시작했다. 처음의 두려움보다는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보다는 몸이 조금 자유롭다. 이대로라면 태평양을 거쳐 대서양으로 저 먼 마닐라 보라카이해변과 파나마 운하를 지나 카리브해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자만을 부려본다. 곳곳에 바다가 품고 있는 생명들이 보인다. 해삼, 전복, 멍게, 양미리 무리들 다양한 조개와 해초들.. 이 바다 속도 육지와 똑같지 않은가? 육지는 공기로 이루어졌고, 바다는 물로 채워졌을 뿐. 그 속에 산이 있고 땅이 있고 수많은 생명들이 있다. 아직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 아직 인간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순간 내가 왠지 오염물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사히 마지막 다이빙까지 마치고 바다에서 나왔다. 육상으로 나오자 한결 가볍고 편안하였지만 그 불편한 바다 속이 그리운 것은 왜일까?
[imgcenter|dscn051122_015.jpg|550|▲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바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0|1]

해불양수(海不讓水) - 바다는 물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쯤은 힘들고 외롭고 지칠 때 소주 한병 옆에 끼고 바다를 찾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독하게 사랑한 연인에게 버림받아 외로운 이. 백한번째 보는 입사면접에서 떨어진 청년백수. 보증서준 친한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직장에서마저 쫒겨난 아버지.
이들에게 바다는 어머니의 약손이고 자궁이다.
왜 사람들은 바다를 찾는가?
바다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바다에서 태초의 생물이 발생되었고 그 생물이 동물을 거쳐 인간이 된 영향일까. 아니면 태초의 어머니의 자궁 속 양수에서 지내던 물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힘들고 지칠 때면 바다를 찾게 되고 바다는 이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다 받아들여준다.
바다는 더럽든 깨끗하든, 뜨겁든 차갑든, 물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 있기에 그렇게 크고 넓을 수 있는 것이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비싼거와 싼거, 맛있는 거와 맛없는 거, 좋은 일과 싫은 일. 똑똑한 척하면서 너무도 많은 저울질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은 진짜 바보다.  바보같은 나를 받아준 바다에 감사한다. 다리와 턱이 가려운 것이 아마도 곧 지느러미와 아가미가 생길려나부다.
[imgcenter|dscn051122_016.jpg|550|▲ 바다가 받아준 바보들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며..|0|1]

-----------------------------------------------------------------------------------------------


녹색연합 에코-다이빙 교실은 해양생물및 환경을 대상으로 수중환경을 이해를 바탕으로 해양생태계 보전활동을 하기 위한 교실입니다. 단순한 바다 속 체험 위주의 레저활동을 넘어 해양생물과 수중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에코다이빙 프로그램을 준비합니다. 이번 에코다이빙을 시작으로 이후 지속적인 교육과정과 현장활동을 통해 바다와 환경을 생각하는 다이버들을 모임을 구성하고자 합니다. 바다와 해양생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지키는데 노력하는 모임을 만들 예정입니다.


글 : 최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