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관광을 논하다

 활동이야기/숲길       2009. 10. 21. 17:19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움직인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는 의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반증하는 것일 테지요.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필연적으로, 우리는 타자로 지칭되는 모든 것에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처음에는 오로지 살기 위해 움직이던 우리가, 이제는 삶을 즐기고 소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행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것인데요. 그중에서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한 자리에서 꿋꿋하게 삶을 살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독립적인 존재들, 나무들의 군락지, 숲을 여행하는 생태관광이 인기입니다. 이러한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지난 9월 19일~20일 양일간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가 후원하는 <생태관광 모니터링 투어> ‘걷고 싶은 길, 생명의 숲’이 시행되었는데요. 과연 생태관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직접 따라가 보았습니다.

지금 (자연과) 만나러 갑니다!
[imgleft|091021_05.jpg|476|▲ 관광객들이 무리지어 야생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0|0]여행은 19일 이른 아침, 여행사에서 나온 가이드의 인솔에 의해 전용버스를 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총 27명에 달하는 비교적 많은 수의 여행의 참가자들은 부부, 아이를 동반한 가족, 대학교 관광학부의 학생들에서부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와 같은 후원사의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성을 이루었으나, 다수는 후자에 해당됐습니다. 여행의 첫 하루는 전문 가이드의 인솔 하에 태백 일대의 야생화 생태 트래킹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고즈넉한 숲길을 걸어 나가는 동안 9년 넘게 해당 지역을 관리하고 연구해온 전문 가이드 김부래 씨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눈에는 익지만 이름은 모르던 우리 들꽃들을 하나씩 알아나가는 재미가 꽤 쏠쏠했습니다. 다음날에도 일정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시작되어, 평창에 위치한 민물고기 생태관 관람과 칠족령 트래킹, 청령포를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서울로 돌아오기 전, 서강을 끼고 우뚝 솟은 선돌을 감상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imgright|091021_06.jpg|214|▲ 칠족령에서 바라 본 동강의 절경|0|0]생태관광으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제생태관광협회(TIES)에 따르면 자연 지역에서 이루어지며, 그 지역의 환경을 보존하고 지역 주민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책임 있는 관광을 생태관광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학술적, 교육적, 문화적 내용을 현장에서 체험하는 관광이 되어야 함은 물론, 무엇보다도 생태 관광은 그 지역의 환경을 보전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자연의 재생과 회복기능을 중시하는 소극적인 개발만이 허용됩니다. 뿐만 아니라 관광 사업을 통한 수익이 지역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하여 그 지역의 생태계를 보전하는데 기여토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또한 이를 통해 관광객들이 자연을 마음으로 느끼며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생태 감수성을 기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이 될 수 있겠죠. 이러한 생태관광은 수려한 자연 경관을 감상하는데 그치는 종래의 자연관광과도 구별됩니다. 자연관광이 양적으로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자연을 소비하는 것이라면, 생태관광은 관광의 질적인 측면이 중시되어 관광객들이 자연 속에서 얼마나 많이 느끼고 체험하는가에 중점을 둔 다분히 생산적인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생태관광은 과연 ‘생태’관광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조금은 의심스런 마음이 듭니다. [imgleft|091021_07.jpg|295|▲ 청령포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나루터에 모여 있습니다|0|0]물론 첫날의 야생화 트래킹과 둘째날의 칠족령 숲길 걷기는 오랜 시간동안 해당 지역을 관리하고 연구해온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그들의 자연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 매우 훌륭한 생태관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양적으로 집중된 둘째날의 관광 일정은 그저 여행사의 빡빡한 스케줄에 맞춰 이곳저곳 끌려 다니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다소 무리하게 느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물고기 생태관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30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동안 건물을 한 번 돌아보는 것에 그쳤고, 청령포 역시  오히려 문화유적지 탐방에 더 적절한 일정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머물렀던 선돌은 별다른 설명 없이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는 관광객들의 모습만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이는 차라리 생태관광이 아닌 자연관광에 더 가까운 풍경이라 하겠습니다. 객실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생태관광이라 함은 모름지기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인데, 도심 한복판의 모텔에서 머문 하룻밤은 대관절 불빛에 꼬여드는 벌레들이 그나마 친환경적이었을 정도니 말입니다.

생태관광 운영 시스템상의 문제는
첫날 야생화 트래킹의 가이드였던 김부래 씨의 설명에 의하면, 강원도 태백 분주령 일대의 트래킹 코스는 현재 9명 정도의 관리직이 순환근무로 해당 지역을 관리·감독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정규직인 그들이 언제든지 교체가 가능한 상황에서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설령 누군가 식물의 무단 채취 등의 범법 행위를 저지른다손 치더라도, 법적으로 그러한 관리직들이 이들을 제재할 권한이 없는 것도 문제점이라 하겠습니다.
생태관광이 대중들의 관심의 영역으로 대두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과거에 비해 관광객들이 많이 늘긴 했으나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로 인한 큰 환경 피해가 특별히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을 내다봤을 때,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져 관광지로 개발이 된다면 그 이후에 발생할 환경피해는 자명해 보입니다. 일례로, 옆 나라 일본의 경우는 아무리 유명한 생태관광지로 개발이 된다고 하더라도, 산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표시만 해두어 개발로 인한 환경피해를 막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방부제가 범벅이 된 나무 울타리와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보기에는 그럴듯한 관광지 행세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 방부제가 모두 땅과 주변의 나무로 흡수되어 자연 파괴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기존에 관광지로 개발된 지역을 조금만 둘러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imgright|091021_08.jpg|249|▲ 선돌로 올라가는 길에 방부제로 범벅된 나무 울타리가 놓여있다|0|0]생태‘관광’은 가능한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위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녹색연합 김성만(자연생태국 활동가)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생태관광은 이 자체가 매우 모순적인 말입니다. 보통은 ‘생태’라는 단어를 ‘자연생태’의 준말로 쓰는데요. ‘자연생태’는 말 그대로 “자연의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여기다 ‘관광’이라는 경제시스템을 떡하니 갖다 붙여 뭔가 좋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관광’이라는 단어가 ‘생태’에 붙어있는 한 사람들은 ‘관광’만 생각할 뿐입니다. 관광지로 개발된 자연에는 야생동물들이 떠나고, 그저 ‘유행지난 관광지’로 버려지게 될 뿐이죠. 현재 환경부에서 주최하는 생태관광 시범사업은 여행사가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첫째 원칙이 이윤창출인 만큼 관광으로 인한 자연의 파괴는 제쳐두고 되도록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식물은 물론이고 현지의 주민 또한 피해를 입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김성만 씨의 우려는 그저 흘려들어도 될 지나친 걱정은 아닌 듯합니다. 이름난 국립공원을 보전하지는 못할망정, 케이블카를 설치해대는 현 상황을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오직 한 자리를 지키며,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스스로 삶을 이어나가는, 가장 독립된 개체로서의 나무. 그리고 그들이 한데 모인 숲, 우리 자연. 그러나 한시도 움직이지 않으면 먹을 것조차 구할 수 없는 가장 불완전하고 의존적인 개체로서의 인간. 이러한 인간이 단지 즐기고 소비하기 위해 자연을 맘대로 휘젓고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글 : 이진영 (녹색기자단)

'활동이야기 > 숲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을 느리게 걸어볼까?  (1) 2010.08.10
금강소나무 숲길이 열렸습니다  (0) 2010.07.21
자연의 미소길  (1) 2010.01.26
울진숲길을 걸으며  (2) 2009.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