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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먹을거리는 석유가 키우고 있다
냉장고에 맥주 20병이 있다고 하자. 냉장고 앞쪽에 잘 진열되어 아무 때나 먹고싶을 때 꺼내먹기 좋던 처음의 몇병이 지나고 10병만 남는 순간. 이제 냉장고 깊숙이 있어 꺼내기도 힘들고 남은 맥주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게 되는 그 순간... 강양구 님은 피크오일, 우리말로 하면 석유정점으로 종종 번역되는 그 상황을 냉장고의 맥주로 비유해 이야기를 풀었다.
먹을거리의 미래가 이번 강의 주제였음에도 많은 시간은 에너지 문제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에너지문제에 관심을 갖던 강양구 님이 먹을거리 문제에까지 공부하고 기사를 쓰게된 출발이 바로 에너지문제 특히 ‘석유’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수십년전의 농업은 농부의 땀과 태양과 흙과 바람의 공으로 이뤄졌다면, 요즘의 농업은 석유로 이뤄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로 만든 비료와 농약을 치고 비닐을 이용하고 석유로 움직이는 농기계를 사용하고 차로 이동된다. 그런데 만약 석유공급이 중단된다면? 석유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게 된다면? 그땐 어떡할건가? 이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한다면 오산이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 나라들이 있단다. 물론 피크오일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때문이긴 하지만.
석유가 끊긴 쿠바에선 어떤 일이?
이제는 유기농의 메카라고 알려진 쿠바. 그러나 1980년대말 90년대 초 미국의 경제봉쇄 속에서도 소련과 동유럽에서 천연가스와 석유를 싸게 공급해주어 큰 경제위기를 겪지 않던 쿠바는 그 나라들이 몰락하면서 하루아침에 에너지공급이 끊기게 된다. 국민의 7~80%가 아바나 같은 대도시에 살고 있는 쿠바에선 에너지 위기 첫해엔 농촌에서 도시로의 식량공급이 교통마비로 중단되어 도시의 어린이, 노인, 여성들이 굶주리기 시작. 다음해에는 농촌에서도 농사지을 농약, 비료가 없고 기계를 움직이지 못해 농업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쿠바 전체가 기아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석유가 끊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그러나 쿠바는 다행히 이 상황을 도시농업으로 해결해나갔다. 도시 전역에 짜투리땅과 빈상자 등을 이용해 아바나 소비의 80%를 도시 안에서 해결하도록 했단다. 바로 로컬푸드인 것이다. 운송거리를 짧게 해서 적어도 운송에 드는 석유는 없어도 되는 농업이다. 농약과 화학비료가 없는 도시농업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연구소들이 갖가지 유기농재배법을 연구하고 보급하면서, 기근을 해결한 것은 물론 쿠바를 세계적인 유기농업 국가로 알려지게도 했다.
쿠바는 정치적 이유로 에너지공급에 문제가 생겼지만, 전 세계의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길 피크오일은 이미 현재의 문제로 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지구 전체로 보면 피크오일을 아무리 늦게 잡아도 2020년 이전에 닥칠 일이라 하고 대륙별로 보면 미국은 이미 1974년이 피크오일이었다고 한다. 땅만 파면 석유가 나오던 시절을 지나 이제 바다에서 석유를 꺼내야 하고 그러다 바다로 석유가 누출되는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요즘을 보면 그 말이 실감이 난다. 그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 강양구 님은 ‘로컬푸드’와 ‘식량자급율’을 대비책으로 이야기했다.
피크오일을 대비하는 로컬푸드와 식량주권
쿠바같은 사례는 로컬푸드를 제대로 활용한 예이고, 또 예전 소련 몰락 직후의 러시아 상황에서도 로컬푸드는 힘을 발휘했다 한다. 당시 경제란으로 식량배급에 문제가 생겼고 우리 뉴스에도 심심찮게 빵을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러시아 시민들의 모습이 비춰지곤 했지만, 그래도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미 1980년대에 텃밭보급을 장려하여 대도시 사람들 대부분이 텃밭을 경작하면서 먹을거리를 재배하고 있었다고 한다. 빵은 없어도 굶주림을 막을만한 스프를 끓일 정도의 재료는 텃밭에서 공급되어 위기상황을 넘겼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시민들이 먹는 먹을거리는 어디서 오는걸까 생각해보면 로컬푸드라는 말이 무색하다. 게다가 4대강 사업으로 서울 시민들이 먹는 유기농야채 80%를 재배한다는 팔당 유기농단지가 모조리 사라질 판국인 걸 생각해보면 과연 로컬푸드가 앞으론 가능한 일일까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선 지금 로컬푸드를 실험하고 있고 도시의 조례로까지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에선 런던시가 로컬푸드를 적극 추진하면서 도시의 공공기관의 식당뿐만 아니라 개인 식당에서까지 로컬푸드를 구입하도록 매뉴얼을 만들고 생산자리스트를 만드는 일등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하나의 대안책은 바로 식량주권. 식량주권은 식량안보와는 다른 개념이다. 식량안보는 자국의 농민들은 안중에 두지 않고도, 힘이나 돈을 갖고 어쨋거나 식량을 확보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다. 전쟁을 해서라도 식량을 공급하기만 하면 된다는 논리에 가깝다. 이 논리로 정부는 해외에 식량기지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는다. 그러나 당장 식량문제가 생기면 어느 나라가 자기네 땅에서 난 작물을 땅을 임대한 외국이 가져가도록 내버려둘까? 그래서 식량주권에서 식량자급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강양구 님은 한마디로 “식량자급율은 힘이 세다”라고 한다. 몇해전 닥친 국제식량가격급등으로 주요 밀수출국들이 밀수출량을 줄여 가격이 폭등할 때 여러 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났지만, 우리나라는 조용했다. 과자나 빵류의 가격이 좀 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건 우리나라의 주 식량이 다행히 밀이 아니라 쌀이고, 쌀의 식량자급율이 100%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만약 식량파동을 겪은 작물이 쌀인데, 쌀 자급율이 우리나라의 평균식량자급율인 25% 내외였다면, 우리도 위기를 겪었을 것이다. 식량자급율을 높이기 위해선 당연히 농민과 농업이 살아야 한다.
먹을거리의 미래는 농업의 미래
강양구 님이 문제를 하나 내었다. 미국에서 20세기 초엔 1달러짜리 빵을 사면 농민에게 40센트가 돌아갔다. 그런데 요즘은 농민에게 몇센트나 돌아갈까요? 하는. 정답은 고작 3센트였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함께 강의를 듣는 수강생 중의 한분이 생협에서 일하시는데 생협과 거래하는 농민에게는 70%가 돌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일반 관행농을 하시는 농민은 10% 정도 이익을 가져가기도 힘들다. 이런 유통구조 속에선 농민들이 농사를 계속 짓기란 쉽지 않다. 농지가 사라지고 농민이 사라지고 결국 농업이 사라지는 구조속에선 식량자급율이란 너무나 먼 일이다.
강의를 들으며 늘 먹을거리 이야기를 할 때엔 ‘소비자’의 입장만 생각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농민이 없다면, 농업이 없다면 로컬푸드도, 식량주권도 정말 먼 이야기인데, 소비자로서 어떻게 안전하고 좋은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을까의 문제만 집중했지, 그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이, 농업이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등한시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의 강의주제는 ‘먹을거리의 미래’였다. 먹을거리의 미래는 곧 석유세상의 미래이고, 농업의 미래라는 걸 다시한번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글 : 소남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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