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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한참 학 접기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을 천 마리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그 말 때문에, 집에는 늘 문구점에서 파는 예쁜 학 종이가 굴러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꼭 천 마리를 접으리라 다짐은 아마도 일 년에 몇 번씩 했던 것 같은데, 채 100마리도 접지 못한 적이 수두룩했다. 100마리의 학. 고작 종이로 접은 것뿐이었지만, 그리고 참 민망하지만 내가 본 가장 많은 학은 고것이 다였다.
이번 철원, 연천으로 떠난 야생동물 교육으로 지낸 이틀 동안(1월 17일~18일)그 민망함을 깨트리고도 충분히 남을 만한 경험을 했다. 그러니까 늘 그렇게 접다 만 학, 두루미를 실제로 보게 되었다.
참, 여기에서 두 가지 전제를 알려줘야 할 것 같다.
학은 두루미다. 두루미는 학이다. ‘뚜루루 우는 이’라는 의미를 가진 두루미는 학이다. 두 번째는 연천, 철원에서 두루미를 많이 봤다고 이 땅에 두루미가 아주 많은 것은 아니다. 저 어디 남도에서 오래된 소나무에 앉아 있었다던 하얀 학 관한 전설은 이제 전설로 남을 뿐이다.
연천지역의 임진강은 두루미에게 중요한 먹이 터이다. 경기도 연천군 황산리와 강내리의 장군여울과 빙애여울은 빠른 유속 때문에 겨울에도 얼지 않는 지역이여서 목마른 두루미가 물을 찾고 쉴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내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밤낮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군남홍수조절지 바로 임진강에 세워진다. 밤낮으로 소음을 만들어 내고, 바삐 움직이는 공사현장 근처로 예민한 두루미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임진강에 홍수조절지가 건설되면 임진강 주변의 다락 밭과 논들이 수몰될 테고, 다락 논에서 낱알을 주로 먹는 두루미가 밥과 물을 동시에 잃게 될 가능성이다. 그래서 댐을 공사하는 수자원 공사는 군남 홍수조절지가 완공되었을 경우 두루미에게 제공 할 수 있는 대체서식지를 확보하기 위해 두루미에게 먹이주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수자원공사가 먹이를 준 몇 군데의 지역에서는 기러기와 멧돼지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가족단위로 움직이는 두루미가 집단을 이뤄 먹이 활동을 하는 기러기와 먹이경쟁을 할 경우 보다 예민한 두루미는 기러기에게 먹이 자리를 내주게 된다. 임진강 주변과 강내리, 황산리 일대에서 총 128마리의 재두루미와 78마리의 두루미를 확인 했다. 군남 홍수조절지 건설을 위해 수자원 공사가 농민들로부터 사들인 땅에는 율무와 벼의 낱 알갱이 대신 수풀이 우거져있었다. 대체서식지마련도 시급한 문제이지만 기존에 두루미가 이용하던 서식지를 지켜주는 것이 앞서야 할 것이다.
차를 돌려 철원으로 향했다. 두루미네트워크 팀이 철원지역에서 서식하는 두루미 실태 조사를 위해 지난 11월부터 3월까지 매달 한 번씩 진행하는 두루미모니터링에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모임 장소인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는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내에 위치한 마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양지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군의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들어가려는 우리를 군인들이 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들어가지 못한 민간인들이 꾀나 많다. 군인들은 삐라가 뿌려졌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검문소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보니 겨울철 양지리에서 기러기와 두루미, 그리고 독수리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양지리로 들어왔고 해가 질 무렵, 철원의 개활지로 나갔다. 해가 지는가 싶었는데 두루미들이 떼를 지어 하늘을 난다. 먹이 활동을 마치고 아마도 저쪽 저수지 쪽이나 비무장지대 안으로 잠을 자러 가는 길이란다. 석양을 가로지르는 두루미들의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두루미가 자리를 비우자 그 다음은 수백, 아니 수 만 마리는 될 것 같은 쇠기러기 떼가 하늘을 메웠다. 귀여운 고라니 녀석들도 봤다. 너른 철원의 개활지에서 딱히 몸을 숨길 곳도 없다 보니 요 녀석들이 뛰어 노는 것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imgright|20090206_focus_03.jpg|280|▲ 철원 개활지 근처에서 발견한 고라니의 발자국 |0|1]저녁 쯤, 뉴스를 보니 민통선에 들어가기가 왜 어려웠는지 알 수 있었다. 북한에서 성명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색되었다는 남북관계가 극으로 치닫는 중인가 보다. 서울에 있었으면 참 무던하게도 지나갔을 뉴스가, 몇 킬로미터 위로 북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인지 덜컥 겁이 났다. 휴전,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이 단어가 익숙해져 무던해졌을 뿐, 그것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런 생각 중에 밤이 흘러간다. 저수지 저쪽에서 들리는 기러기 소리가가 밤을 가득 메웠다.
아침 일찍 조를 짜서 철원지역의 두루미를 모니터링 하기로 했다. 2인 1조. 지도를 잘 보지도 못 하고, 두루미도 잘 못 찾아내는 내가 얼마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모니터링이 내게 도움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재두루미와 두루미를 찾는 중간 중간 별사탕처럼 말똥가리나 방울새와 같은 새들을 만나기도 했다. 사방이 시원스레 뚫려 있는 철원의 개활지 저 멀리서 땅을 파는 듯 한 공사 소음이 들린다. 함께 모니터링을 하던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땅에 액비를 주는 소리가 저리 요란하단다. 개활지에 액비를 뿌리는 소리에 사람인 나도 거슬리는데 사람들보다 청각이 사람보다 예민한 두루미에게는 어찌 들릴까. 소음뿐이 아니다. 땅을 뒤집는 방식으로 액비를 뿌리기 때문에, 액비를 뿌린 땅에서는 두루미들이 먹이 활동을 할 수가 없다. 낱알이 땅 깊숙이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액비 자체가 너무 독하기 때문이다.
[imgcenter|20090206_focus_01.jpg|580|▲ 사람들 소리에 고개를 세우고 경계를 하는 두루미 |0|3]
주민들이 뿌리는 액비도 그렇지만 전봇대와 전봇대를 이어주는 줄들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 날개나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한다. 새들이 떼를 지어 하늘을 나는 석양이 질 무렵, 사람의 육안으로도 전봇대와 전봇대를 이어주는 맨 위의 줄이 보이지 않았다. 고꾸라지는 새들은 분명히 그 줄에 날개가 꺾기거나 다리를 잃었을 것이다.
철새 보호, 멸종위기종을 보호한다는 것은 보다 많은 수고로움과 신경 쓸 것들과 때때로 귀찮음 따위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두루미와 관계 맺기. 철원지역은 지금 그런 것들을 고민하는 시기인 것 같다. 두루미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생기고 두루미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생기고, 두루미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생기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어떤 행위들이 두루미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그런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관계 맺기. 그것들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서로 토론하되 너무 늦지 않아야 한다. 멸종위기종. 그 멸종위기종 자체가 워낙 많아 그 단어가 익숙하다지만, 참 서늘하게 겁나는 다섯 음절의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결국 우리가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두루미의 개체 수 옆에 적어놔야 할 것이다.
[imgcenter|20090206_focus_02.jpg|580|▲ 개활지를 나는 기러기 |0|3]
글 : 보람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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