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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백지에 대해 신앙, 일종의 종교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요. 백지는 내 세계가 열리기 직전에 있는 존재, 어떤 절대자처럼 느껴져요. 다른 종교는 필요 없지만 백지에 대한 종교는 살아있는 동안 잃지 않을 거예요. 백지에서 내 운명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백지는 제가 아주 숭앙하는 존재입니다. 함부로 백지를 쓰지 않으며 휴지도 하나 다 쓰지 않아요. 찢어서 한 세 번쯤 쓰죠. 누가 보면 치사한 몸짓이라 하겠지만 그게 습관이 되었어요.
종이를 늘 대하시는 시인으로 종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8월에 태평양 연안에서는 세 번째로 세계산림과학대회가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어요. 19세기부터 있었던 국제회의인데 한 2~3천 명 모였더군요. 백여 나라에서 왔어요. 개막식 기조연설을 제가 했어요. 나무와 숲 이야기를 했지요. 마침 이어지는 느낌이 있네요.
저는 일생을 나무를 죽이면서 생활해온 사람입니다. 보르네오나 인도네시아 열대림에 가면 내 죄목이 아주 낱낱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시집을 낼 때마다 ‘지금 동남아시아 나무 몇 그루를 삼키고 있구나’ 생각해요.
디지털시대가 되면 화면이나 영상이 종이를 대신하여 종이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어느 때보다 지금 나무를 많이 소비하지 않습니까? 인터넷이 세상에 나온 다음에도 나무 소비는 결코 줄지 않고 되레 늘어나고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디지털 문명 자체도 막대한 목재산업 바탕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에요. 전혀 동떨어져서 새로운 지면으로만 편안하게 생각할 수 없는 게 현실이죠.
인류는 나무 귀신의 저주를 생애 안에서 받아야 하는, 나무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입장입니다. 참으로 저는 나무에게는 흉악범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염치나 예의랄까. 오래전부터 광고지 이면지 백지에 원고를 씁니다. 그것을 나중에 뒷사람에게라도 혹시 참고가 될까 해서, 일부러 없애지 않고 있어요. 봐라 너희들도 이렇게 써 봐라 하고 말이지요. 편지봉투도 칼로 펴서 안에 있는 백지에다 메모도 하고 초고도 쓰고 허물없는 사람한테는 편지지로 쓰곤 합니다.
미국 친구인 생태시인 게리 스나이더가 한국에 오면 우리 집에서 자고, 내가 미국에 가면 그 집에서 며칠씩 자고 그러는데, 그 친구도 편지봉투를 뜯어서 이면지로 쓰고 있더라고요. 이런 면에서 너하고 나하고는 통하는 형제로구나 하면서 웃지요.
저는 백지에 대해 신앙, 일종의 종교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요. 백지는 내 세계가 열리기 직전에 있는 존재, 어떤 절대자처럼 느껴져요. 다른 종교는 필요 없지만 백지에 대한 종교는 살아있는 동안 잃지 않을 거예요. 백지에서 내 운명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백지는 제가 아주 숭앙하는 존재입니다. 함부로 백지를 쓰지 않으며 휴지도 하나 다 쓰지 않아요. 찢어서 한 세 번쯤 쓰죠. 누가 보면 치사한 몸짓이라 하겠지만 그게 습관이 되었어요.
내가 미국을 제일 싫어하는 이유는 휴지가 너무 크고 식당에서 쓰는 냅킨도 엄청나게 크고 두껍기 때문이에요. 그것을 백인이든 흑인이든 그냥 엄청나게 낭비하며 함부로 써버려요. 크리스마스트리도 자기네 나라 것은 안 쓰고 캐나다에서 싼 값에 잘라다가 쓰더라고요. 그렇다고 자기들 산천을 잘 보존하지도 않아요. 캘리포니아 늪지대나 습지대도 많이 개발해서 갉아먹었어요. 지금도 미국은 종이를 너무 함부로 대하는 국가 규모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요. 생각하면 끔찍해요.
유럽은 좀 나은 편이죠. 요즘은 중국도 종이를 너무 많이 쓰는 쪽으로 빠르게 변했어요. 아시아가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고 숲을 보존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열대림은 재생이 안 되지 않습니까. 한 번 베면 끝나는 거죠. 열대원시림이 그냥 없어지는 거예요. 아마존 원시림도 빠르게 없어지고 있잖아요, 우리가 다 갉아먹고 있는 거죠.
고대 시인 두보는 “나라는 망하여 없지만 산하는 남았다”라는 시를 썼어요. 그것은 옛날 시고, 오늘의 시는 “산하는 망했지만 나라만 남아 있다”라고 거꾸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일은 그나마 “산하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고 너도나도 다 없어진다”라고 해야 할 처지입니다. 결국 나무를 죽이는 것은 당대에는 어떻게 살겠지만 내 자손은 다 죽는 것이거든요.
자연사상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보더라도 우리가 나무를 섬겨야 해요. 우리가 나무 옆에 함께 살아야 하는데, 나무는 그냥 여기 있는 거라 생각하며 마구 쓰고 있어요. 나는 <작은것이 아름답다>같이 몇몇 뜻이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들이 이렇게 숲을 보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연생태를 지키는 일에는 국가 권력이 강력하게 규제하고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데선 자유와 민주주의를 하지만 자연을 지켜내는 일은 독재가 조금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번에 세계산림과학대회 개막연설에서 제가 몇 가지 제안을 했지요. 숲 생태를 다루는 산림청을 저 구석빼기 기관으로 두지 말고, 가령 수석 국무위원 급으로 우선순위에 두고 숲이나 나무에 두루 행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또 사람들 생애에는 여러 기념일이 있잖아요, 탄생, 취직, 결혼, 추모기념… 이럴 때마다 나무를 기념으로 심는 문화가 자리 잡도록 하자고 말했어요. 심지어 취업할 때 나무를 몇 그루를 심었나를 보고 합격을 시키고, 학교에서도 나무 심는 것을 학점으로 주고, 이를 바탕으로 졸업장도 주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지요. 얼마나 먹힐지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나무 학살자로서 작은 사면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종이는 숲이다’라는 주제로 재생종이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재생종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07년부터 3년 동안 스웨덴 대중교통관리국에서 버스, 전차, 터미널에 붙이는 광고에 내 시를 쓴다고 하더군요. ‘숲에 들어가서’라는 짧은 시를 쓰도록 허락했어요.
거기는 숲이 많은 데고 호수가 많은 곳이지만, 숲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스스로 확인하고 후손들에게 가르치려는 것 같았어요. 많은 시 가운데 그런 생각을 내 시에서 뽑은 거죠.
여러분처럼 숲에 대해 전문으로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시인이면 당연히 목재 펄프를 많이 썼다는 죄의식 말고라도 나무를 많이 노래하는 것이 또 본디 역할 가운데 하나지요. 풀과 나무, 나무 잎새 하나, 이런 것을 노래하지 않은 시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도 숲이나 나무를 제법 많이 노래했어요. ‘종이는 숲이다’, 참 좋은 주제네요. 앞으로 그런 주제로 시 한편 쓸 법합니다.
재생종이는 의미 있는 종이입니다. 되살리는 종이니까요. 그 과정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가령 나에게는 우편물이 참 많이 오니까. 빈 봉투를 내버리면 폐지로 가버리겠지만 쌓아놓으면 적당한 때 어려운 학생에게 갖다 줘서 값도 받게 하고 그러죠. 지금도 서재에 쌓여 있어요. 모이면 갖다 줘야지요. 그리고 원고지 이면지에 메모를 써요. 일정표로 쓰기도 하고 하나도 허비하지 않죠. 다 쓴 종이는 모아서 재생종이 만드는 데 쓸 수 있고요. 사람들이 초고는 일면지에 쓰니까 사방에서 원고 보내오는 것을 쌓아 두면 참 많거든요. 저는 하나도 버리지 않아요. 뒤집으면 백지니까 거기에다 쓰지요. 저는 단체와는 상관없지만은 여러분 취지에는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에요.
최근 여러 환경이슈가 있는데 특별히 관심이 두고 계시는 환경이슈가 있으시면?
지금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것이 그거 아닙니까. 나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다 거기 큰 걱정을 표현들 하고 있지요. 다들 상식처럼 ‘지구온난화’ ‘녹색’을 쉽게 입에 올리지만, 정치가 말하는 ‘녹색’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울 좋은 헛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녹색’이란 말을 하도 많이 사람들이 쓰니까 아주 천덕꾸러기 언어가 되어가고 있어요.
녹색이야말로 우리가 섬겨야 할 삶의 주제의 하나인데, 이미 낡아버린 개념같이 되어버린 것은 함부로 상투적으로 말하면서 정치가들에게 떠맡기고 자신의 관심 밖으로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또 사회에서도 그냥 이것을 단순 구호로 만드니까 녹색의 참모습이 곡해되어 버리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어요. 녹색이란 언어를 대단히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겪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해야 할 일이나 가져야 할 마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니요, 그것은 내가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환경에 대한 수많은 걱정이 이미 현실이 되었고, 환경위기가 엄습해서 진행되고 있잖아요. 환경 재앙의 시작을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에 대해 이미 수많은 메시지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우리가 떠도는 어떤 헛소리로 생각하거나 말하지 말고, 그 하나하나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죠. 특별히 지금은 새로운 지혜의 메시지를 더 찾거나 만들어 낼 필요가 없어요. 이미 다 충분해요. 그것을 우리가 실천하고 진행하지 않고 새로운 언어를 개척하는 것도 낭비예요. 이미 100년, 200년에 걸쳐 환경이나 자연생태에 대해서 세계에 수많은 발언들이 있었어요.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실천하고 자기화시키고 토착화해야 하는 것이지요. 내가 빛나는 언어를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진저리나게 많아요. 내 입에서까지 나올 필요가 없지.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아름다운 언어에 종속되고 싶지 않아요. 이 세상 큰 것도 아름다운 겁니다. 크지 않은 적당히 중간치도 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쪽 구석에 있는 작은 티끌 같은 존재만 아름답다고 하는 것도 계급이지요. 슈마허가 말한 세계관은 참 좋아하는데,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큰 세상도 얼마나 좋습니까. 태양이란 거대한 존재에 의해서 이런 태양의 새끼인 자기 존재들이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까. 우주라는 거대한 위대성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잖아요.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다 의미가 있죠. 다만 작은 동아리의 아름다움은 있어요. 내가 작은 것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하하.
탐욕이라는 것도 참 중요한 겁니다. 탐욕이 있어야 탐욕이 무섭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탐욕이 없어보세요. 우리들 작은 욕망들, 작은 염원들, 작은 꿈들 그것도 의미가 없어요. 작은 것이 어떻게 혼자 아름다울 수 있겠어요? ‘작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은 우주에 대한 겸허한 마음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해요. 거대한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그러나 탐욕이 중심이 되어가지고 시장 중심, 투기 자본이 모든 것을 먹어 삼키고 무한팽창해가니까 인간이 없어지고 소외되는 것을 우리가 저주해야 하는 것이지, 큰 것 자체를 주의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열다섯 살이 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게 당부하실 말씀은?
이 험한 세상에 <작은것이 아름답다>가 15주년을 맞는다니 그것만으로 훌륭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일 년에 나무 서너 그루씩 다 심었으면 좋겠어요. 이게 말로는 쉽지만 제대로 안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무라는 걸 자기 집 안에 심는 것은 어려움이 있어요. 나도 큰 나무를 심어봤는데 너무 크니까 집에서는 안 맞더라고요. 나무끼리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동네를 마련해 드려야 해요. 자기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무나 사람이나 다 불편해요. 작은 나무 몇 그루는 괜찮은데 너무 큰 나무가 있으면 서로 어울리기 쉽지 않아요. 옛날 조상님들이 집안에 큰 나무를 안 들여놓은 이유가 있었던 거죠. 나무는 숲을 이루잖아요. 나무는 숲이 되도록 유지해줘야지 사람 곁에 두고 괴롭히면 나무도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나무가 사는 동네를 자꾸 넓혀주고 함부로 사람들이 손대면 안 된다고 봐요. 지금 온통 사방에 자동차 길이 나지 않습니까. 자고 나면 사차선 도로가 생기고 도로 옆에 또 도로가 생기고 있어요. 나무동네를 싹둑 자르고 구멍을 뚫고 함부로 다 없애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죄 값을 어떻게 조금이나마 탕감받기 위해서라도 나무 동네를, 나무의 나라를, 그 경계를 확대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거죠. 나무들이 숲을 이뤄 잘 살아야지 인간하고 있으면 나무도 불편해요. 생채기나 내고 뭐 좋겠어요.
숲은 컴컴했다
함께 간 아이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아이도 나도 하나가 되어
말이 없었다
한동안 더 깊이 들어갔다
거기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한 마리의 고라니 새끼 달아나며
(고은 시, <숲에 들어가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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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작은것이아름답다 편집부
사진 : 이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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