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돌자, 서울 한 바퀴!

 활동이야기/백두대간       2009. 12. 28. 08:48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요즘 태풍보다 더 강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걷기 열풍! 나날이 끝을 알 수 없이 내려만 가는 기온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다섯 명의 용사들이 ‘걷기 위해’모였습니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서울 성곽 순례길, 옷 두툼하게 챙겨 입으셨나요? 함께 출발합시다.

흠흠, 출발 전에 성곽에 관한 아주 짧고도 간단한 설명 올리겠습니다. 1396년, 태조는 당시 조선의 도읍지 한양을 에워싸는 성곽을 짓게 됩니다. 벽은 백악,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으며 거의 완벽한 풍수지리에 근거했다고 합니다. 그 후 여러 사정에 의해 세종, 숙종에 의한 수축 공사를 진행하였고 박 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또 한 번의 수축공사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성곽을 보시면 시대별로 돌의 모양과 크기가 달라진 것을 확실히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럼 진짜로 한번 출발해봅시다.  

우린 분명 성곽 길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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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성곽 순례하자고 불러놓고 웬 담벼락 길을 걷고 있는 거야?” 하며 당황하고 계신가요?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분명 성곽길이 맞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함께 무분별한 도시개발이 이루어 지면서 성곽은 본래의 모습을 잃고 동네의 담벼락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꽤 긴 구간의 성곽이 본래 모습을 잃고 말았지만 그 부분부분이 여전히 남아서 오래 전 성곽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전하게 남아있는 성곽의 모습을 찾아 나서기 위해 걷고 또 걷습니다. 성곽이 있었던 자취대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은 사뭇 옛스러운 정취를 불러일으킵니다. 온전한 성곽의 모습은 없지만 본래의 모습을 짐작해 가며 나름의 운치 있는 성곽 나들이 길을 시작합니다.

성곽을 훌륭하게(?) 이용한 또 다른 곳이 나왔습니다, 바로 서울시장 공관입니다. 보시다시피 담벼락이 어디서 많이 보던 느낌이지요. 서울성곽 맞습니다. 시의 문화재라 할만한 성곽을 이용해 시장 공관의 담벼락으로 조성해 놓았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현재는 성곽 복원문제로 처소를 옮겼다고 하는데 뒤늦게나마 실정(失政)을 바로잡는다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햇살 가득한 성곽 주변의 풍경
[imgleft|091228_04.jpg|290||0|0]끊어진 성곽 옆에 새로 복원해 놓은 혜화문이 있었습니다. 큰 길 건너편에는 성곽이 이어지고 있었고요. 우리는 이제 원형이 남아있는 진정한 성곽 길로 들어갑니다. 잘 따라오고 계신가요?
처음 말씀드렸다시피 성곽은 산의 능선을 따라 만들었기 때문에 지대가 상당히 높습니다. 등산이 아니라고 만만하게 봤지만 저의 다리는 어느새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고 있더군요. 그래도 아름다운 성곽의 모습이 제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걸었습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요? 걷다보니 성곽 길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것이 낙산공원코스 성곽 바깥쪽입니다. 혜화 마로니에공원에서도 가까운 낙산공원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쉼터로,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답니다. 성곽 길로 올라가기 전에 잠깐 들릴 곳이 있어요. 저쪽 골목으로 올라가봅시다.

[imgright|091228_05.jpg|290||0|0]이곳이 어디냐, 낙산공원 바로 뒤쪽에 자리 잡은 동네입니다. 현재 녹색사회연구소 외 많은 기관에서 현재의 ‘갈아엎기식’ 재개발 정책이 아닌, 주민 참여의 지속가능한 대안개발계획을 만들어보자!"며 여러 가지 가슴 따뜻한 토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장수마을이랍니다. 골목마다 빼곡한 집들, 너무 낡아 보수가 시급한 곳이 여러군데지만   행정당국의 무관심과 개발계획의 난립으로, 막상 시급한 민원 개선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도 가슴 따뜻한 전문가분들이 모여 주민들과 함께 열심히 고민하고 계시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자 이제 그 유명한 낙산공원입니다. 여름에 성곽 위에 걸터앉아 서울을 내려다보며 시원한 맥주 한잔 하면 참 좋다고 하던데, 이젠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판이 붙어있답니다. 우리 올라가고 싶어도 꾹 참고 벤치를 찾읍시다.
걷다가 지친 우리들도 잠시 멈춰서 서울 풍경을 바라봅니다. 멀리 북한산 자락이 보이고, 남산이 보이고,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서울 중심부에 이런 뛰어난 경관의 휴식처가 있었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저희는 함께 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가져온 간식도 나누어먹고 즐거운 휴식 시간을 보냈습니다. 2시간 가까이 걸었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은 게 아무래도 여유를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걸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 서울 성곽이 가야할 길
어느새 동대문까지 와버렸어요. 우리의 길도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옆의 돌에는 사람의 이름이 잔뜩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의 명칭은 ‘각자’입니다. 원래는 성곽의 구간별마다 책임자가 있었고, 그 책임감을 높여주기 위해 ‘각자’라는 이름 판을 구간마다 박아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지한 복원사업에 의해 어떤 돌인지도 모른 채 한 곳에 모아놨다가 이렇게 대충 끼워 넣은 것이라고 하니, 참 답답합니다.
길은 또 끊겼습니다. 서울성곽은 사실 예전 동대문운동장의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imgleft|091228_07.jpg|290||0|0]요즘 그 곳에 새롭게 대규모 디자인단지를 조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전통이 없는 ‘새로움’의 멋이 혹여 깊이 없는 ‘경박’이 되진 않을까 우려 됩니다. 옛것의 보전(保全)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멋스러울 수 있고, 예스러움까지 더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공사부지에서는 한 달 전만 해도 서울성곽을 복원하는 공사를 약속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진 모양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서울성곽 순례 길은 끝이 났습니다. 18.2km의 긴 구간 중 극히 일부분(혜화문~동대문운동장)만을 걸었는데도 벌써 3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지금까지 순례 길에 참여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날씨가 좀 풀리면 다 같이 또 다른 성곽 길을 걸어 보는 건 어떨까요? 다 같이 돌아요, 성곽 한바퀴!

글 : 신지선 (녹색연합 신입활동가)