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이 고엽제 살포에 동원됐다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는 초소와 바로 맞닿아 있는 민통선 마을이다. 

한국정부는 1959년부터 1973년까지 북한의 선전촌에 대응해 99개의 자립안정촌, 12개의 재건촌, 2개의 통일촌을 건설했는데 생창리는 그 중 한 곳이다.

197010월 제대군인 100가구가 이주해서 만든 민통선 마을인 이곳은 북한의 남침에 대비해 대인지뢰, 대전차지뢰가 매설된 계획적으로 매설된 지뢰지대가 있는 곳이다. 가난한 농민이었던 주민들은 정부가 논, 3,000평씩을 준다는 말에 입주를 결심했다. 하지만 실제로 받은 것은 논 900, 500평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높낮이가 제각각 이라 물을 대기가 어려워 농사가 제대로 지어질 리 없었다.

생창리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획지뢰지대


 농사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어 주민들은 고철을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했고 틈이 나는대로 조금이라도 농토를 넓혀보기 위해 농토를 개간했다. 그 과정에서 농토 곳곳에 뿌려진 고엽제로 피부발진, 천식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가 하면, 곳곳에 매설된 지뢰에 의해 발목이 잘리거나 사망한 주민들도 있다.

또 1970년대는 수시로 간첩이 드나드는 시절이라 오해를 받지 않기 위서 빨간 모자를 써서 주민임을 알려야 했고, 저녁에는 방첩대(현 기무사)의 감시와 통제 아래 등화관제를 하면서 살아다. 심지어 친척들이 찾아와도 허락 없이는 방문을 못하고 돌아가야만 하는 등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주민들은 자기 농토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과거 군초소였으나 주민들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이어져 북상됐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폐초소이다.


그런데 갑자기 토지 원소유자가 나타나 소유권을 주장했다. 전쟁 이후 토지대장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정부에서 정확한 조사없이 나눠주다보니 생긴 일이다. 주민들은 법원 소송에서 패소를 했고, 몇몇 주민들은 현재까지도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

1970년 입주 이래 40년의 생창리 마을 역사는 고스란히 슬픔이고 아픔이었으며 한(恨)스러움이다. 그리고 여전히 아직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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