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활동이야기/백두대간       2010. 2. 19. 14:11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어떤 사악한 영혼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와 교활한 계획을 짜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담뱃대를 비운 뒤 옆에 내려놓고, 뒤에 있는 낮게 구부러진 난쟁이자작나무 가지를 몇 개 잘라냈다. 그는 돌도 몇 개 모았다. 거대한 양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등성이 언저리까지 가서 막대기와 돌과 남는 옷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자신인 양 세워놓았다. 그런 다음 허수아비 바로 뒤로 몸을 숨긴 채 바위를 넘어 뒤로 기어가서 모습을 감췄다.
그가 한 시간쯤 몸을 감추고 기어간 곳은 양 뒤쪽의 등성이였다. 거기에서 보니 양은 봉우리에 걸린 천둥을 머금은 구름처럼, 눈썹 위로 굽이치는 뿔을 지닌 황소처럼 위엄 있게, 사슴처럼 우아하게 서 있었다. 양은 추격자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있는지 궁금해 하며, 허수아비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코티는 양에게서 3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양 뒤쪽으로 작은 바위들이 몇 개 있었지만, 그 사이는 눈 덮인 탁 트인 곳이었다. 스코티는 엎드린 뒤 등이 온통 하얗게 될 때까지 눈을 몸 위로 밀어 올렸다. 그런 다음 거대한 양의 머리를 바라보면서 2백 미터나 되는 거리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움직임을 무모할 만큼 빨랐다.
크레그는 여전히 허수아비를 응시하고 있었고, 조바심이 나는지 가끔 발을 구르기도 했다. 크래그가 한번만 민첩하게 살펴보았다면, 눈 속으로 기어가고 있는 적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뿔, 거대한 오른쪽 뿔이 눈과 적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에, 크래그가 달아날 수 있는 마지막 짧은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사악한 스코티는 숨을 수 있는 바위가 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마침내 그곳에 안전하게 도착하자, 그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곳은 양에게서 50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그 유명한 뿔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굶은 흔적이 뚜렷하긴 하지만 여전히 크고 넓은 어깨와 굽어 있는 목과 육중한 몸을 보았다. 그는 이 눈부신 동료가 햇빛을 받아 고동치는 코에서 뜨거운 삶의 숨결을 내뿜는 것을 보았다. 그 빛나는 호박색 눈에 담긴 생명의 빛까지도 얼핏 볼 수 있었다. 그는 서서히 총을 들어올렸다.”

[imgcenter|010219_01.jpg|600|▲ 지난 며칠 설악산 인근에 내린 폭설로 인해 먹이를 찾아 산 아래로 내려온 산양 ⓒ박그림  |0|0]
시튼의 동물기 가운데 “큰뿔양 크래그”에 나오는 사냥꾼에게 쫒기다 죽임을 당하기 직전의 큰뿔양의 모습이다. 어린양이 큰뿔양이 되기까지 자연의 혹독함을 견디며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가족을 이끌면서, 사냥꾼의 위협으로부터 쫒기는 삶을 살아야 했고 끝내는 사냥꾼의 속임수에 넘어가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시려오는 까닭은 안타까움과 분노가 뒤엉켜 겉잡을 수 없이 나를 흔들어대기 때문이다.

산죽 밭 사이로 좁은 길이 길게 이어진다.
댓잎을 헤치며 좁은 길을 따라 가다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몸속으로 전기처럼 흐른다.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빗물에 젖은 낙엽을 나뭇가지로 걷어냈다. 발목을 잡아채려는 듯 강철 덫이 입을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강철 덫에 매여진 굵은 철사가 낙엽 속에 숨겨져 옆 나무기둥에 묶여 있다. 강철 덫에 발목이라도 걸리는 날이면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목숨이 되고 만다. 강철 덫을 놓은 밀렵꾼의 잔인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강철 덫을 살펴본다. 좁은 길에서 강철 덫에 발을 딛도록 옆에 산죽을 꺾어 길을 더욱 좁게 만들었고 강철 덫 앞뒤로 나뭇가지를 놓아 그 사이에 발을 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짐승들의 습성을 읽어내고 온갖 잔꾀를 펼쳐 보이고 있는 밀렵꾼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강철 덫에 걸린 오소리의 쓸개를 팔아 손에 쥐게 될 몇 푼의 돈을 떠올리며 흐믓한 웃음을 짓지는 않을까? 그 웃음 속에 담긴 잔인함과 몇 푼의 돈으로 세상이 말할 수 없이 삭막해지고, 삭막한 세상에서 살아가야할 자식들의 삶을 짐작이나 할까? 
좁은 길을 따라가며 몇 개의 강철 덫이 더 있었고 올무도 여러 개가 나왔다. 강철 덫과 올무를 걷어내면서 많은 생각들이 뒤엉킨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가련함, 생명 있는 것들의 가치와 존재의미를 모르는 이기심, 자연은 우리를 위해서 있다는 교만함, 자연은 우리들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을 너무나 쉽게 잊고 마는 우둔함, 숲 속에서 나는 낮선 세상에 들어온 이방인처럼 여겨졌다.

사람들의 번뜩이는 욕망 앞에 스러져가는 많은 생명들을 떠올린다. 야생동물을 찾아서 산에 들 때마다 가슴이 뛰는 까닭은 힘들고 어렵지만 아직도 내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이 있음에 감격하기 때문이다. 야생의 당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서는 그들을 볼 때마다, 작은 흔적 속에 담긴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때마다, 나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게 된다.

가파른 산비탈에 바위들이 절벽을 이루며 이어지고 한두 마리의 산양이 오르내리면서 바위 턱마다 똥을 남겼다. 눈 위에 떨어진 따뜻한 똥이 눈이 녹아 쏘옥 들어가 검은 열매가 박힌 듯 한 모습이 연밥을 보는 듯 예쁘다. 까맣고 동그란 산양 똥을 한줌 집어 냄새를 맡는다.
늘 바람결에 묻어와 코끝에 매달렸다 흩어지는 잡을 수 없는 냄새, 온 몸에 냄새가 스며들어 내 몸에서도 산양똥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산에 들면 산양들이 다가와 반가움으로 몸을 비비며 반겨주고, 나도 한 마리 산양이 되어 그들의 삶 속으로 빠져 들고 싶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태어남과 죽음,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바위 절벽을 타고 다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바위 굴 속에 들어 앉아 쉬고, 햇볕이 따뜻한 날이면 바위 턱에 앉아 온갖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깜빡 졸음에 빠지기도 하고, 봄이 무르익어갈 때 막 태어난 새끼들의 앙증맞은 모습도 함께 보고, 나이 들어 죽음을 맞아 말없이 사라지는 산양들의 가벼운 몸짓을 배우고 싶다.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설렌다.
산양 똥을 코끝에 갖다 대고 냄새를 가슴 속 깊이 힘껏 빨아들인다. 마음속에 산양 똥 냄새를 깊숙이 담아 놓으려 오래도록 냄새를 맡는다. 돌아서면 진한 향기는 사라지고 가슴 속에 모습 없는 것으로 남아서 늘 그리움에 불을 지피지만 코끝에 맴도는 산양 똥 냄새만으로도 며칠 행복에 젖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늘 해왔던 것처럼 기쁨과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산양을 찾아 산에 들 것이다. 아~~ 나는 산양이 되고 싶다.

어느 날 산에 들어 산양이 드나들던 굴속에 잠자리를 폈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검푸른 하늘에 나무들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별들이 조롱조롱 매달리던 밤, 깜빡 잠이 들었고 나는 산양이 되었다.
바위 위에 우뚝 서서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내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고 산양형제와 어울려 온 산을 내달리다 잠이 깼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꿈, 가끔씩 그 때 꾸었던 꿈속으로 들어가 산양형제를 만난다. 그리고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삶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자연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어울림으로 튼튼하고, 우리 모두는 자연의 어울림 속에 들어와 가족이 되었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아름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자연은 속임수를 쓰지 않으며 자연의 흐름에 따라 우리들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글 :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