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산에 철탑을 꽂지 마시오!

 활동이야기/백두대간       2009. 6. 29. 10:23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까지 케이블카로 훼손시켜서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지리산 호랑이로 통하는 함태식 옹(82세)께서 한반도 남쪽 백두대간 제일 높은 곳, 지리산 천왕봉에서 1인 시위에 나섰습니다. ‘미친 짓 당장 그만 두시오!’ 라고 쓰인 커다란 피켓판을 들고 서 계신 그 분의 얼굴엔 수심과 노기가 가득해 보였습니다. 40년 가까이 지리산 노고단과 피아골 대피소에서 산장지기로 계시면서 이제는 지리산의 상징이 되신 그 분이 노구를 이끌고 지리산 정상에 올라 ‘어머니 산에 철탑을 꽂지 말라’는 절규를 외치고 계신 것입니다. 그분 생애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만큼 힘에 부친 이번 천왕봉 등반 사연이 너무도 비감하여 주위를 더욱 안쓰럽게 합니다.

[imgright|20090609_06.jpg|360| |0|0]환경부는 지난 5월 1일자로 자연공원 용도지구 개편, 생태관광사업 시행, 자연보존지구 행위기준 조정, 그리고 케이블카 설치기준 완화 등을 골자로 한 자연공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습니다. 이중 케이블카 설치기준 완화와 관련된 부분은 기존의 자연공원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일부 조항 개정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데, 향후 국무회의 의결 절차만 거치면 오는 7월 중 시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입법예고한 자연공원법 개정안은 8월중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케이블카’라 부르는 것은 ‘삭도(索道)의 설치기준’에 따르는데, ‘삭도’라는 말이 어려워 ‘로프웨이(Ropeway)’로 법령상 표현을 바꾸었답니다. 로프웨이란 비탈이 심한 곳이나 산악지방에서 공중에 줄을 매달아 사람이나 물건을 나르는 장치를 말합니다. 케이블카나 리프트를 포괄해서 부르지요.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자연보존지구에서 허용되는 공원시설 중 로프웨이의 설치허용 규모를 기존 2km 이하에서 5km까지 확대 조정하겠답니다.

현재 우리나라 자연보존지구 경계에서 산 정상까지의 직선거리가 2km를 넘는 지역은 지리산이나 설악산, 한라산 등을 제외하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깊은 산을 제외하고는 현재도 법령상으로는 대부분의 자연공원 지역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산 정상부위까지 케이블카의 설치가 가능합니다. 때문에 이번 시행령 개정의 진짜 의도는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등과 같은 일부 산 깊은 국립공원의 정상부위까지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하도록 조건을 열어 준다는 것이지요.

자연공원 내 로프웨이 설치의 대표적 훼손 사례로 덕유산국립공원을 들 수 있습니다. 20년 전 국제대회의 유치를 빌미로 덕유산 정상 바로 밑까지 스키장 리프트를 허가 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업타당성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지역의 유수 기업체는 결국 도산하였고, 향적봉 일대 주목 및 구상나무 생태계는 크게 훼손 되었습니다. 겨울철 스키용 곤돌라는 사계절 관광용 케이블카로 전환되었고, 덕유산국립공원은 레저스포츠 관광지로 전락하였습니다. 이러한 값비싼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케이블카 설치를 둘러싼 개발과 보전의 갈등 문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남쪽에 위치한 도시 케이프타운에는 테이블마운틴이라는 유명한 산이 있습니다. 이곳 산 정상까지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워낙 편리하고 단시간 내에 관광을 마치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곳의 케이블카 이용률은 매우 높습니다. 그 많은 관광객들이 다 걸어서 등반을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했다면 오히려 등산로와 산지의 환경훼손이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또한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이라는 봉우리까지는 비탈진 경사를 따라 궤도열차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는데 매우 적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빼어난 해안선과 도시 야경을 자랑하는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의 로프웨이 야경관광도 놓칠 수 없는 관광코스로 손꼽힙니다. 외국의 로프웨이 성공사례를 참고할 때, 자연공원 내에서라도 무조건 케이블카는 안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한 것 같습니다.

주민들의 보전노력에 따른 경제적 기회손실을 다른 경제적 지원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합리적 대안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만약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한다면 이에 따른 환경영향을 사전에 면밀히 평가 분석하고, 지역사회와 국민의 공론화를 통한 로프웨이의 입지 선정과 그 결정과정이 투명해야 합니다.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 분석을 통해 서로 다른 접근방식에 대한 환경영향을 사전에 비교 검토해 볼 것을 제안 합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각 지자체들의 경쟁적 케이블카 도입은 결국 지자체간의 과잉투자로 인한 막대한 손실과 생태계 훼손, 둘 다를 잃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따라서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사업은 매우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추진되어야 합니다. 케이블카 설치기준 완화 정책은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를 통해 결정되어야 합니다.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의 붙박이 1인 시위자로 얼마 전까지 연하천 대피소의 산장지기였던 김병관씨가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연하천 대피소의 계약직 직원이었으나, 지리산에 케이블카 설치 위기가 닥치자 재계약을 포기하고 자진해 시위에 나섰습니다. 그와 2년 반 전 연하천 대피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수원출신이라는 것과 나와 동갑이라는 점, 그리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대피소가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로 인해 금세 친해졌었습니다.

수북이 눈 쌓인 지리산의 한겨울 밤, 호롱불 밑에서 그날 밤을 함께 지새우던 생각이 납니다. “지리산은 경관이 수려한 산이 결코 아니지요. 그러나 묘향산, 계룡산과 더불어 민족정기가 흐르는 산입니다.” 그의 상식으로는 민족정기가 흐르는 이곳에 일제가 백두대간 주요 위치에 쇠말뚝을 박듯, 그렇게 철탑을 꽂을 수는 없는 일일 것입니다. 자칫하다 설악에서 한라까지 케이블카 설치용 철탑이 빼곡히 꽂히는 그날이 올까 두렵습니다. 아무리 개발 중독시대라지만 그래도 우리가 우리 산하에 저질러서는 안 될 마지막 양심에 간절한 기대를 걸어 봅니다.

글 : 염태영 (녹색연합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