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현장리포트, 그 후 1년

 활동이야기/습지·해양       2009. 4. 3. 11:04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청년모임씨앗은 기름유출사고 이후 1년이 지난 태안을 찾아가 현재 태안의 상황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현장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져가면서 축소되고 감춰지는 태안의 현장을 직접 보고,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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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토요일 아침에 태안을 향해 출발했다. 이동하기 시작하니 기대보다 걱정이 커져갔다. 괜히 주민들의 마음만 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정말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하지만 사고 이후 처음으로 찾은 태안이었기 때문에 일단 가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조금은 가벼운 마음을 갖기로 했다. 점심쯤이 되어 태안군 의항리 의항2구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김진성 어촌계 간사를 만나 의항지역의 현 상황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들었다.

주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앞으로의 방제 작업이 어떻게 될 것이며, 지금 바다가 어업을 재개해도 되는 상태인지, 거기서 잡은 해산물들이 사람에게 유해하지 않은 것인지 등이었다. 언론과 태안군에서는 청정태안을 이야기하지만 아직도 파보면 기름이 나오는데, 그래도 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에 속한 연구소에서 태안 지역에 연구진을 파견하여 환경조사를 하더라도 그 내용이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환경조사라는 게 긴 시간의 연구를 필요로 하고 명확히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최소한 지금 상황은 어떠한 지에 관해 지역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과 공유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imgright|greenseed_02.jpg|330| |0|0]의항리에 오기 전에는 생계와 보상 문제로 주민들이 날카로워져 있는 상황이니만큼 인터뷰라는 것이 민감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주의를 많이 들어서 조심스러웠는데, 막상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으셨구나하는 느낌이었다. 간사님은 현지 상황이 어떠한지, 지역주민들의 애로 사항이 무엇인지 외부 사람들이 알아주고, 많이 찾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주민들 속에 쌓인 울화와 한을 짐작도 못하겠지만 마치 왕따 당하는 느낌이 든다는 그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주민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만리포를 지나 모항에 갔는데 그곳에는 만리포와 달리 관광객도 보이지 않았고, 막 배가 들어왔다는데도 작은 거리에는 황량함만 가득했다. 끝까지 걸어가 보았는데도 달리 얘기할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좌절하고 있던 중에, 어느 횟집에 ‘태안바다살리기운동본부’라는 나무 현판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저씨가 밖에 잠깐 나가셨다고 하셔서 식당 안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술 한 잔 하러 오셨던 할아버지들께서 이리 와서 같이 먹자고 하셔서 염치없이 술과 안주를 받아먹으며 주인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름유출사고 이후 가장 큰 문제라고 느끼는 부분은 지역 공동체의 파괴라고 하였다. 이전에는 누군가 잘못을 했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는데, 사고 이후에는 사소한 일 하나 갖고도 싸움과 폭력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사고가 일어난 후에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고, 보상의 형평성 등 주민들이 한꺼번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게 되면서 오랫동안 아름답게 지내왔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공동체 의식과 배려하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한다.

의항리에서 만난 다른 할머니는 이전에 맨손어업을 하셨던 분으로 이제 일거리가 없어서 지원비로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지원비도 끊기고 나면 생계는 정말 막막한 상태가 된다. 원래 이 지역이 굴 생산이 유명한 지역이고, 지금은 굴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냄새가 나서 못 먹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 먹으려고 시도했다가 못 먹기도 했다고 한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인터뷰한 내용을 나누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 동안 마음도 아프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 많이 되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재미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바다를 곁에 끼고 지냈던 시원한 시간이었다. 또 그만큼이나 어쩔 수 없이 죄스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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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는 사람 없겠지만 나 역시 바다를 참 좋아한다. 눈을 감고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물과 가느다란 흙 알갱이들과 자갈들, 또 그 안에서 숨 쉬고 있을 작은 생명들을 그려보면 마음속에 바다가, 우주가 들어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그렇지만 사고 이후 태안 주민들이 보는 바다는 어떨지, 그 속의 생명들은 어떨지 생각하면 바다엘 가도 신선놀음처럼 맘 편히 즐기기는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어찌됐거나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의 삶에 지속적으로 연대할 수 없는 이방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관찰한다는 것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타인의 삶, 혹은 내 삶에서까지 내가 이방인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시간이었다. 풀리지 않는 숙제이고 달갑게 지고 가야할 짐이려나.

글·사진 : 청년모임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