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처음 가져 본 땅 한평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11. 10. 10. 10:56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내 나이 올해 마흔 일곱! 아직 젊다고 자부하지만 세상의 눈으로 보면 솔직히 적은 나이는 결코 아님을 안다.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한지도 20년이 훌쩍 넘었고 한 순간도 일손을 놓은 적이 없으니 이만하면 열심히 살았다 싶다. 그런데도 내 이름으로 된 땅 한 평, 집 한 채 없다. 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소리가 누군 얼마짜리 아파트를 샀다거나 부동산이 얼마나 된다는 등의 소리이다. 친구들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친척들을 만나면 나이 먹어 어떻게 하려고 남들이 다하는 집 한 채 장만도 안하냐고(또는 못하냐고) 야단들이다. 특히 심한 분은 장모님이시다. 가난한 시민운동가에게 아끼던 딸을 시집보내 놓았으니 걱정이 되실 만도 하다.

   그래도 나는 늘 꿋꿋하게 대꾸한다. 땅은 원래 자연의 것이니 누가 소유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 잘 사용하고 떠날 때 돌려주고 가면 그만이다. ‘그럼 집은?’ 내 집이 없어서 이사 때마다 골치가 아프긴 하지만 이사하고 나면 집 관리 걱정안하고 살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가! 시민운동가인 내가 하물며 부동산 투기를 할 것도 아니고 그까짓 내 이름으로 된 집이 뭐 필요하다고 난리들인가? 이런 생각으로 세상 물정에 둔한 사람처럼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오고 있다. 그 덕분에 특별히 욕심내지 않고, 남들에게 당당하게, 또 세상에 큰소리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도 한때는 내 이름으로 된 땅을 소유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하면 모두들 의아해 할 것 같다. 그것도 국가가 진행하는 사업부지 한가운데 노른자위 부위에 소위 말하는 ‘알박기’를 한 셈이니 말이다. 그럼 녹색연합 사무처장을 하던 사람이 정말 부동산 투기라도 했단 말인가? 갑자기 의문이 증폭될지도 모른다. 의문이 더 커지기 전에 ‘우리’ 땅에 얽힌 사연을 살짝 털어놓아 보려 한다.

  1999년 5월의 일이니 이미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나는 강원도 태백에 있는 고랭지 채소밭 1,000평을 지역 주민으로부터 사들였다. 그리고 그 땅의 대부분을 다시 2백40여명에게 도로 팔고 나서 공동명의로 등기를 설정하였다. 그러니까 1천 평의 땅이 나를 포함해서 2백40여명의 공동 소유가 된 셈이다. 짧은 시간에 땅을 샀다가 도로 팔았으니 돈을 좀 벌었을까?
  사실은 이 땅장사는 돈벌이와는 처음부터 관련이 없던 일이다. 그렇게 해서 구입한 땅이 한국 최초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사례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바로 신태백변전소 건설을 막아내기 위해 녹색연합이 벌인 ‘땅 한 평 사기 운동’의 결과물이다. 녹색연합은 핵발전소(원전) 추가건설을 막아내기 위한 궁리 끝에 신태백변전소 건설 예정 부지 일부를 매입하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시작했고 토지 소유주인 정범교씨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그 일을 성사시킨 것이다.

  그럼 이 땅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녹색연합에서 벌인 내셔널트러스트 운동과 지역 주민들의 송전선로 건설 반대운동 덕분에 울진 원자력발전소에서 태백을 거쳐 서울로 가는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은 2년 가까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송전탑 문제와 함께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에 대해 커다란 사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희대의 악법이라고 알려진 전원개발특별법에 의해 우리들의 땅은 한전이 강제로 빼앗아 가버렸다. 결국 그렇게 되어 내 이름으로 된 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후손들에게 영원히 남겨야 할 한국 최초의 내셔널트러스트 지역은 그렇게 해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땅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적셔진다. 10년 전 그 땅을 빼앗겼을 때는 이틀 내내 펑펑 울었었다. 나 자신과 주민들은 물론이고 땅을 매입하는데 참여해준 많은 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땅은 농부에게 생명의 어머니와 같은 곳이다. 그 소중한 땅을 녹색연합을 믿고 흔쾌하게 맡겼을 때는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범교씨의 결단과 지역주민들의 헌신적인 싸움이 없었다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아예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린 결국 그 땅을 빼앗기고 말았다. 제도의 한계이든, 우리 힘이 부족했든 가슴 저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핵발전소와 송전선로 건설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으니 말이다.

글 최승국 / 녹색연합 전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