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서 - 매향리

 활동이야기/군환경       2002. 5. 9. 16:56  l   Posted by 비회원


잔뜩 흐리고 찌푸렸던 하늘이 햇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르지 않아 한걸음 한걸음에 무게를 더했던 젖은 바지와 신발이 어느새 가벼워졌다. 군산에서 주민들은 매향리 사람들이 육상사격장을 폐쇄시키고 또 재판에서 승소하는 것을 보고 미군과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녹색순례단은 오늘 그 희망을 만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img:20020509_gf04.jpg,align=left,width=250,height=188,vspace=5,hspace=10,border=1]남양방조제에서 걷기 시작해서 3시간의 도보를 마치고 매향리 육상사격장에 도착했다. 농번기라 매향리 육상사격장 안에서 농사일이 한창이다. 육상사격장이 폐쇄되긴 했지만 여전히 농민들은 출입증을 제시해야만 안에 들어가 농사를 지을 수 있다. 68년 국방부에서 그 땅을 강제수용해 미구에게 무상공여했기 때문이다. 땅주인은 국방부, 실제 사용하는 이들은 록히드마틴 그리고 주민들은 소작농이 되었다. 해안으로부터 2.4킬로미터 떨어진 농섬을 기준으로 630만 평의 매향리 앞 바다는 주중에는 미군 폭격연습장으로 쓰이다 토요일과 일요일만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출입이 허락된다.

매향리의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지난 식목일, 육상사격장 철책선을 따라 심은 매화나무에는 연초록 잎이 돗아 이사온 매향리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쉼없이 나란기 걸어가던 순례단이 흠칫 멈췄다. 갑자기 터진 로켓포 실탄의 무시무시한 굉음에 가슴이 놀란 것이었다. 매향리 주민들은 평생동안 몇 번이나 이렇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img:20020509_gf06.jpg,align=right,width=250,height=188,vspace=5,hspace=10,border=1]매향리대책위 사무실에 도착하자 전만규 위원장이 마중을 나와KT다. "170가구 남짓의 작은 마을에 30명 이상이 자살을 했습니다 .전투기와 폭탄투하의 굉음이 만들어내는 공포감은 인간을 파괴합니다. 소음은 보이지 않는 흉기입니다. 매향리 사격장과 같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군사시설은 세계 어디에도 이주되어서는 안되면 지구상에 사라져야 합니다." 매향리 대책위 전만규 위원장은 매향리 사격장이 폐쇄되고 나면 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그들을 돕겠다고 말했다. 소음으로 받아온 날들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매향리에서의 점심식사. 이번 순례에 처음 참가한 이승정(22) 씨는 "국민들이 이런 고통속에 살도록 놔 두는 정부의 무기력함과 매향리의 현실에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식사가 끝나고 각자 준비한 노란 리본에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철책선에 묶었다. 매향리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있다고 언젠가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img:20020509_gf03.jpg,align=left,width=250,height=188,vspace=5,hspace=10,border=1]매향리 대책위 사무실에서 철책선을 쭉 따라 농섬과 가장 가까운 해안가에 도착했다. 걷는 내내 귀를 윙윙 울려대는 전투기들이 농섬 위를 선회하는가 싶더니 이내 농섬은 하얀 포탄 연기로 뒤덮였다. F4E, A-10, OV10과 같은 전투기들이 마치 곡예비행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연달아 폭탄을 쏟아내고 원래 크기의 3/1밖에 남지 않은 농섬은 풀 한 포기 없이 맨살을 드러낸 것이 마치 백기를 든 것처럼 보인다. 아름드리 나무로 녹음이 짙어 짙을 농자를 붙여 농섬이라 불렀다는 옛날 모습은 이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한참을 그렇게 농섬을 바라보았다. 이제껏 순례를 통해 우리 땅이 동강나고 파괴된 장면을 지켜보았지만 이렇게 최신예 전투기 앞에 무차별 폭격당하는 이 땅 앞에서 모두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img:20020509_gf02.jpg,align=right,width=250,height=188,vspace=5,hspace=10,border=1]녹색순례단과 매향리는 인연이 깊다. 98년 처음 녹색순례를 시작했을 때 강화도에서 갯벌을 따라 내려오던 순례단을 가로막은 폭격기 굉음과 철조망. 매향리의 50여 년 역사를 접한 순례단원의 대부분은 그날에서야 처음 서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화성에서 심장을 찧어놓을 듯한 굉음 속에 미군 폭격훈련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매향리는 고립무원의 섬 같았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매향리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다. 50년대의 노근리에 이어 매향리는 이제 반기지 운동, 아니 평화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군문제와 기지 문제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성지가 되어 있다. 이 시간동안 전만규 위원장과 주민들은 수차례 구속당했었고 수백번에 이르는 집회, 폭격이 감행되고 있던 농섬에 들어가 시위를 하는 목숨을 건 저항이 있었다. 육상사격장이 폐쇄된 2002년의 매향리는 1998년의 매향리에 비해 훨씬 평화로운 모습니다. 하지만 순례단이 농섬에서부터 마을들을 지나 매향리를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 추격하는 듯 따라온 폭격기의 굉음은 아직 우리에게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녹색순례 특별취재팀 - 사이버 녹색연합】



<전만규 위원장 인터뷰>

"미군 사령관도 초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img:20020509_gf01.jpg,align=left,width=250,height=188,vspace=5,hspace=10,border=1]어제 내린 비로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맑은 하늘 아래 이젠 누런 흙빛의 바위가 되어버린 농섬과 훈련중임을 알리는 주황깃발은 더없이 도드라져 보인다. 전만규 위원장은 둥근달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둥근 달위엔 우리의 농악대가 둥근 달 밑엔 '두공' 한쌍이 헤엄치는 그림의 티셔츠. 이 티는 지난 해 일본의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와 한날 한시에 각각의 장소에서 열렸던 보름달 행사때 만들어진 것일게다. '두공'은 오키나와 해안가에 살던 돌고래 종류의 동물이다. 미군기지가 건설되고나서부턴 점점 사라진 두공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환 운동의 상징물이다. 일본에 오키나와 두공이 있다면 우리에겐 매향리의 매화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운동의 중심에서 늘 싸워온 전만규 위원장이 있다.

최근 매향리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하여 모두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저희가 갔었던 모든 지역에서 매향리의 이야길 하며 새로운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재판진행과정과 요즘의 심경은 어떻습니까?

“사실 승소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지요. 매향리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소송을 시작한 거지요. 그래서 주민 공동으로 진행하지도 못하고 14명만 소송을 한거지요. 2심까지 승소하고 나서는 주민들 2천222명이 다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어요. 미군기지가 있는 모든 지역이 이 건을 바라보고 있어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러나 최종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조금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으려 합니다. 판결 이전에 지나친 주목을 받게 되어 재판부에 부담을 주어 자칫 결정이 미루어진다거나 하면 모두에게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몇십년씩 재판이 걸린다면 아무도 이 일에 나서지 못할 테니까요.”

[img:20020509_gf05.jpg,align=right,width=250,height=188,vspace=5,hspace=10,border=1]2000년과 2001년 격렬한 싸움을 거쳤던 매향리에 요즘은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오늘 서울에서 열릴 자유와 평화, 매향리 음악회, 그리고 지난 번 매향리 나무심기 행사 등. 운동의 방법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듯 한데.

"운동권만 매향리에 와서 투쟁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 지식인, 음악인 그리고 미군, 미군 사령관 조차도 이 문제를 함께 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미군과 미군 사령관이 스스로 죄책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감동을 주는 운동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격렬한 투쟁을 통해 예까지 왔다면 이제는 모두가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는 매향리 운동이 되어야지요. 제가 요즘 이런 말을 해서 전만규가 감옥 갔다 오더니 겁이 많아졌다고들 하더군요. 그런데 싸우는 것만이 운동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매향리의 폭격훈련장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반대하고 그들의 나라 미국에 지어지는 것 역시 반대한다는 그는 더 이상 이 문제가 한 지역의 문제, 미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평화와 생명이라는 가치를 존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풀어야 하는 이 시대의 운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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