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7일차] 바람은 청산도를 떠나 미황사로

 녹색순례/2011년       2011. 5. 5. 23:16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아침 창가 사이로 비친 햇살이 부서지듯 들어와 단잠을 깨웁니다. 그 나른함에 취해서 늦잠이라도 자고 싶은 날입니다. 청산도도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하고 맑은 날씨지만 오늘 떠날 생각에 아쉽기만 합니다.

더구나 오늘 아침은 특별히 마을 어르신들께서 손수 전복죽을 끓여주셨습니다. 그 따뜻한 죽에는 무사히 잘 여행을 마무리하라는 어르신의 훈훈한 미소가 담겨있는 듯해서 더욱 아쉬웠습니다.
 


느림의 종을 흔들어 대는 거칠고 빠른 바람. 그 사이에서 느림을 찾아가야 하는 이중성. 느리게 산다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요?  그 거친 바람 속에서 느림을 찾을 수 있을까요.



9:20분에 완도로 가는 배에 탄 우리들은 멀어져가는 청산도를 바라보며 저마다의 기억을 수정체 깊숙한 곳에 고이 간직하며 미황사와의 새로운 만남을 설레어하며 떠났습니다.


완도에 도착한 후 남창터미널로 가는 완행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고속버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할머니들이 두런두런 나누시는 담소를 들으며 남도정취에 흠뻑 취하다 보니 어느덧 해는 중천이었고 전복죽을 소화시킨 우리의 가련한 뱃속은 또 다른 것을 넣어달라며 아우성 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폐교로 변해버린. 한가로운 염소 두 마리가 완연한 봄을 뜯고 있던 학교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고 해설하시분과 함께 이진마을로 향했습니다.


이진마을은 옛날 제주도를 오가던 이진포구의 성지가 남아있는 마을로 충무공 이순신은 이곳에서 병을 치료했고, 남해안에서 가장 치열한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고 합니다.  

이진마을을 지나 미황사로 가는 숲길은 푸르른 녹음이 우거져 눈은 즐거웠으나 날씨가 무더운데다 경사도 심해 모두 비지땀을 흘리며 걸어야 했습니다.  

본부녹색연합 최고훈남 이현우 간사과 언어의 연금술사 최위환 간사님이 때마침 구세주처럼 나타나 얼음을 동동 띄운 미숫가루를 제공해 활동가들에게 찬사와 인기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역시 지원팀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미황사에 도착해서 간단히 예법을 배운 뒤 직접 재배한 신선한 채소를 곁들어 먹은 밥을 먹은 우리는 함께 저녁 예불을 드렸습니다. 각각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종교를 초월해 진실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같았기에 함께 외치는 반야심경은 하나의 하모니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예법이 끝난 후 미황사 주지스님께서 당당한 나를 찾고 조화로운 삶을 살라는 말씀을 해주셨고, 우리들은 숙소에 돌아가면서 저마다의 가슴에 새겼습니다. 손톱처럼 가느다란 초승달 아래에서 우리들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