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울림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11. 10. 10. 10:36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7월 마지막 일요일, 어렸을 때 동네 형들을 따라 여름성경학교를 간 이후, 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교회에 갔습니다. 박영신 전 상임대표가 함께 하는 작은 교회(예람교회)였습니다. 박영신 선생님께 의견을 구할 일이 있어 갔던 교회였지만, 제게는 성경공부와 예배,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의 자리가 모두 새로웠습니다. 참된 기독교인이란 누구인가라는 내용으로 설교가 진행되었습니다. 설교 내용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대화의 자리에서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부모님 중 한 분을 여의는 과정에서 잘 보내드릴 수 있게 그토록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안 들어주셔서 지금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말씀을 솔직하게 표현하셨습니다.

 

  기도에 서툰, 아니 기도를 흔히 하는 기도처럼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이 어떻게 만나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든, 아니면 부처님 등 다른 신의 말씀이든, 아니면 한편의 글이든, 선율이든 상관없이 무엇이 제게 울림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그 자체를 울림으로 여길 수 있는 준비가 내게 되어있어야 함을 압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이든, 어떤 상황을 맞닥뜨린 순간이든 그 즉시 내게 깨달음으로 울림으로 올 수도 있고, 그 경험을 여러 번 곱씹는 과정에서 울림으로 올 수도 있으며, 잊고 지내며 살아가다 비슷한 경험을 한 차례 더 했을 경우 울림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글을 읽고 울림을 받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왜 같은 글을 읽어도, 어떤 이들은 울림을 받는 반면, 어떤 이에게는 그저 그러한 글 중 하나가 될까요?

 

  글을 읽고 울림을 받기위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글을 읽을 능력, 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글을 쓴 이의 고민이 나의 고민과 만나는 지점이 있어야 합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누구나 갖춘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이들을 위해 제 비밀을 털어놓자면 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은 부족합니다. 멜로디에, 선율에 감동받기 보다 가사에 감동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동을 주는 가사에 푹 빠져서, 그 가사의 멜로디가 좋아진 경우는 허다하지만, 멜로디/선율이 좋아 가사까지 좋아진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따라서 선율자체를 듣고 그 선율을 작곡했던 작곡가의 경험과 고민을 만날 엄두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물론 위대한 예술작품은 문외한인 이들에게까지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20대 초반, 책을 읽고 감동을 하는 것은 그 책이 뛰어나서만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질문들을 잘 표현해 주는 글을 읽거나, 글을 읽을 당시 내 마음의 상태와 글이 공명을 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친구와 나누었습니다. 내가 고민하는 지점들을 그대로 담아내는 표현을 접하면 누구나 울림을 받기 마련입니다. 이번 책베개는 시집 몇 권을 소개하려 했는데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만해 한용운선생님에서, 신동엽, 신경림, 도종환, 백무산시인 등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같은 시집이라도 읽는 시기에 따라 제가 울림을 받는 시가 달라집니다. 오늘 이 글에 소개하고자 들고 나왔던 시집의 시 몇 편 읽다, 요사이 내 마음이 이러함을 깨닫습니다. 「해인으로 가는 길」 중 ‘봄의 줄탁’이란 시를 함께 읽고자 하였으나, ‘구절양장’이란 시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목어처럼 속을 다 긁어내고 두드려봐도 배부른 소리가 울리는 날이 있고 손을 다쳐가며 목판에 경전 한 권을 새긴 것 같은데 대팻밥에서조차 썼다 지운 아집의 냄새가 가득하다(중략) 얼마나 더 주저하고 타태해야 한단 말인가 얼마나 더 미혹의 굴 속을 헤매야 한단 말인가 어리석기가 굽이굽이 구절양장이다’

  이 외에도 ‘돈오의 꽃’, ‘미황사 편지’ 등이 지금 제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을 할 때는 사랑의 시가 절망을 할 때는 절망의 시가 우리의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 상황에서 다시 출발해야 함을 압니다. 그 상황에 발 디딜 때 다시 출발할 수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다 잡습니다. 여러분의 지금의 상황은 어떠신가요?

   아마 7월 마지막 교회에서 만났던 그이는 지금쯤 기도를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해답을 구하는 것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것.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함께 걷고자 한다면 그것이 글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기도든 우리는 그 무엇에서도 울림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시하나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연필깎기 

도종환

연필을 깎는다 고요 속에서 사각사각 아침시간이 깎여나간다 미미한 향나무 냄새 이 냄새로 시의 첫 줄을 쓰고자 했다 삼십 년을 연필로 시를 썼다 그러나 지나온 내 생에 향나무 냄새 나는 날 많지 않았다 아침에 한 다짐을 오후까지 지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문을 나설 때 단정하게 가다듬은 지조의 옷도 돌아올 땐 매무새가 흐트러져 있었다

연필을 깎는다 끝이 닳아 뭉툭해진 신념의 심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깎는다 지키지 못할 말들을 많이 했다 중언부언한 슬픔 실제보다 더 포장된 외로움 엄살이 많았다

연필을 깎는다 정직하지 못하였다는 걸 안다 내가 내 삶을 신뢰하지 못하면서 내 마음을 믿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람이 그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모순어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시각 얇게 깎여져나간 시선의 껍질들을 바라보며 연필을 깎는다

기도가 되지 않는 날은 연필을 깎는다 가지런한 몇 개의 연필 앞에서 아주 고요해진 한 순간을 만나고자 연필 깎는 소리만이 가득 찬 공간 안에서 제 뼈를 깎는 소리와 같이 있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